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감지해 맞춤 박스 뚝딱…물류의 미래 [내일은 천억클럽]
경기도 이천에 자리 잡은 한 물류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벨트 컨베이어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광경이 펼쳐진다. 벨트 위를 질주하는 택배 상자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기존의 물류창고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설고 흥미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흔히 봐온 물류센터는 1호, 2호, 3호처럼 정해진 몇 가지 규격의 박스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곳 벨트 컨베이어 위를 지나가는 상자들은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어떤 상자는 손바닥만 한 립스틱 하나가 쏙 들어갈 만큼 앙증맞고 얇은 반면, 어떤 상자는 두꺼운 겨울 부츠 상자에 맞춰 윗부분이 칼로 싹둑 잘려나간 듯 납작하게 내려앉아 있다. 내용물 부피에 따라 박스의 높낮이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더 눈길 끄는 건 상자 겉면이다. 테이프만 칭칭 감긴 칙칙한 갈색 무지 상자는 찾아볼 수 없다. 상자마다 쇼핑몰 고유의 브랜드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 있고, 그 옆에는 고객 이름을 넣은 감사 문구나 시즌 한정 프로모션 안내 문구가 즉석에서 새겨져 나온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원리는 의외로 명쾌하다. 단 1건의 주문이 들어오더라도 주문 정보가 시스템에 접수되는 즉시 기계가 상자를 착착 접고, AI가 물건의 부피를 정밀하게 측정한 뒤 남는 높이를 딱 맞춰 잘라내며, 마지막 출고 직전 겉면에 브랜드 로고까지 실시간으로 인쇄해 내보내는 구조다.
요즘 물류 업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두핸즈의 품고 XFC(eXtreme Fulfillment Center) 현장이다.

2023년부터 흑자…월 처리 200만건
두핸즈는 쉽게 말하면, 물건을 대신 포장하고 보내주는 물류 대행 업체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일일이 창고를 빌리고 직원을 뽑아 포장과 배송을 챙기기는 쉽지 않은데, 그 번거로운 일을 대신 맡아주는 게 두핸즈가 운영하는 ‘품고(Poomgo)’라는 서비스다.
다만 다른 물류 회사와 다른 점이 있다. 사람 손으로 짐을 나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11년 동안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늘 어느 창고에 어떤 물건이 얼마나 들어올지” “어디서 보내야 가장 빨리 도착할지” 같은 판단을 사람의 감이 아니라 데이터와 AI가 계산해서 정해준다.
박찬재 두핸즈 대표는 “이렇게 쌓은 노하우를 두핸즈에서는 ‘운영지능(OI)’이라 부르는데, 말이 어렵지 결국 오랫동안 창고에서 일한 베테랑의 감각을 컴퓨터가 그대로 배워서 대신 판단하게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이커머스 시장이 커질수록 물건을 얼마나 싸고 빠르게 보내주느냐가 셀러의 경쟁력을 가르는데, 두핸즈는 이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풀어온 셈”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로 보면 이 전략이 통했다는 게 드러난다.
품고는 2025년 한 해 매출 667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보다 51% 늘어난 수치다. 2023년부터는 3년 내내 이익도 냈다. 투자자들도 2021년까지 320억원을 이 회사에 투자했다. 성장 속도는 올해 들어 더 빨라져서, 2026년 1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53.5% 늘었고 4월 한 달만 보면 62.9%나 뛰었다.
처리한 물량을 보면 성장세가 더 확실히 느껴진다. 올해 4월 기준 한 달 물동량이 200만건을 넘었는데, 이 물량이 100만건에서 200만건으로 두 배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6개월밖에 안 됐다. 국내 하루 평균 출고량은 1년 전보다 58%, 일본은 73% 늘었다. 네이버의 빠른 배송 서비스 ‘N배송’ 물량은 직전 분기보다 259% 급증했는데, 품고는 이 서비스의 배송 품질 평가에서 3분기 연속 1위를 지켰다.
