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3억을 어디서”…세입자도 집주인도 등록임대 말소 날벼락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서울 강동구 고덕동 K아파트 전용 59㎡에 전세로 사는 김모(48)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8년 동안 잊고 지낸 걱정이 닥쳐서다. 김씨가 사는 집은 등록임대주택이다. 전셋값이 뛸 걱정도, 더 싼 집을 찾아 나설 일도 없었다. 2018년 등록한 이 집의 8년 임대의무기간이 올해 말 끝난다. 자동말소되면 계약갱신 보장과 임대료 5% 증액 제한이 사라진다. 김씨의 전세보증금은 4억원, 같은 집 시세는 7억5000만원. 전셋값이 순식간에 3억5000만원가량 뛸 상황이다.
집주인 이모(61)씨는 전셋값 규제에서 벗어나 홀가분할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지난달 3일 내놓은 8·3 세제개편안은 조정대상지역에서 의무임대기간이 끝나는 매입임대 아파트의 양도세 중과 배제와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2년 유예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축소한 뒤 2029년 폐지하기로 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 등록임대제도를 없애며 양도 시기에 관계없이 적용하던 중과 배제와 장기보유특별공제 특례를 뒤집어 시한을 못 박은 것이다.
그런데 유예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올해 의무기간이 끝나는 집의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2년을 더 산다. 그사이 중과 유예기간 안에 집을 팔 수 없다. 중과를 맞으면 이씨의 양도세는 3억원에서 7억원으로 3억원 넘게 뛴다.
등록임대아파트 임대료 시세의 66%
등록임대주택은 임차인의 든든한 주거안전망이다. 세입자 보호 장치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상생임대제도가 있지만 청구권은 임대료 증액 제한을 적용받아 임대기간을 단 한 차례만 연장할 수 있다. 역시 한 차례 5% 이내로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상생임대는 올해 제도가 끝난다. 둘 다 전셋값 급등을 한 차례 막을 뿐이다.
등록임대주택은 8년 임대주택이라면 2년 계약을 가정할 때 갱신계약 네 차례까지 전셋값 파고를 막아준다. 앞의 K아파트가 그렇다. 8년 전 3억원대이던 전셋값이 시세로는 7억5000만원으로 2배 넘게 뛰는 사이, 이 집 보증금은 상한에 묶여 20%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협회가 회원 166명을 대상으로 집계한 등록임대주택 임대료는 시세의 66%였다. 인천 영종도 H아파트 전용 60㎡는 전세보증금(2억원)이 시세(5억4800만원)의 36%에 그쳤다.
협회 관계자는 "재계약 때마다 법적 증액 한도인 5%까지 올리지 않는 임대인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물량이 적지 않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이 등록한 임대 아파트는 전국 12만4470가구, 서울 4만1492가구다. 서울 물량은 지난해 서울 전·월세 계약(27만4035건)의 15%에 이른다. 전국으로는 연간 전·월세 거래량의 10%가량이다.
서울 등록임대아파트는 서울시가 2007년부터 20년 가까이 공들여 늘린 장기전세주택(3만8000가구)보다 많다. 장기전세는 임대료 인상 제한과 함께 최장 20년 임차권을 보장한다.

이런 등록임대아파트가 2020년 신규 등록이 막히면서 의무기간이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자동말소된다. 8년 의무형이 주를 이루는데, 2020년 이후 신규 등록이 끊겨 2028년이 지나면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전셋값 뛰는데 입주 줄고 세 부담 전가 우려
등록임대아파트가 없어지면 임차인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우산을 빼앗기는 꼴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6.34%로 2011년(7.5%) 이후 가장 높다. 2011년엔 2008년 금융위기 뒤 매매시장이 침체되며 임대수요가 급증해 전셋값이 뛰었다. 올해는 누적된 주택공급 부족과 매매가격 상승세가 맞물렸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지난해까지 거주 단위인 서울 일반가구는 29만7826가구 늘었지만 주택은 20만9694가구 느는 데 그쳤다. 가구 증가분에 8만8132가구가 모자란다.
