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물러난 지금, 韓 GDP 두배 될 기회” 노벨상 수상자의 조언

채혜선 2026. 9. 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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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크레이그 멜로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 교수가 지난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미국이 뒤로 물러난 지금이 한국에는 기회입니다.”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크레이그 멜로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 교수는 “한국 정부가 올해 과학 예산을 두 배로 늘렸으면 한다. 이는 큰 결실로 돌아올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학연구원에서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멜로 교수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RNA 간섭(RNAi)’ 현상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RNA(리보핵산)·유전자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멜로 교수가 한국의 ‘기회’를 강조한 건 치료 기술의 발전 속도를 세계 각국의 연구·개발(R&D) 투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뒤 20년간 질병의 유전적 원인을 찾고 치료할 가능성은 커졌지만, 실제 치료제로 이어갈 투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멜로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 정부가 투자를 축소하면서 상황은 훨씬 악화했다”며 “안타깝게도 현재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치료 가능성)과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치료제 개발)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지금 과감히 투자하는 국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벨 수상자 “희귀질환 투자, 한국엔 기회”


멜로 교수는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노보노디스크를 예로 들며 “한국에서 나온 몇 개의 연구 성과가 신약 개발로 이어진다면 국내총생산(GDP)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며 “한국이 이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RNAi는 희귀질환의 치료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멜로 교수는 인터뷰 당일 진행한 서울대 의대 강연에서 RNAi 현상의 발견 과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많은 희귀질환은 돌연변이 유전자가 원인”이라며 “이제는 어떤 유전자가 질병을 일으키는지 찾아내고, 유전 정보를 수리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 정보를 읽는 데서 나아가 이를 고쳐 질병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채종희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장(왼쪽)과 크레이그 멜로 교수가 지난 11일 서울대 의학연구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멜로 교수는 특히 희귀질환을 '연구비 장벽'이 높은 분야로 꼽았다. 그는 “인간 유전학의 발전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지만, 투자 부족으로 치료제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위험이 크고 수익성이 낮은 희귀질환 연구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결국 학계에서 치료 표적을 발굴하고 위험을 낮춰 임상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 3000억원을 희귀질환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했다.

멜로 교수는 “정확히 올바른 선택”, “매우 기대되는 기회”라고 말하면서 ‘나무 심기에는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고, 두 번째로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 이어 “(이건희 기부금은) 미래를 위해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변화를 만들어내고 행동을 일으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바로 지금이 그때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의학 연구를 지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사회 환원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은 이건희 기부금을 바탕으로 소아암·희귀질환 연구와 치료를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인터뷰에 동석한 채종희 서울대병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장은 “희귀질환 연구는 실패를 각오하고 도전해야 하는 연구인 만큼 이건희 기부금이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못 했을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은 살아서는 한국의 미래를 위한 반도체를, 돌아가셔서는 미래 과학자들에게 꿈을 주셨다”고 말했다.

멜로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을 향한 격려의 메시지도 남겼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믿어라. 자신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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