품고는 2022년부터 ‘5대 약속 보장제’도 운영한다. “오늘 들어온 주문은 오늘 보내겠다”처럼 다섯 가지 약속을 스스로 걸고, 못 지키면 셀러에게 돈으로 물어주는 제도다. 2025년 이 약속을 지킨 비율은 평균 99.9%였다. 지금은 경기, 충남, 제주 등 전국 16곳에서 창고를 운영하고, 1분기 기준 고객사 수는 1년 전보다 21% 늘었다. 페덱스와 손잡아 일본과 미국은 물론 220개국까지 물건을 보낼 수 있다.

예측 물류 정확도 85%
품고가 XFC를 지은 이유는 다가올 변화 때문이다. 요즘은 사람이 직접 쇼핑몰을 뒤지지 않고 AI 비서가 대신 상품을 찾고 주문까지 해주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예쁜 화면이나 광고보다 “주문한 물건이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오느냐”가 훨씬 중요해진다. 사람은 광고나 디자인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AI는 그런 감정이 없다. 결국 남는 기준은 하나, 배송이 빠르고 정확한 회사를 고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두핸즈 경영진 판단이다.
따라서, 두핸즈는 이런 미래를 준비하려고 올해 5월 경기도 이천에 약 5000평 규모의 자동화 창고 XFC를 열었다. 이 창고의 가장 큰 특징은 창고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를 밖에서 사다 쓰지 않고 전부 두핸즈가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 일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필요한 포장 작업부터 먼저 로봇과 자동 설비로 바꿨고, 앞으로는 AI와 로봇 기술을 더 얹어 로봇이 사람처럼 움직이는 ‘피지컬 AI’를 시험하는 실험실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하던 두핸즈가 처음으로 큰 하드웨어 투자에 나선 셈이어서, 업계에서는 이번 XFC를 회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지만 성과는 눈에 띈다. 창고를 연 지 4개월 만에 보관 공간의 100%가 채워졌으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자리를 잡은 셈이다. 상품 1건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사람이 직접 하던 방식보다 약 70% 줄었다.
물류 전문 컨설팅 업체 비욘드엑스의 김철민 대표는 “과자 봉지를 열었을 때 질소만 가득 차 있으면 허탈하듯, 택배도 빈 공간이 많으면 낭비다. 박스를 제품 크기에 딱 맞게 잘라주니 안에서 물건이 흔들리지 않아 깨질 위험이 줄어든다. 부피가 줄어드니 택배 트럭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상자 수가 30~40%나 늘어나 트럭 운용 비용과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다. 맡기는 업체 입장에서도 계절마다, 명절마다 수십 종류씩 찍어내던 전용 상자를 창고에 쌓아둘 필요가 없어 상자 발주와 보관 스트레스가 사라지다 보니 빠른 시간 내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두핸즈는 AI가 ‘내일은 물건이 얼마나 들어올까’를 맞히는 예측 정확도는 지금 85% 수준인데, 조기 달성 목표는 95% 이상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어느 창고에서 보내야 가장 빨리, 가장 싸게 배송할 수 있을지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자동으로 배정해주는 ‘동적할당’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어 운영 효율이 극대화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XFC 전국구 확산 숙제
사람과 로봇 조화 관건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무엇보다 예측 정확도를 얼마나 빠른 시간 내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전 포인트. AI 예측을 95%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면 아무리 동적할당 기술이 좋아도 효율은 한계에 부딪힌다. 더불어 지금은 포장 단계만 자동화됐는데, 입고나 보관, 분류 같은 다른 단계까지 넓혀야 진짜 효율이 날 수 있다. 로봇이 늘어나는 만큼 기존 직원들이 하던 일도 새로 짜야 하고, 사람과 로봇이 한 공간에서 부딪히지 않고 일하도록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더불어 XFC 모델을 전국구로 확산시킬 수 있는지도 숙제다.
김철민 대표는 “이천 XFC 한 곳에서 검증한 방식을 전국 16개 창고로 어떻게 옮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들어갈 큰 투자 비용을 지금의 흑자 기조를 흔들지 않으면서 어떻게 감당할지가 숙제”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7호·추석합본호(2026.09.16~09.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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