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트레일러가 이 가족에게는 '캐슬'

조영준 2026. 9. 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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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머피 감독의 다큐멘터리 <틴 캐슬>은 아일랜드 티퍼레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리시 트래블러 '오라일리(O'Reilly) 가족'의 일상을 따르는 작품이다. 아빠 패트릭(Pa')과 엄마 리사(Lisa), 그리고 열 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은 낡은 이동식 주택으로 발전기에 의존해야 할 만큼 불안한 생활환경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들판과 말과 개가 함께하는 생활, 좁은 트레일러 안에서도 끈끈하게 이어지는 가족의 시간을 통해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철거되어야 할 장소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집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말과 함께 이동했던 기억과 가족 중심의 생활, 정착민 사회와 다른 삶의 방식 역시 단순한 습관이나 고집이 아닌 자신들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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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틴 캐슬>

[조영준 기자]

 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틴 캐슬>
ⓒ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알렉산더 머피 감독의 다큐멘터리 <틴 캐슬>은 아일랜드 티퍼레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리시 트래블러 '오라일리(O'Reilly) 가족'의 일상을 따르는 작품이다. 아빠 패트릭(Pa')과 엄마 리사(Lisa), 그리고 열 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은 낡은 이동식 주택으로 발전기에 의존해야 할 만큼 불안한 생활환경이다. 심지어 머물고 있는 장소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퇴거의 위협까지 다가온다. 불법 부지로 이동 주택을 둘 수 없는 장소에 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들을 단순히 주거 빈곤에 놓인 가족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들판과 말과 개가 함께하는 생활, 좁은 트레일러 안에서도 끈끈하게 이어지는 가족의 시간을 통해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철거되어야 할 장소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집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집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

이 작품에서 역시 가장 먼저 대두되는 것은 주거의 문제다. 열두 명의 가족이 생활하기에 트레일러는 지나치게 좁고, 전기와 난방 같은 기본적인 생활 조건마저 안정적이지 않다.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외부인들의 한밤중 테러도 종종 일어난다. 외부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들에게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제도권의 복지 기관은 새로운 주택으로 옮겨가는 선택지를 현재의 삶을 개선할 현실적이고도 최후의 방법으로 이들에게 제시한다.

문제는 이들 가족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건축물 내부의 영역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과 가족이 돌보는 동물들, 말을 타고 움직일 수 있는 생활까지가 모두 하나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50-60세대의 가구가 하나의 단지를 이뤄 생활하는 정착형 주택의 삶은 보다 안전하고 편리할지언정, 현재와 같은 방식의 생활을 그대로 이어갈 수는 없다. 여기에서 이 작품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자리가 드러난다. 더 좋은 집으로 옮기는 일이 반드시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주거 문제의 복지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현재의 공간에서 가족이 아일랜드 유랑민으로서 누리는 자유와 환희다. 그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누구에게나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안전한 주거를 보장하는 일이 반드시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규격화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다음 세대에 전통을 물려주는 일
 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틴 캐슬>
ⓒ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극 중 오라일리 가족의 정체성은 분명히 유랑민에 있다. 그리고 이들의 상황과 가족의 삶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다. 부모 세대에게 유랑민이라는 정체성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말과 함께 이동했던 기억과 가족 중심의 생활, 정착민 사회와 다른 삶의 방식 역시 단순한 습관이나 고집이 아닌 자신들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생활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장소를 계속 머무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부모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학교에 다니고 정착민 사회와 접촉하며 자신의 삶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한다. 그 경험 속에는 사회가 이들에게 은근히 가해오는 압력과 차별, 유랑민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써 주지 않으며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기고 있지만, 앞으로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아들 숀이 결혼하면서 인근에 위치한 트레일러에서 삶을 이어가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게 보인다. 그것이 공동체의 전통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을 위한 것은 분명 아니지만, 이들 가족이 어떤 것들을 공유하며 나아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하나의 문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의 선택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또한 개인의 선택이며,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비추는 아이들의 성장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궁금해진다.

자신이 살아갈 방식을 선택할 권리
 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틴 캐슬>
ⓒ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결국 다큐멘터리 <틴 캐슬>는 '이 가족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쌓아 올린다. 외부의 위협과 사회의 질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일까지 모두 감내하며 오랫동안 이어온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가족의 모습. 이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는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 모두가 중요해서다.

알렉산더 머피 감독이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삶을 대신해 설명하거나 하나의 사회적 사례로 역사의 흐름 속에 편입시키기보다 오랜 시간 가족 곁에 머물며 그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만든다. 그 결과 영화 안에는 '오라일리 가족으로 대표되는 아이리시 트래블러의 삶'이 아닌, '아이리시 트래블러로 살아온 오라일리 가족'의 모습이 담기게 된다.

한 가지 더 나아가자면, 평등의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단지를 이루며 살아가는 정착민들의 삶처럼 모두 똑같은 형태의 삶을 제공하는 것이 평등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삶이 안전하게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평등인지 말이다. 낡고 불편한 트레일러가 누군가에게는 'Tin Castle', 양철로 만든 성이 될 수 있다는 이 영화 타이틀의 의미가 그렇다. 무엇을 지키고 살아가고자 하는가, 더 나은 삶이라는 이름 아래로 무엇까지 포기하도록 요구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들을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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