[삶의 향기]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소설이다

2026. 9. 1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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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화가·동국대 석좌교수

소설 읽어주는 유튜브를 들으며 잠드는 게 취미이자 수면 습관이 된 지 오래다. 듣다 보면 스르르 잠이 들어 내가 아는 타인의 기억과 소설 속의 삶이 뒤섞인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을 듣다가, 내 어머니 친구의 삶이 뒤섞이고 그녀가 입양한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친구를 잉그리드 버그만이라 불렀다. 서구적으로 잘생긴 이목구비가 어릴 적 흑백 영화 속의 여배우와 닮았던 것도 같다. 남편이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업고 다닌다는 소문이 날 지경이었다. 남편의 사업은 번창했고, 자식이 없다는 것 외엔 걱정이 없었다.

「 딱하디 딱한 어머니 친구의 말년
손주가 둘이나 되는 사촌은 재혼
내 소설 마지막 장은 장밋빛이길

[그림 황주리]

어느 날 부부는 갓난아이를 입양했다. 왠지 조금 낯선 타국의 느낌을 주는 소년은 아마 동남아시아계 쪽이 섞인 혼혈 같기도 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이상하게도 그 사이좋던 부부는 점점 멀어졌다. 남편은 그 시절 다른 여자를 만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이후 사업체를 외국으로 옮기고 정착하여 아이 셋을 낳았다. 그 세월 동안 잉그리드 아줌마는 멀쩡한 얼굴을 계속 성형했다. 볼 때마다 젊어 보이긴 했으나 입이 점점 커져서 보기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그녀는 호화아파트에서 겉보기엔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그 비싼 옷을 내가 좋다면 그 자리에서 벗어주었다. 내가 화가가 된 뒤에는 큰 그림도 여러 점 사서 그 집 곳곳에 걸어 두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림을 파는 일이 그리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늦은 이십 대부터 내게 서른 잔치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그림이 팔려나가고 어느새 나는 인기 작가로 불렸다. 그때는 배가 불러 왠지 가볍게 들리는 그 말이 참 싫었다.

그렇게 세월이 거짓말처럼 흘러 잉그리드 아줌마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그 많던 부동산이 사기에 걸려 다 없어지고, 철없이 자란 입양한 아들이 주위 꼬임에 넘어가 재산을 말아먹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나는 그 호화 맨션에 걸렸던 그림을 되사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병원 갈 돈도 없는 데다가 치매까지 온 상황이었다. 얼마 후 잉그리드 아줌마는 허름한 요양병원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아내를 버리고 떠나 자식을 셋이나 둔 잉그리드 아줌마의 남편은 행복했을지 생각한다.

산다는 건 어릴 적의 낱말 이어가기, 남이 올려놓은 돌 위에 돌 하나 올려놓는 일이라는 걸 안다. 가끔 30년, 40년 전에 그린 그림들이 유령처럼 경매에 나온다. 어떤 그림은 대학 시절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어떤 그림은 동네 사람이 하도 딸 그림 하나 달라고 하니 우리 어머니가 그려준 그림이다. 보관이 잘못되어 곰팡이가 잔뜩 슬었다는 설명과 함께 헐값에 나온 그림도 있다. 누군가 진품이 맞으면 사고 싶다고 물어온다. 어머니의 친구 집에 걸려있던 그림을 되사오던 아득한 기억이 겹친다. 갑자기 나는 경매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은 기분이 된다. 이봉창 열사는 지금도 존재한다. 조국 해방의 거창한 명제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인권을 위해 싸워야 하지 않을까? 딛고 일어나 무심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지난 시대의 가난과 전쟁이 아니더라도 작가에게는 늘 종류가 다른 장애물이 존재한다. 경매회사는 이의가 있으면 작가가 직접 참여해 자기 작품을 되사서 가격을 관리하면 된다고 부추기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에 절절히 공감한다. 큰 화랑에서 잔뼈가 굵은 후배에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니 그가 말한다. “장사치들이 어디 작가를 생각하나요? 그림을 자식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손 떠나면 그뿐 속상해하지 마세요.” 도튼 것 같은 말을 들으니 갑자기 도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손주가 둘이나 되는 칠순이 내일 모래인 사촌이 재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게 잘사는 거지 싶기도 하다. 페이지 슬슬 넘어가는 재밌는 소설을 쓰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기가 끝은 아니다. 나는 20세기 현대 음악의 문을 연 구스타프 말러가 남긴 멋진 한 마디를 기억한다.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그대들도 그러하길.

황주리 화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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