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훈련’시켰더니 재노숙률 0%...하와이 노숙인 쉼터의 기적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6. 9. 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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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리(B+HARI), 약 대신 공간·행동으로 뇌 깨우다
34개 활성화 요소로 노숙인 살린 방법론, 서울서 첫선

2025년 2월, 미국 하와이 오아후(Oahu)섬 이와일레이(Iwilei)에 건물 한 채가 문을 열었다. 이름은 쿠무 올라 호우(Kumu Ola Hou). 하와이 말로 ‘새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호놀룰루(Honolulu) 시장과 하와이 주지사가 나란히 서서 개소를 알린 이 건물은 신경학적 차이를 지닌 노숙인을 위한 전환주거 시설이다. 정신건강 문제, 기억 장애, 트라우마, 뇌손상이나 뇌 질환 이력이 있는 노숙인이 입주 대상이었다.

노숙인 쉼터는 세상에 많다. 이 건물이 다른 점은 설계의 출발점이다. 침대와 지붕을 주는 시설이 아니라, 손상된 뇌가 잃어버린 일상의 습관을 다시 배우도록 공간 자체를 하나의 개입 수단으로 설계했다. 이 프로젝트의 구상과 설계를 이끈 마리킴(Ma Ry Kim) 비하리(B+HARI) 공동창업자 겸 대표는 “집은 가장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다”며 “이 집이 하려는 일은 그들이 잃어버린 일상의 습관을 다시 가르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하와이에 문을 연 노숙인 재활 공간 쿠무 올라 호우. (Kumu Ola Hou, 비하리)
결과는 숫자로 나왔다. 개소 첫해 68명이 이 시설에 입주했고, 과정을 마친 사람 중 거리로 돌아간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재노숙률 0%. 프로그램을 마친 입주자 전원이 영구임대 주택이나 지자체 지원 주택으로 옮겨갔다.
재노숙률 0%를 기록한 하와이 노숙인 쉼터. (비하리)
이 결과는 글로벌 브레인 케어 코얼리션(Global Brain Care Coalition·GBCC)의 2025년 연례 보고서와, 세계적 경제·보건 정책 싱크탱크인 밀컨 인스티튜트(Milken Institute)의 보고서 ‘뇌과학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델(A Model to Put Brain Science into Action)’에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 사례로 실렸다. 연구를 주도한 마리킴 대표는 2025년 밀컨 인스티튜트 스파크(SPARC) 콘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초청돼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병원이나 대학이 아닌 노숙인 주거 건물 한 채가 치매 예방 등 세계 뇌 건강 논의의 한복판에 사례로 올라간 것이다.
노숙인 쉼터와 치매 무슨 연관?
여기서 당연한 질문이 나온다. 노숙인 주거 시설의 성과가 치매와 무슨 상관인가.

상관이 있다. 그것도 아주 직접적으로. 사람들은 흔히 문제를 칸칸이 나눠 담으려 하지만, 비하리 방법론은 몸 안에서도, 뇌 안에서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도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비하리 측이 진단하기에 노숙인이 거리로 돌아가는 이유와 노인이 치매로 자립을 못하는 이유는 뇌 시스템상 문제가 매우 비슷하다. 기억을 만들고 꺼내는 해마, 계획하고 판단하는 전두엽, 그리고 공간을 인식하고 길을 찾는 해마-내후각피질 회로에 이상이 생겨서다. 이 시스템이 손상되면 사람은 약을 제때 먹고, 아침에 일어나 씻고,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능력을 잃는다. 노숙인에게 그 결과는 재노숙일 수 있고, 노인에게는 치매와 함께 오는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쿠무 올라 호우가 한 일은 공간을 통해 뇌 시스템을 다시 깨우고 정상화시키는 것이었다. 실내 창고형 공간 안에 ‘동네 골목’을 재현, 거리 생활에서 실내로 넘어오는 과정을 덜 낯설게 했고, 입주자의 사회정서 회복 단계를 반영한 주거 유닛, 통제감을 되돌려주는 가변형 가구, 문화적 친숙함을 주는 요소 등을 곳곳에 배치했다. 경험과 자극에 따라 뇌의 신경 회로가 새로 연결되거나 재편되는 성질인 뇌 가소성(neuroplasticity) 연구를 이 공간에 심은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쿠무 올라 호우는 실내 창고형 공간 안에 ‘동네 골목’을 재현, 거리 생활에서 실내로 넘어오는 과정을 덜 낯설게 했다. (비하리)
이 건물은 그 원리를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집단에 적용해 현실에서 검증했다. 뇌손상과 기억 장애를 안고 거리에서 살던 사람이 몇 달 만에 일상의 습관을 되찾을 수 있었다면, 아직 크게 무너지지 않은 노인의 뇌를 미리 지키는 일은 훨씬 더 달성 가능한 과제일 수 있다.

