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이코노믹스] 국회의 재정 통제권 침해, 지방자치 무시한 미래대응기금

2026. 9. 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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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예산안 제대로 이해하기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기획예산처 담당 공무원들은 무척이나 신났을 것이다. 수입이 워낙 많아서 여유 넘치는 지출계획을 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상 재정 수입은 880조8000억원(국세 584조4000억원)이다. 올해 대비 증가율은 본예산 기준 30%가 넘으며 추경 기준으로도 25%가 넘는다. 대한민국이 국세 3대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를 모두 갖추게 된 198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본예산 기준). 특히 국세 증가율(본예산 기준 50%, 추경 기준 40%)만 따지면 압도적인 최고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최고일 것 같다.

「 내년 예산은 당초 계획보다 8% 증액…예산으로 할 사업까지 기금으로
예산으로 하던 혼인·출산지원금과 아동기본수당도 미래기금으로 옮겨
균형재정이나 소폭이라도 흑자 내서 빚 갚는다면 모양새 훨씬 좋을 것
세수 결손시 국회 패싱하는 미래대응기금…재정 운용 틀과 규율 깨뜨려

건국 이래 최고 세수, 어떻게 쓸까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이 엄청난 수입 증가는 예외적이며, 예상치 못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큰돈이 들어온다면 내년도 지출 계획을 어찌 세울까? 일상에서 비슷한 사례를 상상해 보자. 당신은 조기축구회 살림을 꾸리는 총무이다. 연말에 부자 회원 한 분이 3000만원을 기부했다. 어찌 써야 할까? 내년에 다 써버리자니 차기 회장단 눈치가 보인다. 운동장 사용료, 대회 참가비, 회식비 등 사용처도 뻔해서 다 쓰기도 힘들다. 그래, 그동안 옹색했던 회식 좀 풍성하게 하고 단체로 유니폼과 축구화 맞추는 데 쓰자. 그리고 남는 돈은 발전기금으로 적립해 놓고 조금씩 꺼내 쓰는 게 좋겠다.

규모는 천양지차라도 예상치 못한 큰돈 생겼을 때 대응 방식은 비슷하다. 예산 당국 역시 일부는 내년 예산을 풍성하게 짜는 데 사용했으며, 나머지는 기금으로 적립했다. 여기까지는 같다. 그다음은 달라져야 한다. 동호회 살림이라면 주먹구구식이어도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나라 살림은 그럴 수 없다. 내년의 풍성한 지출계획은 합당한지, 기금 적립과 사용은 타당한지 따져봐야 한다.

지출 예산 7.8% 추가 증액
내년도 지출 예산은 올해보다 12.8% 늘었다. 수입 늘어난 것보다는 작지만 역시 역대급, 200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지난해에 세운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7년 지출 예산은 올해보다 5.0% 늘어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세수 증대로 예정보다 7.8%포인트 더 늘린 것이다.

7.8% 추가 증액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예산은 대부분 용처가 정해져 있어서 예산 당국이 임의로 배정할 수 있는 규모는 작다. 10%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 7.8% 상당의 가욋돈이 추가된 것이다. 임의 배정 규모로 치면 두 배 이상은 될 것 같다. 이를 어디에 얼마나 배정했을까? 내년도 분야별 예산증가율 그래픽을 보자.

김영옥 기자

‘예정’은 지난해에 설정한 2027년 예산 증가율, 그러니까 반도체 호황 이전의 예상치만 반영한 것이다. ‘추가’는 반도체 호황 덕에 추가로 늘어난 몫을 나타낸다. 예정보다 훨씬 많이 늘어난 분야는 셋,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일반·지방행정, 문화·체육·관광이다. 요즘 분위기를 보면, 산업 분야에 가장 많은 몫을 배정한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일반·지방행정 분야가 대폭 늘어난 것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재원 투입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의 높은 증가율은 다소 의외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우리도 예상 밖의 보너스를 받게 되면, 여행 가거나 비싼 외식하는 등, 평소 하기 힘든 약간의 사치성 소비를 하지 않는가.

추가증액 대부분이 미래대응기금
분야별 배분 규모는 납득할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추가 증액 대부분이 미래대응기금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내년도 지출 증가를 예산과 기금으로 나누면, 예산은 올해보다 본예산 기준 4.9%, 추경 기준 0.2% 증가했다. 이에 비해 기금은 본예산 기준 28.1%, 추경 기준 26.8% 증가했다. 예산의 경우 추경 기준 0.2% 증가면 사실상 동결이고 예년보다 적은 증가이다. 이는 평소라면 예산으로 할 사업을 기금으로 넘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금은 예산보다 행정부 재량이 크다. 바꿔 말하면 국회의 재정 통제권이 약하다. 행정부 재정 운용을 감시·견제하는 것은 국회의 고유 역할이다. 그래서 통상의 재정 사업은 예산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금 재정 사업은 예산으로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 허용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연히 예산으로 해야 하는 사업마저 기금으로 떠넘겼다. 미래대응기금 사업에는 소위 결혼·출산·양육 지원 3종 패키지인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 사업이 있다. 기존에 예산 사업이던 것을 확대 개편해서 미래대응기금으로 옮긴 것이다. 이런 것들이 제법 된다. 국회 통제받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은 알겠지만, 이건 경우가 아니다.

