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리는 ‘봉달이’… “포기만 안하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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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화의 문' 바로 앞인데 예, 보입니다."
이봉주는 "내가 포기하면 같이 간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활 기간 "포기하면 안 된다" "그 힘든 마라톤도 해 왔는데, 내가 이걸 못 이기겠냐" 하는 생각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모두가 안타까워한 희귀질환도 끝내 극복하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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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화의 문’ 바로 앞인데… 예, 보입니다.”
인터뷰 장소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이었다. 이봉주(56)는 전화로 기자의 위치를 확인하자 주저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광장을 걷던 시민들이 ‘이봉주다’ 하며 그가 달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광장을 가로질러 꽤 먼 거리를 달려왔지만 그는 힘든 기색이 없었다. “늘 이렇게 달리느냐”고 묻자 이봉주는 “원래 걷는 것보다 뛰는 게 편했다”고 답했다. 그는 “다시 그렇게 되기까지 4년 넘게 걸렸다”며 웃어 보였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달린다. 이봉주는 지난 7월 4일 호주 퀸즐랜드에서 열린 ‘2026 골드코스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하프마라톤 코스를 1시간39분55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가 21.0975㎞를 쉬지 않고 달린 것은 근육긴장이상증(디스토니아)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한 2021년 이후 처음이다. 국내 언론은 아직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이봉주는 지난 11일 국민일보를 만나 “결승선을 통과할 때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걷지도 못하다가 회복해 내 두 다리로 완주한 것이기 때문에, 올림픽(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이나 보스턴(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때보다 의미가 새롭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한국 남자마라톤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을 보유하고 있는 이봉주는 ‘1시간39분55초’를 조금 쑥스러워했다. 그는 “그런 성적은 처음”이라면서도 “완주했다는 자체만으로 너무 좋다. 이렇게 뛴다는 것에 감사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출발선에 선 순간까지도 완주를 할 것이란 확신은 없었다고 한다. 병을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몸 상태가 100%는 아니었고, 연습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봉주는 “그간 10㎞만 뛰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체력은 나도 모르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후배이자 전직 마라톤 국가대표인 박명현 런콥 대표가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며 이봉주의 용기를 북돋웠다. 이봉주는 “내가 포기하면 같이 간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출발한 뒤 아내 김미순씨를 생각하며 한 발 한 발을 내디뎠다. 그는 “내가 제일 아프고 힘들 때 늘 옆에 있었던 사람이 아내였다”며 “아내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달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봉주가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준 인물이다. 남편이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나빠진다”며 조금이라도 움직이도록 닦달했다. 이봉주에게 코로나19 마스크를 씌워 산책을 시킨 사람도, 매일 온몸을 지압해준 사람도, 운전이 힘들어진 남편을 대신해 자동차를 몰아준 사람도 김씨다.
이봉주는 하프마라톤을 위해 호주로 떠날 때 아내에게 “당신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완주하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김씨는 “무리하지 말고, 몸 상하게 하지 말고 편하게 뛰고 오라”고 답해줬다. 이봉주는 평소 연습량보다 긴 10㎞ 구간을 돌파할 때 아내를 떠올렸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는 완주 기록과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김씨는 “정말 고생했다”는 답장을 했다고 한다.
하프마라톤 완주에 성공했을 때의 심정을 묻자 이봉주는 얼른 답하지 못했다. 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눈물을 흘렸느냐고 묻자 “마음으로 울었다”고 답했다. 그의 힘겨운 재활 과정을 아는 사람들이 완주 소식을 자신의 일처럼 좋아해줬다. 이봉주는 “4년여 전에는 걷지도 못하는 몸이었는데, 이제 ‘하프’까지 뛸 수 있는 몸이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땐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몸이 어딘지 이상해진다고 느낀 시점은 2020년 초다. 딱히 통증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허리를 펴려 하면 오히려 몸이 웅크려지는 일이 반복됐다. 의지와 상관없이 복부가 떨리고, 고개가 꺾이고, 계속 몸이 앞으로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고개와 등이 앞으로 굽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의원에 갔다. 근육의 이상인 것 같으니 침을 맞으면 나아질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의원은 근육긴장이상증 소견을 보이면서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이봉주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가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름난 병원들도 속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신경안정제 같은 것만 처방받았다.

