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문고, 지역의 시간과 온기를 품다

맹경환 2026. 9. 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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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아침 집 앞으로 책이 배달되고, 손안의 스마트폰이 책의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다. 진주문고의 역사를 담은 책은 한 지역 서점이 도시의 역사,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밀접하게 교감하며 성장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저자는 "한 권이라도 진주문고에서 책을 사는 마음, 아이와 함께 서점으로 향하는 발걸음, 지역의 작가와 독자를 응원하는 관심, 좋은 서점이 우리 도시에 필요하다는 믿음, 이런 것들이 없다면 어떤 서점도 오래 버틸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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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책과 길]
지역의 섬돌
여태훈·조경국 지음
유유, 216쪽, 1만7000원
지난해 9월 진주문고가 마련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북토크 현장.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는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상점이 아니라 지역 문화를 만들고 시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유유 제공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아침 집 앞으로 책이 배달되고, 손안의 스마트폰이 책의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경남 진주에서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진주문고’의 이야기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진주문고의 역사를 담은 책은 한 지역 서점이 도시의 역사,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밀접하게 교감하며 성장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출판평론가 장은수는 “한 서점의 역사와 함께 지난 40년간 한국 서점 활동의 정수를 집약하고 있다”고 평했다.

진주와 하동에 다섯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중형 서점 진주문고의 시작은 1986년 군사 독재 시절, 작고 낮은 자리에서 문을 연 인문사회과학 서점 ‘개척서림’이었다. 당시는 국가 권력이 대학생과 청년들의 독서 문화를 엄격하게 통제하던 엄혹한 시대였다. 경찰은 주기적으로 금서 목록을 내세우며 서가를 뒤졌고 책을 압수해 갔다. 하지만 청년들은 그곳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 갔다. 개척서림의 단골이었던 한 청년은 “책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처음 일깨워 준 공간이었다”고 회상한다.

1988년 개척서림은 ‘책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회비를 내고 책을 빌려 읽는 회원제 시스템을 도입해 자연스러운 독자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인문학 강연과 독서 토론, 사회과학 세미나는 물론 전시와 공연까지 펼쳐지는 진주 최초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1992년, 책마을은 중형 종합서점인 ‘진주문고’로 확장 이전하게 된다. 이름과 규모는 달라졌지만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상점이 아니라 지역 문화를 만들고 시민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여태훈 대표의 운영 철학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40년이라는 세월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을 덮친 IMF 외환 위기의 고비,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파상 공세, 그리고 지속적인 독서 인구 감소라는 시련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 숱한 위기 속에서 진주문고를 쓰러지지 않게 지탱한 가장 강력한 힘은 다름 아닌 ‘사람’과 ‘연대’였다. 차용증도 이자도 없이 거금을 선뜻 내어준 ‘어른’ 김장하 선생을 비롯해 동네 서점이 사라지지 않기를 염원하며 10만원, 20만원, 100만원씩 선도서 구매권을 사들인 진주 시민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저자는 “한 권이라도 진주문고에서 책을 사는 마음, 아이와 함께 서점으로 향하는 발걸음, 지역의 작가와 독자를 응원하는 관심, 좋은 서점이 우리 도시에 필요하다는 믿음, 이런 것들이 없다면 어떤 서점도 오래 버틸 수 없다”고 말한다.

제목의 ‘섬돌’은 집 앞뒤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놓은 디딤돌을 의미한다. 책마을 시절 소식지의 제목이기도 했던 이 단어는 40년 동안 책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지역을 이어온 진주문고의 정체성을 가장 잘 요약해 주는 단어기도 하다. 책은 오늘날 온라인과 디지털 기기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오직 서점만이 품을 수 있는 독특한 온기와 시간에 대해 말한다. 직접 문을 밀고 들어가 손끝으로 책의 감촉을 느끼는 시간, 서가 사이를 거닐다 우연히 마음에 들어오는 한 문장을 만나는 순간, 책방지기와 나누는 안부 인사, 그리고 서가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고요한 경험. 이 모든 것은 오직 그 자리에 존재하는 지역 서점에서만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지역에 서점이 있다는 것은 그 도시가 아직 메마르지 않았다는 증거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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