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내주고 음료 용기까지 바꾼다, 러너 취향저격 나선 브랜드 [비크닉]
국내 러닝 인구가 약 1000만 명에 달하면서 달리기는 대표적인 일상 취미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건 사람이 늘수록 러너의 취향은 오히려 더 잘게 갈린다는 점이다. 개인 최고 기록(PB) 경신을 노리는 사람과 부상 없이 오래 뛰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 다르고, 도로인지 산길인지, 5㎞인지 풀코스인지에 따라 필요한 제품도 달라진다.

브랜드도 이런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이제 ‘달리는 사람’을 하나로 묶기보다 어디서 얼마나 오래 어떤 방식으로 달리는지까지 따져 제품을 설계한다. 동시에 러닝을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경험을 만드는 접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 빨리”보다 “내게 맞게”…세분화하는 러닝 시장
이런 변화는 러너의 목적과 환경에 따라 제품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신발에서 먼저 눈에 띈다. 우선, 트레일 러닝을 즐기는 러너가 늘면서 아웃도어 업계가 제품군을 촘촘히 나누고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올해 봄·여름을 겨냥해 낸 트레일러닝화를 TL-X·TL-P·TL-E로 세분화했다. TL-X는 20~50㎞ 레이스를 겨냥한 숙련자용, TL-P는 50~100㎞ 장거리 레이스와 훈련용, TL-E는 일상 훈련과 초보자를 위한 입문 모델이다. 과거 글로벌 트레일러닝 시장에서 주로 보이던 거리·목적별 세분화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최근 변화는 소비자가 무조건 ‘더 빠른 신발’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무조건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신발보다 내 발에 맞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지를 본다”며 “개인의 필요가 시장 전체 트렌드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제품 개발에도 이런 변화가 반영된다. 코오롱스포츠는 일반 고객과 소속 선수들에게 미출시 제품을 먼저 신겨 필드 테스트를 진행한다. 2026년 가을·겨울 제품은 이를 토대로 신발의 패턴을 수정하고, 경량성과 통기성을 높이기 위해 소재를 바꾸기도 했다.
‘달리는 중’을 겨냥하니 음료 용기도 달라졌다
세분화한 요구는 음료의 용기와 성분까지 바꿨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4월 러너를 겨냥한 ‘게토레이 RUN’을 출시한 데 이어 최근 300mL 소용량 페트병(PET) 제품을 추가로 내놨다.
롯데칠성음료는 “달리는 동안 선호하는 음용량과 용기 형태를 조사했는데, 소용량 선호는 높았지만, 기존 240mL 캔은 양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300mL 제품 개발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러닝 중 여러 번 나눠 마시기에는 한 번 개봉하면 다시 닫을 수 없는 캔보다 페트병이 편리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휴대성을 유지하면서 기존 캔보다 용량은 늘리고, 여러 번 나눠 마실 수 있는 300mL 페트병을 새로 낸 이유다. 러닝 중 손실되는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하면서도 당 섭취 부담은 낮춘 저당 제품으로 설계했다.
눈여겨볼 점은 ‘달리는 중’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이 제품 기획의 기준이 됐다는 점이다. 제품명에 아예 ‘RUN’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제품명 자체를 ‘게토레이 RUN’으로 직관적으로 설정해 러닝이라는 음용 상황을 명확히 했다”며 “소비자가 제품을 보는 순간 언제, 왜 마시는 제품인지 쉽게 이해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스크림·가구도 ‘RUN’…브랜드가 직접 판을 깐다

러닝 열풍은 브랜드 행사로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웰푸드의 파우치 아이스크림 ‘설레임’은 지난해부터 자체 러닝 행사 ‘설레임 RUN’을 열고 있다.
아이스크림과 러닝의 접점은 ‘열기’와 ‘시원함’에서 찾았다. 달릴 때 몸에 열이 오르면 시원한 제품을 찾게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막대나 콘 아이스크림과 달리 뚜껑 달린 파우치 형태라 한 손에 들고 야외에서 먹기 쉽다는 특성도 활용했다.
더 큰 목적은 브랜드 이미지 변화였다. 설레임은 출시 초기 손에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즐기는 프리미엄 파우치 아이스크림으로 주로 젊은 여성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최근에는 러닝과 야외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보다 활동적인 이미지를 더했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린 뒤 열을 식힐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활기차고 건강한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올해 ‘설레임 RUN’ 일반 판매 참가권 2500매는 예매 시작 2시간 만에 매진됐다. 회사는 앞으로도 ‘설레임 RUN’을 대표적인 참여형 행사로 이어갈 계획이다.
아예 러너들을 위해 매장을 내주기도한다. 이케아는 지난 5월 광명점·동부산점 매장 안팎을 달리는 5㎞ ‘헤이 런(Hej Run)’을 열었다. 휠라는 오는 11월 15일 10㎞ 러닝 뒤 에스프레소와 공연을 잇는 ‘런 앤드 에스프레소 10K 서울(RUN & ESPRESSO 10K SEOUL)’을 열 예정이다. 카카오도 오는 10월 10일 1만 명 규모의 ‘카카오프렌즈 런(Kakao Friends Run)’을 열어 캐릭터 지식재산권(IP)과 카카오 서비스를 오프라인 러닝 경험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스포츠 브랜드가 아닌 이종 업종이 러닝을 택하는 건 소비자가 브랜드를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이며 경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로고를 노출하는 것보다 완주와 땀, 함께 달리는 경험처럼 몸으로 겪는 방식이 브랜드 각인에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 브랜드가 러닝 대회에 로고를 붙이는 ‘협찬자’였다면 이제는 직접 판을 짜는 ‘기획자’로 자리를 옮긴 모습이다.
거리와 환경, 목적과 취향에 따라 원하는 제품과 경험이 달라지면서 러너는 더는 하나의 소비자 집단이 아니게 됐다. 브랜드들이 제품을 세분화하고, ‘달리는 중’이라는 상황까지 들여다보고, 직접 러닝 행사를 만드는 이유다. 러닝 시장이 커질수록 브랜드가 보는 소비자의 단위는 오히려 더 작아지고, 그 소비자를 만나는 방식은 더 다양해지고 있다.
■ b.이슈
「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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