당시 이봉주는 “제발 30분 만이라도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최정상급 마라토너였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변화였다. “20년, 30년을 늘 달려 왔는데 하루아침에 달리는 것은 고사하고 걷기도 힘든 몸이 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봉주는 “‘내가 정말 평생 이런 몸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고 말했다.
한 병원은 낭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권유했다. “70~80%는 좋아진다”는 병원의 권유에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수술 뒤 오히려 목을 일부러 숙인 듯한 자세는 더욱 심해졌다. “수술하지 말라”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정했던 일이라서 본인의 괴로움도 괴로움이지만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고 한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때는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때였다. 이봉주는 “어머니를 뵈러 고향 천안에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내 몸을 보시더니 그렇게 많이 우시더라”고 돌이켰다. “어머니께서는 꼿꼿하신데, 막내아들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니 엄청 속상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은 다시 일어나 달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드린 상태다. 이봉주는 “어머니께서는 이제 아흔이 넘으셨지만 꼿꼿하시고, 왜소하지만 강단 있으시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아내와 함께 매일 집 근처의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일로 희귀병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던 때였지만, 주민들은 그를 알아보고 “힘내라”는 말을 건네 왔다. 그의 몸이 굽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온 국민에게 전해진 시기였다. “사람들 관심에 혹시 짜증이 나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이봉주는 “남 일이 아니라고 걱정해 주시는 것이라서 짜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봉주의 몸은 차츰차츰 펴졌다. 그는 걷다가 100m를 달렸고, 1㎞를 달렸고, 2024년에는 국민일보의 국제국민마라톤대회에서 3.6㎞를 달렸다. 국민일보 대회 때 아내가 옆에서 함께 뛰었다. 그는 이제 새벽 5~6시에 일어나서 운동복을 챙겨 입고, 근처 운동장이나 산에 가서 한 시간을 달린다. 이봉주는 “신발 신고 운동복 입고 나가는 구간이 가장 힘들기도 하다”며 웃었다.
이봉주가 다시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늘 달렸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라톤 정신’으로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재활 기간 “포기하면 안 된다” “그 힘든 마라톤도 해 왔는데, 내가 이걸 못 이기겠냐” 하는 생각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이봉주는 “마라톤을 하면 늘 데드포인트(사점·온몸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끼는 한계 상태)를 지나게 마련이고, ‘이번 위기를 참고 견디지 못하면 안 된다’는 자세가 몸에 밴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생활 내내 남들보다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온 인물이었다. 마라토너로서는 드물게 짝발이고, 또 평발이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4.4㎜ 길고, 발바닥 아치는 거의 없다. 정작 본인은 육상선수로 살면서도 한동안 자신이 짝발, 평발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1994년 코오롱에서 실업선수 생활을 할 때 운동화를 맞추다 짝발, 평발 사실을 알았다. 남들이 놀랐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걸 신경 쓰면 운동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자신에 대해 “뭐든 개의치 않고 ‘오로지 내 갈 길만 간다’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여건과 환경을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데드포인트가 왔을 때에는 ‘그냥 곧 지나갈 것이다’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이겨내면 된다”고 말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반바지와 운동화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태극마크가 꿈이던 소년은 목표를 이뤘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도 섰다. 모두가 안타까워한 희귀질환도 끝내 극복하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다음 목표는 42.195㎞다.

-계속 달리는 이유는 뭔가.
“달리는 게 내 생활이고, 일상이다. 달리면 모든 근심 걱정을 잊을 수 있다. 그냥 좋다.”
-하프마라톤 완주에 성공했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풀코스 완주인가.
“그렇다. 내년쯤엔 풀코스를 한번 완주해서, 더욱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모두 각자의 코스에서 잠시 주저앉기도 한다. 한말씀 해 달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힘든 상황을 이겨내지 않았나. 포기하지 않고, ‘좋아질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면 꼭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봉주는 “나를 걱정해 주신 분들, 회복했을 때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많다”며 “그런 분들을 위해 앞으로 건강을 더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더욱 열심히 해서 어서 내 한국기록을 깨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두 달 전 하프마라톤 완주의 ‘후유증’이 있다며 웃어 보였다. 안 뛰던 거리를 한 번에 뛰다 보니 발목이 놀랐고, 종아리 근육도 많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봉주는 인터뷰를 마치고는 어딘가로 다시 달려나가는 모습이었다.

이경원 이슈&인터뷰팀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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