마리 킴 대표는 “이런 환경이 새 시냅스 연결과 신경세포 생성,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발현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례를 통해 증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논리는 세계 의학계도 뒷받침한다. 2024년 세계적 의학 저널 랜싯(Lancet)의 치매위원회는 치매의 최대 45%가 조절 가능한 생활·건강 요인을 관리하면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론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됐다. 핀란드의 핑거(FINGER) 연구가 운동, 인지 훈련, 영양, 사회 활동을 결합한 여러 영역의 프로그램이 실제로 인지 기능을 지키고 개선한다는 사실을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으로 처음 보여줬다. 이어 미국의 유에스 포인터(US POINTER) 연구가 훨씬 크고 다양한 인구 집단에서 비슷한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유전적으로 알츠하이머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서도 효과가 관찰됐다.

치매에 멍드는 한국 사회에 희망?
이제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어느 날 부모님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그다음은 대개 정해진 수순이다.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간병인을 구하고, 형제들끼리 돈 문제로 얼굴을 붉히다가, 결국 누군가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근무를 줄인다. 우리는 이걸 ‘어쩔 수 없는 일’ ‘노화의 한 과정’, 심하게는 ‘집안 내력’으로 받아들인다.

이걸 경제 문제로 바꿔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실시해 지난해 3월 결과를 발표한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9.25%다. 이를 장래인구추계에 적용하면 치매 환자는 올해 100만명을 넘어서고 2044년에는 200만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는 이미 298만명으로 추정된다.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4’를 보면 국가 전체 치매관리비용은 2023년 22조9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95%에 달하고, 2050년에는 88조6000억원으로 네 배 가까이 불어날 전망이다. 환자 한 명을 돌보는 데 드는 연간 비용은 2639만원. 가구 평균 소득의 43.8%가 치매 한 명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발생률 추이도 심상치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코호트 79만명을 12년간 추적한 연구(황보송 외, 프런티어스 인 에이징 뉴로사이언스(Frontiers in Aging Neuroscience), 2023년)에 따르면 새로 치매를 앓게 되는 사람이 1000인년당 2006년 1.56명에서 2017년 6.94명으로 늘었다. 같은 연구는 한국인의 치매 위험 요인 가운데 신체활동 부족의 기여도가 8.1%로 가장 크다고 짚었다. 미국에서는 최근 발생률이 꺾이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반대 방향이다.

더 중요한 숫자가 하나 있다. 관리비용의 절반 가까이가 병원비가 아니라는 점이다. 2023년 기준 직접의료비는 42.3%에 그치고, 장기요양보험 41.9%, 간병·교통 같은 직접비의료비 12.5%, 생산성 손실 3.3%가 나머지를 채운다. 여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족의 시간이 얹힌다. 같은 역학조사에서 재가 치매 환자 가족의 45.8%가 돌봄 부담을 호소했고, 시설에 보내기 전까지 가족이 직접 돌본 기간은 평균 27.3개월이었다. 각 가정이 조용히 떠안는,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숨은 부채’다.

한 사람의 발병을 몇 년만 늦춰도 직접 의료비와 가족이 떠안는 숨은 비용이 함께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비하리(B+HARI), 왜 지금 주목받나
쿠무 올라 호우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뇌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는 비하리다. 뇌 건강 응용 연구소(Brain Health Applied Research Institute)의 약칭이다. 30년 가까운 경력의 뉴로 건축가(neuro-architect) 마리킴 대표가 하버드에서 수련한 신경과 전문의 카즈마 나카가와(Kazuma Nakagawa) 박사와 공동 설립했다. 참여 교수진 8명 중 6명이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로 부모나 조부모를 잃은 사연 때문에 설립 초기부터 전문가들이 잇따라 합류했다는 후문이다.

