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엔 1000명 이름 빼곡한데…시상대엔 왜 3명만 올랐을까[125년 노벨상 시대를 담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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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첫 시상 이후 125년.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발견하던 시대에서 수천 명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로 변했다.
한 명의 천재가 이론으로 예측한 현상을 수천 명의 과학자가 한 세기 뒤 직접 확인한 이 장면은 현대 과학의 발견 방식이 지난 1세기 동안 얼마나 근본적으로 달라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을 연구하는 왕 교수는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단독 저자로 발표했지만, 2015년 중력파 검출은 10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의 결과였다"며 "지난 한 세기 동안 과학적 발견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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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O 1200명이 중력파 찾아도 노벨상은 3명
'고독한 천재'에서 거대 공동연구로
100년 만에 달라진 발견의 풍경
편집자주
1901년 첫 시상 이후 125년.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발견하던 시대에서 수천 명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로 변했다. 아시아경제는 노벨상 125년을 통해 과학적 발견의 주체와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노벨상이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지를 7회에 걸쳐 살펴본다.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논문에 적힌 저자의 이름은 단 하나였다. 100년 뒤인 2015년 9월14일, 아인슈타인이 예측했던 중력파가 처음으로 직접 검출됐다. 약 13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블랙홀이 충돌하며 발생한 '시공간의 물결'을 미국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가 포착한 것이다. 이듬해 발표된 논문에는 수십 년간 연구를 이어온 LIGO·비르고(Virgo) 국제공동연구진 1000여명의 이름이 빽빽하게 실렸다.
한 명의 천재가 이론으로 예측한 현상을 수천 명의 과학자가 한 세기 뒤 직접 확인한 이 장면은 현대 과학의 발견 방식이 지난 1세기 동안 얼마나 근본적으로 달라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성과 앞에서 2017년 노벨물리학상은 레이너 바이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 배리 배리시·킵 손 칼텍 명예교수 단 세 사람에게만 돌아갔다. 수상 이유는 'LIGO 검출기와 중력파 관측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로'였다. 수천 명이 하나의 발견을 함께 만드는 시대에도 노벨상은 그 가운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소수를 가려낸 셈이다.

왕다순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인슈타인과 LIGO의 100년 차이를 현대 과학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을 연구하는 왕 교수는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단독 저자로 발표했지만, 2015년 중력파 검출은 10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의 결과였다"며 "지난 한 세기 동안 과학적 발견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과학 지식이 쌓이고 연구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한 사람이 모든 이론과 실험, 장비, 데이터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중력파 검출에도 레이저와 광학, 진공·정밀제어 기술부터 컴퓨팅과 데이터 분석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다. 수많은 연구자가 수십 년에 걸쳐 이를 하나의 거대한 관측 시스템으로 완성하면서 비로소 중력파를 직접 검출할 수 있었다.
손 교수는 2017년 노벨 강연에서 첫 중력파 관측을 약 1200명의 LIGO·비르고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반세기 가까이 노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포함한 세 명에게 '결정적 기여'에 대한 노벨상이 수여됐지만 "주된 공로(primary credit)는 전체 공동연구진의 몫"이라며 자신을 공동연구진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icon)'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중력파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는 1960년대 이론으로 예측된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됐다. 힉스 입자는 기본입자들이 질량을 갖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힉스 입자를 찾아낸 아틀라스(ATLAS)와 CMS 두 대형 국제공동실험에는 각각 약 3000명의 과학자가 참여했다. 하지만 이듬해 노벨물리학상은 이론을 세운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이론을 세운 사람과 이를 실험으로 확인한 수천 명 사이에서 노벨상은 '결정적인 이론적 발견'을 한 사람을 선택했다.

노벨상에는 오래된 원칙이 있다. 노벨재단 정관은 한 상을 세 명보다 많은 사람에게 나눠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20세기 초 만들어진 상의 기본 틀은 수천 명이 논문 한 편을 함께 쓰는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프리얌바다 나타라잔 미국 예일대 천문학·물리학 교수는 이런 현실을 두고 "3인 규칙은 오늘날 발견이 이뤄지는 방식에 비춰보면 시대에 다소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나는 '고독한 천재(lone genius)'라는 모델을 별로 믿어본 적이 없다. 훌륭한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학은 원래부터 다른 사람이 축적한 지식과 연구 위에서 발전했고, 오늘날 달라진 것은 그 집단성이 과거보다 훨씬 눈에 잘 보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촬영하거나 두 블랙홀이 충돌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누구도 '이것은 나 혼자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왕 교수도 현대 과학에는 '지식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그 지식을 인정하는 방식' 사이의 불일치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공동연구에서도 중심 아이디어를 내거나 지적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을 가려낼 수 있지만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것과 그들이 그 발견을 혼자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수에게 영광이 집중되면 실험 장치와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개발, 검출기 교정 등 발견에 필요한 역할을 맡은 수많은 기여자가 대중에게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왕 교수는 비슷한 기여를 했더라도 이미 명성과 지위를 가진 연구자가 더 많은 공로를 인정받는 '매튜 효과(Matthew effect)'도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거대 공동연구 시대에도 남은 '개인의 통찰'
그렇다고 현대 과학에서 개인의 역할이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작은 연구팀과 큰 연구팀은 과학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팀은 기존 질서를 깨는 새로운 연구 방향을 만드는 데 상대적으로 강하고, 대규모 팀은 이미 등장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발휘한다.
나타라잔 교수 역시 "개인이나 작은 그룹이 고위험·고수익의 급진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며 모든 과학적 발견을 대형 공동연구라는 하나의 틀로 바라봐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토비아스 에르브 독일 막스플랑크 육상미생물학연구소장도 "과학은 언제나 집단적 활동이었다"며 "달라진 것은 우리가 풀려는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훨씬 정교한 기술과 장비, 학제 간 협력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연결을 찾아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지식의 경계를 밀어내는 것은 여전히 개인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히로시 시미즈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과학은 개인·기관·세대에 걸쳐 축적되고 공유되는 지식의 네트워크 위에서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과학적 발견 전체를 한 사람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도 "하나의 돌파구에 기여한 모든 사람을 가려내 인정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125년 된 노벨상의 딜레마가 드러난다.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왕립과학원의 페테르 브르제진스키 스톡홀름대 교수는 "3인 제한 문제는 과거에도 왕립과학원 내부에서 제기되고 논의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론은 변화보다 유지에 가깝다. 그는 "현재의 공감대는 가까운 미래에는 노벨상 수상자 선정 규정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르제진스키 교수는 노벨상이 모든 참여자의 기여를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한 제도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을 세상에 알리고, 그 발견과 연결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다음 세대 연구자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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