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육교에 매달린 한옥... 자신의 집을 이고 다닌 남자

전사랑 2026. 9. 14.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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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을 이고 다닌 현대미술가가 있다. 집의 외형을 탁본 뜨고, 실로 지어 올리며 국제적인 작가로 활동해 온 서도호다.

작가는 왜색을 배제하고 한국 수묵추상을 개척한 아버지 서세옥이 쌓아 올린 가장 한국적인 집에서 성장한 것이다.

가정을 이룬 작가는 인간을 덮는 가장 작은 집인 옷에 집중하며, 가정이야말로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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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의 '공간적 자화상'... 내년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어지는 서도호 개인전

[전사랑 기자]

자신의 집을 이고 다닌 현대미술가가 있다. 집의 외형을 탁본 뜨고, 실로 지어 올리며 국제적인 작가로 활동해 온 서도호다. 유학길에 오른 뒤 받았던 문화적 충격은 뉴욕의 빌딩 사이에 끼어 충돌한 한옥으로 표현됐고 런던 육교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한옥으로 구체화시켰다. 서도호의 '집'시리즈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왜 '집'이었을까.
 Seoul/L.A./NY Home, 1999.
ⓒ 전사랑
2003년 PBS 다큐 < Art21: Art in the Twenty-First Century >에서 작가는 한국화가인 아버지 서세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작업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고 밝힌다. 그리고 뉴욕에 거주할 당시 잠이 오지 않아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던 성북동 한옥집을 옮겨오고자 했다. 접어서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집. 공기처럼, 구름처럼 가볍게 미술관 공중에 떠 있는 그의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몸에 각인된 집을 향한 그리움이 작업의 거대한 모티프가 된 것이다.

탈지리화된 장소

그는 어린 시절 한옥 '무송재'에서 자랐다. 아버지 서세옥이 1973년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집으로 만든 것이다. 이때 작가는 아버지의 주도하에
'해체된' 재료들이 하나의 한옥으로 창조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장인들을 모아 집을 짓는 과정은 6년이 걸렸고, 서도호는 그 건축현장을 '놀이터 같았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 영향일까. 서도호는 여전히 작품으로 집을 짓고 있고, 동생 서을호는 건축가가 되었다. 작가는 왜색을 배제하고 한국 수묵추상을 개척한 아버지 서세옥이 쌓아 올린 가장 한국적인 집에서 성장한 것이다. 2014년 서울시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 한옥은 그에게 특별한 애착과 감정을 넘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정체성이자 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빙/러빙: 서울 집>, 2013-2022.
ⓒ 전사랑
그는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개인적인 공간을 가지고 이동하며 국제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천, 실, 종이처럼 가볍고 변형 가능한 소재로 부동산이라는 장소특정적 개념을 해체하며 '집의 탈지리화'를 시도했다.

본래 집은 낯선 외부환경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경계 짓기 위한 공간이다. 벽을 쌓고, 담장을 두르고 '외부'와 '내부'를 구분 짓는 배타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서도호의 집은 투명하며, 비치는 소재를 사용해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희미하게 허문다. 상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땅에서 떨어져 공중에 매달려 내부를 훤히 보여주기도 한다.

<리빙/러빙: 서울집>은 그의 집 '무송재'를 한지를 입혀 본뜬 작품이다. 탁본을 하려면 끊임없이 문지르고, 매만져야 한다. 작가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쌓아 올린 한옥의 존재가 한지에 입혀질 만큼 매만지고 어루만진 결과물이다. 그만큼 아버지의 정신이 자신에게 온전히 입혀지길, 깃들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완벽한 집_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2024.
ⓒ 전사랑
그에게 있어서 집이란 인간의 육체와 기억을 품는 자화상과 같다. 성북동 한옥뿐만 아니라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작가가 거쳐 간 거주지들은 얇은 천을 통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세월의 흔적에 따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화상처럼, 그의 건축적 자화상도 변화해 왔다.
특히 <완벽한 집>은 작가가 거주했던, 어루만졌던 공간에 대한 물질적 기억을 보여준다. 생활하면서 가장 손때가 많이 타는 콘센트, 손잡이, 수전까지 파스텔톤 천으로 섬세하게 재현한 작업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돌며 다양한 공간을 감각하는 현대인의 디아스포라적 삶을 조명한다.
 둥지/들, 2024.
ⓒ 전사랑
<둥지/들>에서 작가는 자신이 경험했던 공간의 현관, 복도를 이어 붙여 통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관객들은 중첩된 공간을 통과하며 달라지는 색과 공간적 차이를 인식하면서 새로운 경험으로 이전하는 색다른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노블레스> 인터뷰에서 작가는 20세기에 19세기 방식으로 지어진 무송재를 매일아침 나서면서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을 경험했고, 밖에서 집으로 들어갈 때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았다"라고 회고했다. 작가는 아마 이 통로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 생경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여러 공간의 입구가 중첩된 이 작품은, 생경한 공간과 중첩된 시간을 연출한다.