비하리의 방법론은 핑거와 유에스 포인터, 랜싯 위원회가 뒷받침한 다영역 접근을 신체 움직임, 감각 자극, 인지 과제, 공간 환경을 결합한 34개의 ‘활성화 요소(activator)’로 옮긴 것이다. 그 척추 중 하나가 ‘이중 과제(dual-tasking)’ 훈련이다. 몸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인지 과제를 수행하게 해 운동과 두뇌 훈련을 같은 순간에 하게 만든다.

비하리의 방법론을 공동으로 만든 코트니 누노카와(Courtnee Nunokawa) 박사는 “근육이 움직이면 이리신(irisin)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은 혈뇌장벽을 넘어 해마의 BDNF를 뒷받침할 수 있다”며 “근육 활동이 뇌의 성장과 청소, 나아가 가소성을 담당하는 기계에 보내는 화학 신호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DNF, 즉 뇌유래신경영양인자는 신경세포의 생존과 성장, 새로운 연결 형성을 돕는 단백질로 ‘뇌의 비료’로 불리기도 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인지 과제를 수행하게 해 운동과 두뇌 훈련을 같은 순간에 하게 만드는 비하리 방법론. (비하리)
후각 자극도 34개 활성화 요소 중 하나다. 냄새는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과 유난히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시각이나 청각으로는 닿기 어려운 기억 회로를 여는 강력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비하리 측 설명이다.
뇌 자극 워크숍...서울서 첫선
워크숍을 주도하고 있는 마리킴 비하리 대표. (비하리)
이 방법론이 최근 서울에서 워크숍 형태로 처음 소개됐다. 지난 9월 6일 강남의 한 클리닉 로비. 흰머리의 노인부터 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까지 열두 명 남짓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섰다. 첫 순서는 그림 그리기다. 눈을 감고, 양손에 쥔 펜 두 자루를 동시에 움직여, 종이에서 떼지 않고 한 번에 자기 얼굴을 그린다. 결과물이 공개되자 웃음이 터진다. 한쪽 눈은 위로 올라가 있고 턱선은 어긋나 있다.

이어 일부러 팔다리의 대칭을 비튼 외다리 균형, 안에 작은 공이 든 투명 풍선을 손바닥 위에 올려 쉬지 않고 균형을 잡는 훈련이 이어진다. 뇌가 다음 동작을 쉽게 예측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몸이 휘청하고 “어라, 왜 중심이 안 잡히지” 하는 당혹이 스치는 그 순간, 뇌가 오차를 감지하며 더 깨어난다. 손을 쓰는 훈련이 유독 강조된다. 뇌의 감각·운동 피질이 몸의 각 부위에 얼마나 할당돼 있는지를 그린 지도, 이른바 호문쿨루스(homunculus)에서 손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마리킴 대표는 “손은 뇌가 몸 밖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이해해도 된다”며 “그래서 손 움직임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낯설고 예측하기 힘든 방향의 다양한 몸동작으로 참가자들의 두뇌를 계속 자극했다.

한국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한 비하리. (비하리)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처음과 똑같이 눈을 감고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그린다. 좌우 대칭이 눈에 띄게 맞아 들어가 있고 선도 훨씬 안정적이다. 한 시간 남짓한 동작만으로 뇌가 몸의 지도를 다시 그린 것처럼 보였다.

비하리는 왜 하필 지금, 한국을 선택했을까. 비하리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치매가 온 뒤에 관리하는 사후 방식에서, 오기 전에 예방하거나 늦추면서 개인의 주체성과 존엄을 지키는 방식으로 인식 전환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비하리는 이를 ‘뇌 청지기(stewardship)’ 패러다임으로 이행이라 부른다.

다음은 마리킴 대표, 그리고 비하리 방법론의 공동 개발자인 코트니 누노카와(Courtnee Nunokawa) 박사와의 일문일답.

* 30년 가까이 건축을 한 사람이 어떻게 신경과학으로 넘어왔나.

