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놀았다"... 1884년 조선 관리가 남긴 놀라운 기록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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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연휴 마지막 날이 토요일이어서 아쉽게도 쉬는 날 하루를 잃었다. 왜냐하면 현행법상 추석과 설날 연휴의 경우에는 일요일과 겹치거나 다른 공휴일과 겹칠 때 대체공휴일이 생기지만, 토요일과 겹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설 연휴, 추석 연휴, 어린이날에만 적용되었으나 이후 점차 확대되어 현재는 3.1절, 노동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부처님오신날, 크리스마스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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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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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명절 승차권 예매를 하루 앞둔 6일 서울역 전광판에 관련 안내가 표시되고 있다. |
| ⓒ 연합뉴스 |
휴일이 다른 기념일과 겹칠 경우 달력의 앞이나 뒤 하루를 지정해서 쉬게 하는 풍습은 고대 로마나 중세 유럽에서도 간혹 실시된 적이 있다. 종교 축일과 정기 휴일이 겹치는 경우였다. 물론 요즘 우리가 누리는 노동법적 의미의 유급 공휴일 연장 제도와는 다르다.
현대적 대체공휴일의 법적 기원은 1871년 영국의 '은행휴일법'(Bank Holidays Act)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일요일이 종교 축일과 겹치거나, 특정 은행의 업무가 많아서 일요일에도 종업원들에게 일을 시킨 경우 착한 은행주는 월요일에 은행 문을 닫고 직원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일반 어음이나 약속어음의 지급 기일이 그날이면 은행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지급 의무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던 은행가 출신 정치인 존 러벅(1834-1913)이 추진한 법이 바로 은행휴일법이었다. 은행이 휴일일 경우 그날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은 다음 영업일에 지급해도 적법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은행원이 쉬는 날에서 시작된 제도가 사회 전체가 쉬는 날로 확대되었고, 결국 대체공휴일로 발전했다.
개화기에 시행된 대체공휴일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된 건 2014년이었다. 2013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다음 해인 2014년 추석에 처음 적용되었다. 불과 12년 전이다. 초기에는 설 연휴, 추석 연휴, 어린이날에만 적용되었으나 이후 점차 확대되어 현재는 3.1절, 노동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부처님오신날, 크리스마스에도 적용된다.
이 제도 도입 논의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1959년에는 공휴일중복제, 1989년에는 익일휴무제 등의 이름으로 시행되었지만 곧바로 폐지되었다. 2009년에도 대체휴일제 논의가 있었지만 경영 악화와 생산성 저하를 염려하는 경영자들의 반대와 이견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보다 훨씬 이전, 개화기에 우리나라의 한 기관에서 대체공휴일이 시행된 적이 있다. 1883년 12월에 부산항 감리서 서기로 부임하여 1894년까지 부산에서 감리서 방판, 다대진 첨사 등으로 근무한 민건호가 남긴 일기 <해은일록>에 대체휴일제 이야기가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감리서는 부산항에 있던 해관(세관) 업무를 감독하는 관청이었다.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해은일록> 1884년 7월 25일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침에 흐리다가 늦게 맑음. 휴일이다. 금일은 임금의 탄신일이다. 온 나라가 모두 축하하여 마땅히 임금을 위해 잔치를 벌여야 마땅하지만 힘이 약하고 재정이 부족하여 감히 뜻을 내지 못하고, 모르는 채 그냥 지나갈 계획이다.
다음 날인 7월 26일 자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흐리다 저녁에는 맑았다.
각국 풍속에 임금의 탄신일에는 축하 행사를 하고 기쁨을 표시한다. 어제는 휴일이었기 때문에 다시 물려서 오늘 또 놀았다. 그러므로 해관에 나가지 않았다.
"다시 물려서 노는 날", 즉 대체공휴일 덕분에 이틀을 쉬고 7월 27일 보슬비가 내리는 날 민건호는 감리서로 출근했다. 해관을 둘러본 후 오시 정각(12시)에 친구인 윤정식 집을 방문했다. 이날 일기에 민건호는 이렇게 적었다.
