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서 폐기 문턱 갔던 ‘北핵 심장’ 영변…7년 뒤 2호 농축공장까지

윤지원 2026. 9.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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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노동신문=뉴스1

1994년에는 동결됐고, 2008년에는 냉각탑이 폭파됐다. 2019년 하노이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재를 풀어주면 폐기하겠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북핵 협상의 고비마다 등장한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얘기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 7년 뒤 영변은 폐기는 커녕 두 번째 우라늄 농축공장까지 갖추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7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안전조치 보고서에 따르면 영변에서 새로이 포착된 2층 건물은 두 번째 우라늄 농축시설로 식별됐다. 북한이 지난 6월 공개한 김정은의 시찰 사진과 위성사진을 대조한 결과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이 시설이 가동 중이거나 가동에 매우 근접한 상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교수가 지난해 6월 10일 핵·미사일 전문 웹사이트 '암스컨트롤웡크'에 올린 신규 핵시설 추정 건물의 위성사진.

영변은 북한 핵개발사를 압축해 놓은 곳이다. 북한은 1980년대 이곳에 5메가와트(MW) 흑연감속로를 건설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에 나섰다. 1990년대 초 이를 둘러싼 의혹이 1차 북핵 위기로 번졌고,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로 영변 주요 시설이 동결됐다. 2007년 6자회담 합의 뒤에는 다시 불능화 절차를 밟았고 이듬해엔 냉각탑 폭파 장면까지 전 세계에 공개했다.

하지만 이같은 비핵화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핵 신고 검증 방식을 둘러싸고 6자회담이 교착한 가운데 북한은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를 규탄하자 북한은 즉시 6자회담 탈퇴와 IAEA 사찰단 추방을 선언했다. 직후 2차 핵실험까지 감행한 뒤, 이듬해인 2010년 11월에는 미국의 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영변에서 2000여 개의 원심분리기가 작동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영변 한곳에서 핵폭탄 원료의 두 축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모두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북한이 지난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의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이는 북한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 프로그램을 신고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중앙포토

이 때문에 영변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핵심 논의 대상이었다. 김정은은 당시 미국 전문가 입회 아래 영변의 플루토늄·우라늄 핵물질 생산시설을 영구 폐기하는 대신 유엔 안보리 제재 가운데 민생 관련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영변 밖 농축시설과 이미 생산한 핵무기 등이 남는다며 이를 받지 않았다.

결렬은 극적이었다. 양 정상이 함께 하기로 했던 업무오찬과 공동합의문 서명식이 막판 취소됐고, 트럼프는 회담장을 떠난 뒤 “때로는 걸어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영변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지만 트럼프가 판을 접으면서, 하노이 노딜은 김정은으로선 체면을 크게 구긴 순간으로 남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19년 2월 28일 오전(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외교가에선 ‘하노이 노딜’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꾸준히 흘러나온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현재 미국이 문제 삼았던 영변 밖 농축시설은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영변 안에 두 번째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들어섰기 때문이다.

새 시설의 규모는 작지 않다. IAEA는 이곳에 원심분리기 여러 대를 묶은 ‘캐스케이드’를 최대 28개 설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심분리기는 고속 회전으로 우라늄 농축도를 높이는 장치다. 여러 대를 묶어 돌릴수록 고농축우라늄 생산 능력이 커진다

다만 IAEA는 각 캐스케이드에 설치된 원심분리기의 개수와 성능, 가동률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새 시설의 고농축우라늄 생산량이나 이를 핵무기 수로 환산한 숫자를 제시하진 않았다. 이춘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는 “캐스케이드에 설치된 원심분리기의 숫자보다 북한의 연간 고농축 우라늄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AEA는 강선 농축시설의 증축 부분도 올해 들어 가동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핵능력 증강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영변 비핵화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라며 “영변 비핵화는 곧 ‘미니(mini·작은) 비핵화’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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