마리킴 대표: 한국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자랐고,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한 뒤 영국에서 건축사 면허(RIBA·ARB)를 받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에서 주로 일했다. 젠슬러(Gensler)에서 프린시펄이자 지역 디자인 총괄, 복합개발 부문 글로벌 공동대표를 지냈다. 신경과학 책을 처음 펴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건축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걸 바꾼 건 두 번의 개인적 사건이었다.

마리킴 비하리 대표. (비하리)
하나는 16년 가까이 전 쌍둥이 임신이었다. 임신 19주에 아들의 탯줄 기능이 멈췄다. 아들은 뱃속에서 사망할 것으로 예상됐고, 그러면 쌍둥이 누이도 함께 잃을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아들은 영양과 산소 공급이 사실상 끊긴 채로 20주를 더 버텼다. 출생 체중이 그 증거다. 딸은 정상인 약 2.7kg, 아들은 약 500g. 그런데 그 아들이 뇌 손상을 포함해 어떤 이상도 없이 태어났다. 병원 신경과 팀이 내게 “당신의 뇌와 아들의 뇌가 어떻게 이걸 해냈는지 설명해보라”고 도전했고, 그때 처음 기능신경해부학을 공부했다.

다른 하나는 런던에서 하와이로 돌아온 뒤 겪은 형부 어머니의 일이다. 중증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이모는 보통이라면 병원에서 고통 속에 생을 마쳤을 것이다. 대신 불교 사찰로 옮겨져 돌봄을 받았다. 거기서 기능이 눈에 띄게 회복됐고, 결국 간병 지원을 받으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 10년 가까이 더 삶의 질을 유지했다. 건축가로서 놀라운 일이었다. 설명해줄 과학을 찾아봤지만 충분한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카가와 박사와 함께 직접 답을 찾으러 연구소를 세웠다.

두 사건이 가르쳐준 것은 하나다.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깊이 만들어진다는 것. 형부의 어머니에게는 사찰이, 아들에게는 내 몸이 그 환경이었다. 그리고 환경은 건축가가 만든다. 30년 동안 사람들이 매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조건을 설계하면서, 그 조건이 뇌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걸 알고 난 뒤로는 예전처럼 건축을 할 수 없었다.

* 쿠무 올라 호우도 그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

마리 킴 대표: 그렇다. 사찰에서 배운 것과 아들 필립에게서 배운 것을 근거 기반의 주거 프로젝트로 되살린 것이 쿠무 올라 호우다. 지금은 그 안에서 가르치는 비하리 메서드를 인신매매 피해와 수감을 경험한 여성과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젝트로도 확장하고 있다. 가족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어머니는 뇌 영상에서 혈관성 백질 병변이 광범위하게 나타났지만 기능 저하는 거의 없었고, 15년 전 우리의 첫 사례 연구 대상이 돼 지금까지 비하리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는 80세에 생명을 잃을 뻔한 중증 외상성 뇌손상을 입고도 9개월 만에 거의 모든 기능을 회복했다. 우리에게 이건 매우 개인적인 사명이다.

* 비하리라는 이름에 담긴 뜻은.

마리 킴 대표: B는 뇌(Brain), HARI는 뇌 건강 응용 연구소(Health Applied Research Institute)의 머리글자다. 그런데 HARI라는 말 자체에 뜻이 있다. 여러 나라 말에서 해, 햇빛, 어둠을 걷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뇌 질환은 어둠에 싸여 있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들의 어둠, 치매 진단이 주는 두려움, 기억이 흐려지면 그저 앉아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 비하리는 그 어둠에 빛을 들이려고 만든 조직이다. 한국 사람인 내게는 뜻이 하나 더 있다. 우리말 “하리”, 그러니까 “하겠다”는 다짐이다. 어둠 속에 앉아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 아는 것이 빛이 되고, 빛이 가능성이 되고, 가능성이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된다.

* 왜 벤처 투자를 받지 않고 비영리로 만들었나.

마리 킴 대표: 우리 목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뇌 건강 프로그램이 돈이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닿는 것이다.