조금 있다가 당소의(唐紹儀)가 해관에서 왔다. 갑비차, 일본 우유, 흰 설탕 큰 종지로 하나와 궐련 1개를 대접받았다. 여위(余緯)가 궐련 1개를 보냈다. 노부(魯富)가 궐련 1개를 보냈다
공직자인 민건호에게 갑비차(커피) 등을 대접한 당소의는 미국 유학 중 묄렌도르프에 의해 1883년 부산해관의 해관원으로 초빙된 청나라 사람이다. 1884년 말에 인천해관으로 옮겼다. 일기에 등장하는 여위는 부산항에서 근무하는 영국인 해관원이었고, 노부 또한 영국인으로 당시 부산해관을 총괄하는 해관장이었다. 이들 외국인 해관원들이 조선인 해관 감독관 민건호에게 커피, 우유, 설탕, 그리고 담배를 선물하였다는 기록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땅에서 커피를 마신 첫 기록으로의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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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서 추석을 앞두고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 ⓒ 연합뉴스 |
1880~90년대의 실록, 승정원일기, 근대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가 자강(근대화)을 위해 서양의 앞선 제도를 받아들이는데 매우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종이 궁에서 서양 외교관, 선교사, 의료인, 그리고 방문객을 접대할 때 서구식 음식과 서구식 음료(커피)를 사용했다는 것도 그런 모습의 한 부분이었다.
마치 나폴레옹이 영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산업혁명을 이루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발표했듯이, 고종은 탐욕스러운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자강을 이루기 위해 서구의 근대적 제도를 적극 도입했을 수도 있다.
둘째, 선물이나 접대에는 명분과 정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당소의, 여위, 노부는 민건호를 접대하면서 합당한 명분을 내세웠다. 휴일이었던 고종탄신일을 빙자하여 공직자에게 접대한 것이다. 접대받는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이들이 접대에 사용한 물품은 내용이나 분량이 과하지 않았다. 커피 한잔, 설탕 한 종지, 궐련 한 개 등이었다. 역시 받는 사람을 배려한 선택이었다. 선물이나 접대는 명분이 있고, 적당한 범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셋째, 선물이나 접대에 부탁이 섞이면 위험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들 외국인 해관원들은 민건호를 접대하며 그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을 부탁했을 때 그것이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방해하여 법에 저촉될 수 있는 경우"는 부탁이 아니라 청탁이 된다.
공직자에게 접대하거나 선물을 건네며 특별한 내용을 부탁하는 경우 부탁은 부탁에 머무르지 않고 청탁으로 변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소의, 여위, 노부 등이 접대하거나 선물을 전하며 무엇인가를 부탁하였다면 민건호는 청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아마도 밤새 고민하였을 것이다.
다른 날 일기에서 민건호가 고민했던 흔적이 간혹 보인다. 누군가 자신을 접대한 후, 혹은 선물을 전하며 특별한 부탁을 한 내용이 나온다. 영국인 박토목(Bateman)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인 여성과 함께 살던 해관원 박토목은 어느 날 점심시간에 민건호를 집으로 초대하여 1차에서 8차까지 접대했다. 술 한잔으로 시작해서 생선찜, 찜닭, 쌀밥, 떡, 샌드위치, 탕후르, 포도 등을 먹고, 커피와 담배로 끝나는 화려한 접대였다.
그런데 박토목은 접대 후에 어려운 부탁을 전했다. 자신이 동래 지역에 땅을 구해 집을 지어 살 수 있도록 동래부사의 허락을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외국인이 조계지 밖에 집을 맘대로 짓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 부탁을 받은 날 민건호는 밤새 잠을 설쳤다. 그리고 동래부사에게 부탁을 전하기는 하였지만 무리하지는 않았고, 결국 박토목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기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의 이후 생애를 보면 부탁과 청탁의 차이,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적당한 선물과 접대를 명분 있게 했던 청나라 당소의는 조선주재 청나라 공사를 지낸 후 귀국하여, 1911년 신해혁명에 참여했다. 그는 새로 등장한 중화민국의 초대 국무총리직에 올랐다. 부산 세관장 노부는 1886년까지 부산에 머물다 귀국했고, 여위 또한 부산에서 오래도록 근무했다. 반면에 박토목은 곧바로 해관원에서 면직되어 조선을 떠났다.
장관 후보자의 신약 승인 여부를 둘러싸고 "불법적인 청탁이었다"는 주장과 "일상적인 부탁이었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 즐겁게 선물을 주고받아야 할 가을 문턱이 시끄럽다. 예나 지금이나 선물이나 접대는 명분에 맞고, 정도가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선물은 뇌물이 되고, 부탁은 청탁이 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의 저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6).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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