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진흙밭 누볐다…나토 요충지 지키는 ‘K 흑표범’

지난 7일(현지시간) 폴란드 북동부 최전선인 브라니에보의 야외전술훈련장. 현대로템이 수출한 K2 전차 두 대가 진흙밭에 깊은 궤도 자국을 내며 빠르게 파고들었다. 멈춰선 K2는 유기압식 현수장치(ISU)를 이용해 차체를 높이거나 낮추면서 사격 각도를 조절했다. 50t이 넘는 육중한 전차가 차체를 낮추고 포신을 앞으로 뻗은 모습은 K2의 별칭인 ‘흑표’처럼 흑표범을 연상시켰다.
훈련이 끝나자 포탑 위에 오른 정비 인력 두 명이 상체를 숙인 채 케이블을 살폈다. 사격통제장치와 조준경 등 광학장비를 점검하는 절차다. 주포 끝단의 작은 반사경에 레이저를 쏴 주포와 조준장치의 정렬 상태도 확인했다. 케이블 체결 상태가 조금만 어긋나도 사격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어 늘 사격훈련 전후에 하는 작업이다. 현대로템 직원은 현지 인력이 정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NATO 요충지 지키는 K2 ‘흑표’
브라니에보에서 러시아 국경까지는 5㎞ 남짓이다. 훈련장을 떠나 북쪽으로 차를 몰아 10여분을 가자 그로노보 국경검문소가 나왔다. 차단봉은 내려져 있었고 오가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국경(Granica Państwa)’이라고 쓰인 노란 표지판 너머는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자리 잡은 역외 영토다. 러시아 발트함대의 주요 거점이자 미사일 등 전략자산이 배치된 러시아의 유럽 전초기지로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동쪽에는 러시아의 핵심 동맹국 벨라루스가 있다. 브라니에보의 인근 도시 그단스크는 1939년 독일군의 포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이 일대는 나토 동부전선의 최전방이다.

이 최전선을 한국산 K2가 지키고 있다. 현대로템은 2022년 말 첫 인도분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1차 계약분 180대 납품을 마쳤고, 지난달 2차 계약의 첫 물량 28대를 추가 인도하면서 폴란드에 배치된 K2는 208대로 늘었다.
브라니에보 기갑여단에서 K2 부대를 지휘하는 마리우시(Mariusz) 중위는 “우리의 임무는 국경을 지키는 것이고, 기갑부대는 폴란드군의 중추”라며 “우리는 러시아 국경과 가장 가까운 군부대다. 그래서 새 전차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대가 기존에 운용하던 PT-91과 비교해 마리우시 중위가 꼽은 K2의 장점은 기동성과 화력이었다. 자동 표적추적과 디지털 주포 안정화, 자동장전장치를 갖춘 사격통제체계 덕분에 험지에서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표적을 계속 추격하며 사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K2가 PT-91보다 무겁지만 고출력 엔진 덕분에 진흙이 많은 곳에서도 높은 기동성을 낸다고 했다.
실제 이날 훈련장은 발등이 빠질 만큼 질척였지만 K2 두 대는 빠른 속도로 진흙밭을 오갔다. 마리우시 중위는 K2를 “땅 위의 디지털 전투기(digital fighter jet)”라고 표현했다.

━
가동률 90%...그뒤엔 ISS센터
전차 운용에서 제원 못지않게 중요한 숫자가 전차의 ‘가동률’이다. 주행이나 사격 등 본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차의 비율을 뜻하는 수치다. 무거운 차체로 험지를 달리고 사격하는 전차 특성상 훈련이 끝나면 점검과 정비가 필요하다보니 통상 방산업계에선 전차 평균 가동률을 70%로 본다.
하지만 폴란드에 배치된 K2 전차 가동률은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현지에서 빠르게 유지·보수·정비(MRO)를 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2024년 4월 문을 연 그단스크 ISS((In-Service Support)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박상현 ISS센터장을 포함한 현대로템 주재·파견 인력 8명과 폴란드 현지 채용 인력 27명이 근무하면서 MRO를 지원한다. 전화나 이메일로 들어온 전차 운용 관련 문의에 답해주거나 수리에 필요한 기술자문 정비병 교육 등을 맡고 있다. 훈련 현장에 나가 군과 함께 합동 점검을 하기도 한다.

ISS 그단스크 센터의 부품창고에는 선반마다 번호가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부품을 꺼내 전산에 입력하면 재고가 곧바로 차감되고, 한국 본사와 창원공장에서도 폴란드에 어떤 부품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만약 폴란드 군부대 현장에서 전차에 이상이 생기면 절차를 거쳐 현대로템 전사에 공유된다. 정비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빛을 발한 건 지난해 5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연합훈련 때였다. 훈련 중 K2 주요 구성품에 이상이 생겨 다음 날까지 수리를 마쳐야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ISS팀은 교체 부품을 트럭에 싣고 11시간을 달려 슬로바키아 국경까지 갔고, 반대편에서 온 폴란드군과 국경에서 만나 부품을 넘기고 정비를 완료할 수 있었다. 당시 훈련에 참여했던 폴란드군 관계자는 “현대로템의 발빠른 대처 덕에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브라니에보(폴란드)=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암 이겨내고, 감기도 없다”…90대 학자들이 찾은 건강 비결 | 중앙일보
- “반도체 이 4종목, 맘 편히 사라” 여의도 떠나는 노근창 픽 | 중앙일보
- ‘오빠 게이트’ 연 한동훈…“술값 얼맙니까” 스폰서 물먹인 일화 | 중앙일보
- 회기 중 여성과 호텔 간 광명시의원…“사생활 있는 것 아니냐” | 중앙일보
- “여행도 따라가 드려요”…태국서 뜨는 ‘시간당 4만원’ 서비스 | 중앙일보
- 연보랏빛 머리 대신 넥타이…승무원 된 전직 아이돌 사연 | 중앙일보
- 이창동, 24년 만에 베니스 품었다…‘가능한 사랑’ 심사위원대상 영예 | 중앙일보
- 임신설 전혀 없었는데…엄마 된 레이디 가가 “첫 아이와 외출” | 중앙일보
- 여자화장실 벽면서 지문 나왔다…제주 ‘실종 허위종결’ 경찰 또 송치 | 중앙일보
- 이상순 활동 중단시킨 미주신경 질환…‘이 증상’ 땐 당장 누워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