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 잡은 며느리, 시어머니의 시선이 돌변했다

송주연 2026. 9. 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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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 봅니다. 그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직업을 밝히는 것과는 상관없이 현모양처가 아닌 다른 면들, 그러니까 강인하고 냉철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가족에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보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시선들이 드라마 속에서 좀 더 굳건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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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45] MBC <유부녀 킬러> 속 보나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 봅니다. 그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기자말>

[송주연 기자]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킹피셔' 보나(공효진)의 이야기를 담은 MBC 드라마 <유부녀 킬러>. 5회 보나는 새로운 클라이언트(처단 대상자) 관련 회의를 하던 중 시어머니 옥자(차미경)의 전화를 받고는 급히 시가로 간다. 바로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나를 보고 동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킹피셔님이 며느리도 되셨군요."

<유부녀 킬러>의 주인공 보나는 냉혹한 킬러의 모습과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을 동시에 갖춘 여성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보나는 며느리와 엄마, 그리고 아내로서의 모습은 직장 동료들에게 그대로 보여주지만, '킹피셔'로서의 면모는 철저히 가족들에게 비밀로 한다. 물론 저격수라는 직업 자체가 비밀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남편 태성(정준원)에게조차 들킬까 봐 늘 불안해 한다.

왜 보나는 불안해하면서 가족들 앞에서 '반쪽'의 정체감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상냥한 현모양처 킬러의 딜레마
 보나는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들만 골라 처단하는 킬러다.
ⓒ MBC
보육원에서 폭력 속에 자란 보나는 낯선 사람들의 도움으로 보육원에서 탈출한다. 그 후 러시아에서 훈련받은 뒤 '한 사람이라도 더 안전해지기를 바라며' 범죄자들을 제거하는 조직의 저격수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저격 현장이었던 빌딩 계단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태성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해 그를 살린다. 그 후 둘의 인연은 연인으로 발전하고, '킬러' 보나는 '유부녀'가 된다.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며느리인 보나는 그야말로 상냥한 현모양처 그 자체다. 남편과는 알콩달콩 깨를 볶고, 딸 율(홍봄이)에게는 다정하고 현명한 엄마가 되어준다. 아들밖에 모르는 옥자가 늘 무시하듯 대하긴 하지만, 이 역시 특유의 센스로 넘기며 가정의 화합을 도모한다. 하지만, 이런 보나도 제사 음식에 마늘을 사용했다며 음식을 다시 하라는 시어머니의 타박 앞에서는 울먹인다(5회). 이는 보나가 가부장제에서 규정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힘겨워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보나는 이런 '여성스러움'을 자신의 직장 동료들 앞에서 당당히 드러낸다. 집들이하며 엄마와 아내로서 모습을 마음껏 보여주기도 하고 집들이에 참석 못 한 동료에게 음식을 싸다 주기도 한다(8회). 직장 동료들은 이런 보나를 새로워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반면, 보나는 동료들 외에 다른 모두에겐 킹피셔의 면모를 철저하게 비밀로 한다. 보나의 남편 태성은 정의감 있는 기자로 '킹피셔'를 살인마나 영웅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균형 있게 바라보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사회의 부정의와 파렴치한 범죄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보나와 나누기도 한다. 어쩌면 보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이를 다르게 실천할 뿐인 셈이다. 그런데도 보나는 이렇게 되뇌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다른 면들을 감춘다.

'그는 하얀빛 속에 있는 사람. 나랑은 다른 사람이니까.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 함께 갈 수 없으니까'(1회)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킬러'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보나의 모습은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압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인류를 지배해온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은 '주체'로 존중받기보다는 주체인 남성에 의해 '대상화'되어 왔다. 대상화된 이미지, 그러니까 순종적이고 가정에 헌신하며 (남성의 시선에서) 아름다운 여성은 추앙 받아왔고,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이런 시선은 여성이 지닌 다양한 면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그렇듯 여성으로서 한 사람은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다. 강인하고 주체적인 '킹피셔'의 면모들과 현모양처의 모습 둘 다 보나이고, 이 모두가 마땅히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보나는 엄마와 아내, 며느리로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MBC
보나의 경우, 자신이 킬러임을 알리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애착대상'인 남편에게만은 들킬까 봐 불안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부장적 전통에서 터부시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지닌 '킬러'로서의 면모들을 보나는 드러낼 수 없고, 늘 긴장하며 살아간다.

더욱이 태성을 통해 사랑과 돌봄이 있는 세상을 처음으로 알게 된 보나에게 가족은 더없이 애틋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일 테다. 그래서 스스로가 고분고분한 며느리이자, 사랑스러운 아내, 현명한 엄마의 모습을 선택하고 이를 더 철저히 실천하는 면도 있을 거다. 그 때문에 보나에겐 '킬러'라는 직업을 누설해선 안 되는 이유에 감정도 더해진다. '킬러'의 면모가 알려졌을 때 현모양처로 받아온 사랑과 그렇게 지켜온 가정이 깨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가정을 지키는 방식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것에 기반해 있기에 보나의 마음엔 불안이 늘 깔려있다. 그리고 이 불안감은 보나의 가정에도 스며든다. 너무나 화목해 보이는 장면에서 저 행복이 깨질 것 같다는 조마조마함이 전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태성은 이런 불안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태성은 종종 보나가 사라지는 꿈을 꾸며 놀라서 일어난다. 이 꿈들은 현모양처 보나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 그러니까 보나의 온전한 모습을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안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보나의 가정에 흐르는 불안한 기운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이는 여성을 가부장제에서 대상화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만일 이미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게 당연한 사회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나 마음 속에 '현모양처'여야만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사라질 것이고, 눈물을 흘릴 만큼 참아가며 며느리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가부장제의 기준에 따르기보다는 엄마, 아내, 며느리의 역할에 보다 자신만의 색을 더할 수 있을 게다. 또한, 직업을 밝히는 것과는 상관없이 현모양처가 아닌 다른 면들, 그러니까 강인하고 냉철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가족에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렇게 보나의 두려움이 줄어든다면, 가족 안에 흐르는 불안 역시 줄어들고 보다 편안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드라마는 11회 12회에서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1회 보나는 시어머니 옥자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자 자신의 특기를 살려, 보이스 피싱범을 잡는다. 보나의 강점 덕에 큰 손해를 막게 되자, 옥자는 보나의 다른 면모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보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며느리와 아내 역할을 강요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네 일을 하라"고 조언하기까지 한다.

12회 마침내 태성은 보나가 킹피셔임을 알게 된다. 놀란 그는 보나와 한동안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킹피셔를 취재하면서 마음에 품었던 '대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온 인생을 걸고 저런 일을 할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고는 보나를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이 질문은 보나를 가부장제 속 여성의 이미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끔 했을 것이다.
 보나와 태성의 로맨스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 MBC
사실, 드라마의 제목 <유부녀 킬러>부터가 그렇다. '유부녀'라는 말 자체에 우리는 이미 유부녀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 뒤에 붙은 '킬러'는 '유부녀'와는 반대되는 이미지다. 아마도 이 모순된 조합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달라진 시선과 태성이 보나의 양면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그 마음은 이 제목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하고 있다. 보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시선들이 드라마 속에서 좀 더 굳건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보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도 함께 갈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시청자들에게는 '유부녀 킬러'라는 제목이 '모순'이 아닌 '상반된 것도 공존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성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온전한 사람'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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