옷, 정체성을 담은 사적인 건축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보다 더 사적인 내면의 공간으로 파고든다. 바로 한 사람을 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집인 의복을 통해 지난 역사와 뿌리, 그리고 정체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2025년 <엘르> 인터뷰에서 작가는 "건축은 옷의 연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옷과 집은 모두 사람을 둘러싸고 덮으며 정체성을 나타내는 개인 공간입니다. 옷으로 말하면 입은 사람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이동 가능한 개인적 공간인 거죠."
 <유니폼/ 들: 자화상/들(나의 39년)>, 2006.
ⓒ 전사랑
옷이 정체성을 보여주는 개인 공간이라는 말은 조금은 지나친 것 같지만, <유니폼/들: 자화상/들(나의 39년)>을 보면 작가의 말이 단번에 수긍이 간다. 유치원복부터 서울대학교 교복, '한국 남자'라면 누구든지 입어야 하는 군복과 민방위 훈련복까지. 이는 "이동 가능한 개인적 공간"에서 나아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나아가 작가의 계층과 학벌, 사회적 위치와 환경을 단번에 보여주는 표상이자, 국가 권력과 사회화 제도가 개인의 신체적 영역까지 파고든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화상>, 2026.
ⓒ 전사랑
이 작품을 보면서 나의 옷차림을 돌아본다. 서도호라는 작가는 집요하게 공간을 통해 '자화상'을 만들고 있는데 내가 '입고 있는' 공간의 자화상은 어떠할까?

나는 까만색 포대자루와 같은, 입는 사람에게 가장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검은 포대자루 원피스'는 모두 한 벌씩은 있을 것이다. 바쁜 아침, 그 포대자루 원피스 하나만 있으면 코디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덮어쓰기만 하면 된다. 조바심 나는 아침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안아주는 공간.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것에 익숙하고, 나를 위한 시간보다는 남을 위해 바쁜 사람들의 전형적인 유니폼이다. 옷은 현재의 나를 소리 없이 증언한다.

서도호 코트, 관계를 입다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작가의 가장 내밀한 가족 관계도가 펼쳐진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작가의 코트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작가는 부모님, 아내, 아이들이 입던 옷의 안감을 잘라 자신의 코트 안에 주머니로 덧붙이고, 그 안에 각자의 애착 물건을 넣었다. 단독자로서의 '자화상'이 타인과의 '관계성'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사랑의 기억> 레코트 협업, 2026.
ⓒ 전사랑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는 "천으로 만든 집은 대부분 독신일 때 만든" 것이라며, "빈 방에 혼자 앉아 그 방과 대화하며 나온 작품"이었으나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가정이 됐다"라고 말했다(<경향신문>).

가정을 이룬 작가는 인간을 덮는 가장 작은 집인 옷에 집중하며, 가정이야말로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임을 보여준다. 완성된 코트를 입어보며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적시는 작가의 영상이 작품 옆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나를 있게 한 사람들과 나로 인해 존재하는 이들이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모여 있으니,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이 작품을 한참 들여다보며 가상으로 나만의 코트를 만들어 본다. 아버지의 양복, 엄마의 넉넉한 원피스, 두 자매들의 옷도 골라 본다. 그리고 남편의 파란 와이셔츠와 아들과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옷의 안감도 잘라 내 코트 안에 덧댄다. 그리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생각하며 각각의 주머니 안에 넣어본다.

코트를 받아 들고 영상 속에서 감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작가와 달리 생각만 해도 코트가 무겁고 내 존재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아마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해 온 작가와는 달리, 나는 그 관계성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서도호 코트'를 만드는 대신, 입고 있는 포대자루 원피스라도 벗으리라 마음먹는다.

매일 아침 미술관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의 줄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서도호는 가장 보편적인 소재로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다른 현대미술 작품과 달리 멀리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그가 살아온 집과 유니폼은 절대 보편적이라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그 어떤 개인에게 도달해 가장 깊숙한 내면을 파고든다. 그가 집으로부터 시작해 집 내부의 사소한 외형들 (손잡이, 수도꼭지 같은)을 어루만지고, 옷이라는 가장 작은 공간까지 침투하듯이.

<서도호>
2027년 2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일반 8000원

참고

https://noblesse.com/아름지기-정민자-고문은-멈추지-않는다
https://futureheritage.seoul.go.kr/futureHeritageMeet/futureHeritage/view.do?htNo=2303
https://www.isbcc.or.kr/seongbuk/cultural/detail/189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35233
https://www.elle.co.kr/article/1882471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5/apr/13/do-ho-suh-walk-the-house-tate-modern-interview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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