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경험 0원 살이... "선한 신념도 폭력될 수 있구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3년의 직업 군인 생활을 마치고 문화기획자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모든 것을 접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는 10년 전 0원 살이 프로젝트와 최근까지 자신이 택한 삶의 방식을 돌아보며 인간 안에 공존하는 선함과 폭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제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래 경험하다 보면 그가 지닌 폭력성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일부만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편향되게 판단한다. 선함과 악함의 공존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사람을 연민하게 되고, 잘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선필 기자]
|
|
| ▲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을 연출한 박정미 감독. |
| ⓒ 시네마달 |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해당 영화를 찍은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낡은 옷과 담요를 두른 채 튀르키예를 떠돌던 그를 보고 누군가는 '데르비시' 같다고 했다. '데르비시'는 자발적 빈곤을 택한 이슬람 수도자를 뜻하는 말로, 영화의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그때처럼 극단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는 규칙은 없어졌고, 지금은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돈을 번다"라며 "어쩌면 그건 도망이었을지 모른다. 진정한 자유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말했다.
돈을 버리고 떠난 길에서 마주한 삶의 다양성
한국 사회를 벗어나 영국으로 갔지만, 박 감독은 그곳에서 더 심한 직장 내 갑질을 경험했다. 영화엔 여러 대안 공동체와 삶의 형태가 등장한다. 스킵 다이빙(식당 등에서 버리는 재고 음식과 재료로 연명하는 삶)을 하는 히피들, 보트나 카라반을 거처로 삼는 '모바일 리빙', 빈 건물을 점거해 생활하는 '스쾃팅(squatting)' 등.
모든 게 히치하이크를 통해 영국, 그리스, 튀르키예, 이란 등으로 이동하며 박 감독이 경험한 다양한 삶의 모습이었다. 환대와 환희로 가득한 순간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성관계를 요구받거나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
|
| ▲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의 한 장면. |
| ⓒ 시네마달 |
여러 공동체를 경험하며 건강한 논쟁을 주고받은 경우도 있었고, 정말 화가 나서 싸운 일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신념이나 가치관이 너무 강하면 타인에게 강요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제가 돈을 안 쓰고 1년간 살겠다고 한 건 그저 일시적인 프로젝트였다. 기존 사회 시스템을 당장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진도나 설악산의 폐가를 고쳐 살면서 저 또한 제 삶의 태도를 자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더라. 나만 맞다 하는 건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게 됐다."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모두 선한 것은 아니다. 그는 10년 전 0원 살이 프로젝트와 최근까지 자신이 택한 삶의 방식을 돌아보며 인간 안에 공존하는 선함과 폭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제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래 경험하다 보면 그가 지닌 폭력성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일부만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편향되게 판단한다. 선함과 악함의 공존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사람을 연민하게 되고, 잘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
대안적인 삶,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 달 생활비가 10만 원 남짓 드는 수준을 유지했다고 한다. 귀국 후 5년 동안 돈을 최대한 배척했던 그는 최근 들어 돈의 교환 기능 자체는 인정하게 됐다. 다만 박 감독은 "편의를 위해 개발된 돈이 무소불위의 존재가 된 게 문제"라면서 "불안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고,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쌓으면서 굴레에 빠진다"라고 짚었다.
|
|
| ▲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의 한 장면. |
| ⓒ 시네마달 |
"40대에 들면서 한쪽 팔을 몇 개월 동안 아예 못 썼던 때가 있었다. 삽질도, 식사도, 양치도 다 왼팔로 하면서 뭔가 깨달았다. 돈 없이 살 수 있다고 자신했던 건 결국 내 젊음과 건강 덕이었구나 싶더라.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는데, 정작 병들고 늙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답을 찾기 어려웠다. 돈을 다시 벌어놔야 하나, 보험을 들어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갈 수 없었다. 오기가 아니라, 두려움을 돈으로 포장하거나 가리고 싶지 않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이지. 그러면서 떠올린 게 공동체적 돌봄이다. 불과 백여 년 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각자의 집과 마을에서 돌봄을 받아가며 돌아가시지 않았나. 제 아버지가 파킨슨병을 오래 앓았고, 최근 신장암 진단도 받으셨다. 이런 일을 겪으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여러 이야길 하는 중이다."
돈 없이 사는 문제에서 함께 죽어가는 문제로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기, 아버지의 오랜 투병도 그의 고민을 관념에서 현실로 끌어내렸다. 박 감독은 투병 중인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시금 카메라를 들었다고 말했다. 언제 이 과정이 끝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는 연명 치료를 원하시는데, 그게 쉬운 과정이 아님은 잘 모르시더라"라며 "제가 돌보고, 제 공동체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데 아버지의 선택이 중요하니까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평생 청소노동자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익숙한 제도와 미디어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신뢰해오셨다.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걸 잘 인정하지 않으시더라. 그저 요양원에 가시겠다는 말에 화도 났다. 아버지의 선택과 돌봄의 과정을 기록하면서, 나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어떤 돌봄을 원하는지도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고 싶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면 만에 하나 우리 세대에서 삶이 다 끝나더라도 서로 끝까지 돌볼 가능성은 생기지 않나 싶다.
서울 은평구의 살림의료협동조합 등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매우 느슨한 공동체인데, 서로 돌봐주는 협동조합 하나가 도시의 문화를 바꾸고 있더라. 서로의 존재를 보험처럼 연결해 놓으면 요양 시설이나 연금 같은 보험이 할 수 없는 걸 해낼 수 있다고 본다. 너무 제도와 시설에만 맡기면 인간의 소외 문제는 반드시 생긴다고 생각한다."
|
|
| ▲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을 연출한 박정미 감독. |
| ⓒ 시네마달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반고가 안전하지 않나요?" 중3 학부모 질문에 대한 늦은 답변
- "정장구두에 덧신 씌운다"...인사혁신처의 희한한 혁신
- 코너 몰린 중수청장 후보자 "수사·기소 분리 적극 공감"
- 한국에선 안 된다고 했는데... '화장품 리필' 성공시킨 이 사람
- 노후 준비로 시작한 양봉... 말벌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 사과 없이 떠난 정호용, 5·18 청산은 왜 실패했나
-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잘된 인사? 김승원 의혹 쟁점 5가지
- '수시 먹통' 사태에 최교진 "민간업체 대행, 적극 재검토"
- 이 대통령 "20만 고려인 동포 품은 우즈벡, 더없이 소중한 친구"
- 국민연금, 투자 105개 기업에 "성과없는 보수 상향 안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