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부커상 소설가 “사랑·미움 뒤섞인 모호한 감정, AI 흉내 못 내”
인종차별 정책 이후 30년 남아공 다뤄
“민주화 때 흥분, 그러나 지금은 씁쓸”
“부커상 받았을 때 남아공 정부 언급 없어”

2021년 『약속』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데이먼 갤것이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만난 갤것에게 인공지능(AI)이 결국 창작 영역을 침범할 것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문학이 담고 있는 감정적 모호함은 AI가 흉내 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내가 순진한 것일 수도 있다”며 머뭇거렸다.
갤것은 “책에서 오로지 줄거리, 플롯만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AI가 그것을 아주 잘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범죄소설이나 로맨스처럼 공식화된 장르는 정해진 도식을 따르기 때문에 꽤 빨리 AI에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갤것은 문학적 소설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봤는데, 문학이 담고 있는 모호함과 모순이 그 이유였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것 같은 인간적 모순, 그것이 만들어내는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은 AI가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갤것은 시간의 가치도 언급했다. “소설 쓰기를 그토록 어렵게, 동시에 읽는 것을 그토록 보람 있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보통 책 한 권을 쓰는 데 2~4년이 걸리고, 시작할 때와 끝낼 때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 안에는 길고 긴 성찰과 수정의 과정이 담긴다. 그 과정이 AI의 작업에는 완전히 빠져 있다.”
갤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출신이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약속』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체제 이후 30여 년 동안 백인 가정이 몰락하는 과정을 4번의 장례식을 통해 보여준다. ‘약속’은 직접적으론 소설에 등장하는 백인 가문이 흑인 가정부에게 주겠다고 한 집과 토지를 뜻하지만, 남아공의 민주화가 약속한 밝은 미래를 은유하기도 한다.
약속했던 그 모습과 현재 남아공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가깝냐고 묻자 갤것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1994년 민주주의가 도래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하고 열려 있었는지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면서도 “지금의 씁쓸함과 실망감과 대조하면 참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30여 년 민주주의 동안 정부가 실제로 바꿔놓은 게 너무 적다는 사실이 큰 슬픔”이라고 했다.

남아공의 열악한 경제 현실 속에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을 리 없다. 갤것은 “내 자존심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부커상을 받았을 때 남아공 정부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한국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일시적이지만 폭발했던 관심, 2030세대의 ‘텍스트힙’ 열풍을 설명하자 갤것은 “희망적”이라고 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책은 매우 비싸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한 달 월급의 절반에 맞먹을 정도라 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관심이 있다면 출판업에 보조금을 줄 수도, 수입 도서 부가가치세를 없앨 수도, 도서관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정부는 별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갤것은 『약속』 이후 신작을 아직 못 쓰고 있다. 그는 “책이 나온 후 3년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강연하며 보냈는데, 그게 제 인생에서 3년을 통째로 지워버렸다”고 했다. 이어 “독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내 신작을 기다리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9일 한국에 처음 방문한 갤것은 한국에서 인상적인 경험으로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방문을 언급했다.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 앞으로 한국을 떠올리면 그 도서관이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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