지출보다 수입 60조 많은데 적자 재정
내년도 수입은 880조9000억원, 지출은 820조9000억원이다. 수입이 무려 60조원 더 많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재정 흑자 내고 빚 갚을 것 같다. 하지만 편성된 예산안은 그렇지 않았다. 초과 수입보다 더 많은 재원을 기금으로 돌리면서 예산 자체는 적자 편성했다. 우리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내리 적자재정을 꾸렸고, 그 때문에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내년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 가장 풍족한 재정 수입이 예상된다. 이를 모두 채무상환에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만, 약간의 흑자 혹은 최소한 균형재정이라도 꾸리는 게 맞지 않겠는가. 내년에 예정한 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1%로서 매우 작다. 이걸 메우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상징적으로라도 균형재정을 하거나, 혹은 0.1%라도 흑자를 내서 나랏빚을 갚는다면 모양새가 훨씬 좋을 것이다.

행정부 재량 더 키운 미래대응기금
“김 과장, 우리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설계해 봐. 국회나 지방정부(교육청) 입장은 신경 쓰지 말고.” 내가 기획예산처 담당 과장이고 장관으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다면 만들었을 법한 것, 그게 이번 미래대응기금이다. 기금은 본래 예산보다 재량이 크다지만, 미래대응기금은 통상의 기금보다 훨씬 더 행정부 재량을 키웠다. 행정부가 맘껏 쓰기에는 안성맞춤의 설계이다. 하지만 국회의 재정 견제 역할과 지방자치 이념은 무시되었다.

기금은 특정 한도 내에서 국회 사전 심사 없이 원래 계획을 변경해서 지출할 수 있다. 이 한도는 금융성 기금만 항목별 지출의 30%이고, 나머지 기금은 20%이다. 미래대응기금은 세수 결손 보전과 4개 영역 사업에 쓰인다. 그런데 세수 결손 보전용 지출은 아예 제한이 없으며, 사업용 지출은 변경 한도를 30%로 높였다. 과거에도 세수 결손은 발생했다. 그러면 추경을 편성하고 국회 동의받아서 해결했다. 그런데 왜 이제부터는 세수 결손 시 국회를 패싱하려 할까. 기존에 사업성 기금 지출 변경을 20%까지 허용한 것만 해도, 신축적 운용이라는 명분 때문에 국회 통제권을 상당히 양보한 것이다. 게다가 미래대응기금 4개 영역 사업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예산 사업과 차별성이 없다. 아무리 효율성을 위함이라지만, 국회의 재정 감시·견제 역할을 훼손하고 법을 고치면서까지 국회를 패싱하고 지출 변경 한도를 늘린 것은 선을 넘었다.

우리는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에 각각 국세 수입의 20%, 합쳐서 40% 정도 이전한다. 그런데 국세 여유분으로 기금 조성할 때는 40% 지방 이전을 없애는 것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한다. 법 개정은 국회 소관이니, 당사자인 지자체와 교육청 의사를 무시해도 되기는 한다. 하지만 적법하다고 정당한 것은 아니다. 명색이 지방자치를 한다면서, 지방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방의 자주 재원을 삭감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지방 이전 재원 줄이는 대신 기금 안에 지방 및 교육·인재 계정을 설치했으니 마찬가지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이 자율적으로 쓰는 것과 중앙정부 맘대로 쓰는 게 어찌 같겠는가. 지방자치는 헌법적 가치이다. 헌법을 존중한다면, 이 사안은 지자체 및 지방교육청과 함께 논의해서 다시 정하는 것이 맞다.

미래기금 구조와 방식, 대안 찾아야
미래대응기금은 재정 운용의 기존 틀과 규율을 깨뜨렸다. 세수 결손을 국회 패싱으로 메울 수 있게 하였다. 예산으로 할 사업을 기금 사업화하고, 지출 변경 한도도 30%로 높였다. 지자체와 교육청 몫이던 이전 재원을 기금화하여 중앙정부가 사용하도록 했다. 국회 재정 통제권을 침해하고, 지방자치를 훼손했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AI 대전환기를 선도하려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충분한 재원을 필요한 곳에 재빠르게 투입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행정부 재량권이 커야 한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에 제안된 미래대응기금 구조와 방식이 이를 위한 최선일까. 아니다. 나는 기존 틀과 규율을 존중하면서도 효율성과 민주성을 아우르는 더 좋은 대안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번에야말로 국회가, 헌법이 부여한 재정 감시·견제 권한에 부응하는 대응을 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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