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장기 집권, 유대인 피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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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나치 독일이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이며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기간이다.
추방되거나 학살된 유대인의 예금, 기업, 토지는 물론 가구와 옷가지 같은 생활용품까지 경매에 부쳐져 독일인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히틀러는 윈스턴 처칠처럼 국민을 향해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는 대신, 전쟁의 비극과 비용을 독일인들의 눈앞에서 철저히 치워 버리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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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복지국가
괴츠 알리 지음, 최준영 옮김
생각의힘, 464쪽, 2만8800원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나치 독일이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이며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기간이다. 이토록 끔찍한 범죄 정권이 어떻게 12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을까. 흔히들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와 히틀러의 광기 어린 인종주의를 추종한 소수의 광신도들, 그리고 정권과 결탁해 군수물자를 대며 막대한 이윤을 챙긴 대기업과 금융기관을 배경으로 꼽는다. 독일의 역사학자로 독일 제3제국과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저자는 기존 역사학계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정권을 떠받친 것은 소수의 권력자뿐만 아니라 체제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누리며 범죄를 묵인한 수천만명의 평범한 독일인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의 삶은 일반적인 상상과 달랐다. 전쟁이 끝나고 1945년 4월 쾰른에 진주한 연합군 장교는 시민들이 “혈색이 좋고 옷을 잘 입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1차 대전 당시의 극심한 식량난과 인플레이션을 똑똑히 기억했던 히틀러는 국민 여론에 민감했고 국민의 생활 수준 유지를 최우선으로 챙겼다. 재무 관료들이 전쟁 재원 마련을 위해 수차례 증세를 건의했지만 노동자 계층에 대한 직접 증세는 철저히 막아섰다. 부득이한 세수 확보는 부유층과 부동산 소유자에게 집중시켰다. 반면 전선에 나간 군인 가족들의 수당은 지속적으로 확대됐고 연금도 인상됐다. 또한 해외 점령지에서 마음껏 물건을 사들여 본국으로 보낼 수 있도록 통관 규제마저 대폭 완화했다. 전선의 병사들은 프랑스의 향수, 폴란드의 통조림, 그리스의 건포도 등을 본국으로 끊임없이 보냈다. 점령지에서 징발한 식량은 군인과 가족, 그리고 평범한 독일인들의 몫이었다. 책에 인용된 전후 독일인과 소련 생존자의 증언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전쟁 중에는 굶주리지 않았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 상황이 나빠진 건 전쟁이 끝난 뒤부터였다.” “관 하나 구하기조차 거의 불가능했다. 수백 구의 시신이 천으로만 싸인 채 묘지나 그 주변에 방치돼 있었다.” 1942년 1월 기준으로 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는 매일 3500~4000명이 죽어 나갔다. 가장 큰 원인은 굶주림이었다. 저자는 “나치는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현실의 유토피아를 선사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히틀러의 인종주의 교리는 유대인들에게는 증오와 폭력, 살인을 의미했지만 독일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것이었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모든 구성원에게 최대한의 교육 기회와 최고 수준의 사회적 연대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민족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지배자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국가 재정 측면에서 재해석한다. 유대인 학살은 단지 인종주의적 광기가 낳은 비이성적 결과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치의 이데올로기와 전시 재정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가 철저히 맞물려 돌아간 대규모 약탈 사업이었다. 추방되거나 학살된 유대인의 예금, 기업, 토지는 물론 가구와 옷가지 같은 생활용품까지 경매에 부쳐져 독일인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공습으로 집을 잃은 독일인은 살해된 유대인의 침대에서 잠을 잤고 그들의 옷을 입었다. 몰수된 재산은 전시 국채로 전환되면서 병사의 급여와 복지 재원으로 흘러 들어갔다. 저자는 “유대인들의 재산 몰수는 독일 국고에 상당한 자원을 제공했고, 그 덕분에 정권은 자국민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홀로코스트는 “약탈과 학살의 결합”이었다.
히틀러는 윈스턴 처칠처럼 국민을 향해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는 대신, 전쟁의 비극과 비용을 독일인들의 눈앞에서 철저히 치워 버리는 길을 택했다. 세금은 올리지 않고, 복지는 늘리며, 비용은 외부에 떠넘기는 ‘악마의 복지국가’를 만든 것이다. 결국 나치 독일은 공포에 의해서만 유지된 체제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제공하고 동의를 얻어낸 ‘동의에 기반한 독재’였다. 대다수 평범한 독일인들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그들은 유대인을 직접 가스실로 밀어 넣지 않았고, 점령지에서 총을 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가 타인의 비극을 토대로 제공하는 혜택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직접 학살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국가가 가져다주는 안락함을 누리며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외면했던 평범한 독일인 모두가 거대한 범죄의 공범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말한다. “평범한 독일인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됐고 국가가 제공하는 매수의 대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됐다.” 이것이 “히틀러에 대한 의미 있는 내부 저항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그리고 평범한 독일인들이 나치 제국의 범죄에 대해 (그들도 그 체제의 일부였다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태도를 보였던” 이유였다.
저자가 책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80년 전 독일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나의 안락함의 밑바닥에 다른 사람의 희생이 놓여 있지 않은지. 내가 이 안락함을 마냥 즐겨도 되는지.
⊙세·줄·평··············★★★
· 나치 독일에 대한 충격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 대다수 독일인들은 나치의 범죄를 거부하지 않았다
· 결국 중요한 것은 내게 돌아올 이익이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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