공급 부족은 앞으로 더 악화될 전망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준공예정 물량 2만7158가구로 지난해(4만9973가구)의 반 토막이다. 내년은 2만2428가구로 더 줄어든다. 한 해 4만~5만가구이던 착공이 2023년부터 2만가구대로 급감한 여파가 밀려오고 있다.

가뜩이나 신축 주택이 많지 않은데 기존 재고 주택은 대거 없어진다.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을 위해 철거되는 것이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서울에서 18만가구가량이 이주 뒤 철거될 예정이다. 올해 2만5000가구, 내년 1만3000가구, 2028년 4만5000가구로 예상된다. 임대차시장이 공급 대비 수요 과잉 몸살을 앓게 생겼다.
임대주택 공급이 대거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세제개편안 불똥도 튄다.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 축소 등으로 늘어날 다주택자 보유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주택자 종부세 기본공제를 공시가격 9억원에서 '4억원+5억원×(거주주택 공시가격÷공시가격 합계)'로 낮추기로 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도 60%에서 80%로 오른다. 공시가격 15억원 주택에 살며 공시가격 5억원 아파트를 임대할 경우 임대주택에 해당하는 보유세가 230만원에서 345만원으로 1.5배로 늘어난다. 주인은 늘어난 보유세 일부를 세입자에게 넘기기 마련이다.
세입자는 기댈 곳 없이 공급 부족과 전·월셋값 상승이라는 주거불안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유예기간 여유 없어 팔기 어려워
임대인이라고 마음 편하지 않다. 8·3 세제개편안으로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실이 마련한 '임차인 주거 안정을 위한 등록임대제도 토론회'는 전국에서 몰려든 임대인들의 성토장이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 등록임대주택 제도를 없애면서 약속한 양도세 중과 배제와 장기보유특별공제, 거주주택 1주택 비과세 특례를 현 정부가 뒤집었다며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가 등록 자동말소 후 5년 기한을 준 거주주택 1주택 비과세 특례 또한 내년 말까지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토론회에서 김성호 변호사는 "정부는 공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임대사업자에게는 예측 가능한 보상을 제공하고, 그 특례가 임차인의 주거안정으로 연결되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권장하고 있는 신탁방식 재건축 단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무런 유예기간을 적용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재건축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때문에 말소 후 2년 유예기한 안에 사실상 매도가 어렵다. 등록임대주택은 임대의무기간 동안 임대사업자가 거주할 수 없어 매도하는 데 필요한 5년 이상 거주요건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팔 길을 막아놓고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중과하는 셈이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저렴한 임대료로 서민주거 안정에 기여한 등록임대사업자를 투기꾼으로만 보고 정부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저버린 이번 세제개편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인들의 문제 제기는 여당 내에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언주 의원은 등록임대주택 세제 혜택 폐지의 유예기간을 보완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거래가 막힌 기간은 양도기한 계산에서 빼주고, 제한이 풀린 뒤 최소 1년의 처분 기간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이 의원은 "실질적인 처분 기회를 갖지 못하는데도 정해진 양도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종전의 과세특례를 적용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조세형평과 신뢰보호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가 임대차시장을 매매시장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서둘러 다주택자 매물을 끌어내려는 데 몰두하면서 임대차시장을 흔들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임차가구 847만가구 가운데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197만2000가구를 뺀 649만8000가구가 민간 임대시장에 의존한다. 이 중 민간등록임대주택이 134만9000가구다. 특히 서울은 민간등록임대가 41만5000가구로 공공임대 39만3000가구보다 많다. 민간임대는 공공임대와 함께 엄연히 임대차시장을 지탱하는 두 축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등록임대주택 제도를 '임대인 특혜 축소냐 유지냐'의 이분법적 논란에서 벗어나 임차인을 위한 제도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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