코트니 박사: 지금은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초기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프로그램과 설계의 의도가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파일럿을 돌리는 동안 투자자의 기대와 수익 목표가 끼어들면 그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 그래서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 인지 훈련 프로그램은 많은데,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코트니 박사: 방법이야 많다. 다른 건 뼈대다. 비하리는 한 가지 학문 위에 세운 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생각법을 격자(latticework)처럼 엮어 만들었다.

찰리 멍거(Charlie Munger)가 이런 말을 했다.

“망치만 든 사람 눈에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인지 프로그램 대부분이 이 망치 신세다. 병원의 인지 재활은 ‘치료해서 되돌리는’ 눈으로만 뇌를 보고, 웰니스 센터는 ‘생활습관’의 눈으로만,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의 눈으로만 본다. 우리 팀에는 신경과학자와 신경과 의사, 하와이와 일본에서 각기 다른 자격을 가진 의료인, 건축가와 디자이너, 그리고 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다. 과학자와 의사들이 쏟아지는 연구를 빠르고 깐깐하게 걸러내면,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그 검증된 과학을 사람이 실제로 그 안에서 살고, 몸으로 겪고, 일상에서 덕을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꿔낸다. 논문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 환경을 계속 달리해 움직임과 뇌를 자극한다는 개념이 생소한데.

코트니 박사: 한 가지씩 따로 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섞는 게 핵심이다. 몸을 움직이게 하고, 동시에 머리를 쓰게 하고, 거기에 향기 같은 단서를 주고,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는 공간까지 함께 주면 뇌는 한 세션 안에서 운동, 판단, 기억, 감각을 담당하는 시스템을 한꺼번에 가동할 수밖에 없다. 이때 공간은 그냥 배경이 아니다. 뇌를 떠받치는 ‘약 성분’ 하나로 작동한다. 하나 더 있다. 모든 활동을 여럿이 함께 하도록 짜놓았는데, 이 사회적 연결 자체가 랜싯 위원회가 꼽은 치매 위험 조절 요인 중 하나다. 같이 하는 건 과학과 별개가 아니라 과학의 일부다.

*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나.

마리 킴 대표: 한국은 이미 웰니스에서 세계를 앞서가는 나라다. 치매 예방에서도 앞장설 수 있는 자리에 이미 서 있다.

코트니 박사: 한국 가족에게 필요한 건 체념이 아니라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감각, 그리고 존엄이다. 뇌 건강은 언젠가 잃을 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 함께 쌓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파일럿을 하고 있다. 이 방식이 한국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도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지를 보는 단계다. 뇌 건강을 나중에 사회가 떠안을 비용이 아니라 일찍 투자할 대상으로 보는 공중보건 모델, 그쪽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맨 오른쪽 선두에 선 사람이 비하리 방법론 공동개발자 코트니 박사다. (비하리)
* 궁극적으로 무엇을 바꾸고 싶나.

마리 킴 대표: 뇌를 돌보는 방법만 바꾸자는 게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하와이 원주민 문화에서는 마음과 몸, 영혼, 오하나(ʻohana·가족), 공동체, 아이나(ʻāina·땅과 환경)를 따로 떼어 보지 않는다. 뇌 건강도 장기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사람 전체의 균형 문제다. 움직임, 균형, 리듬, 감각, 연결, 목적, 환경, 공동체. 원주민들이 수백 년 동안 몸으로 실천해온 이 지혜에 현대 신경과학이 과학이라는 언어를 하나 더 얹어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과 하와이는 닮은 데가 많다.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지키고, 지혜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전통이 깊다. 하와이 원주민의 지식과 한국의 문화적 지혜, 현대 신경과학이 서로 이기려 들거나 대신하려 드는 게 아니라 각자 제 몫을 보태는 것. 그래서 이 패러다임이 한국에서도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마리 킴 대표: ‘뇌 치료(treatment)’에서 ‘뇌 청지기(stewardship)’로 바꾸는 것이다. 뇌 돌봄은 병이 생기거나 기억이 흐려진 뒤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평생 해나가는 일이어야 한다. 뇌를 돌보는 일을 병원과 의사만의 몫에서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세계 곳곳의 문화 속으로 되돌려놓는 것. 비하리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게 우리가 남기고 싶은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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