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메밀꽃 필 무렵

손민호 2026. 9. 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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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9시쯤 촬영한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메밀밭. 하늘엔 별이 반짝이고 들녘에는 소금꽃 같은 메밀꽃이 흐드러진다. 인공 조명 하나 없는 산골의 밤인데 이토록 환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27회를 맞은 효석문화제는 문학에 충실한 문학 축제다. 관광객 끌어모으는 행사보다 문학을 직접 경험하는 백일장이 훨씬 오래됐다. 축제는 1999년 시작했지만, 백일장은 1972년 처음 열렸다. 올가을에도 메밀꽃 필 무렵이 돌아오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한갓진 산촌이 다시 북적북적해졌다. 효석문화제를 주최·주관하는 이효석문학선양회의 곽달규 이사장은 올 축제도 20만명이 모일 것으로 바라봤다.

“꼭 이런 날 밤이었다”
이효석(1907~42)이 1936년 발표한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의 고향인 봉평이 배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작가가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마을에서 떠돌던 소문에 작가의 어릴 적 기억을 얹어 줄거리를 엮었다. 이효석은 1920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 12년가량을 봉평에서 살았다.

어린 이효석은 집에서 39㎞ 떨어진 평창 읍내 초등학교를 통학했다. 봉평면에서 평창 읍내로 가는 길에 대화면을 지난다. 이 등굣길이 중요하다. ‘메밀꽃 필 무렵’이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 밤길을 걷는 장돌뱅이들의 이야기여서다.

효석문화제 행사장의 징검다리. 손민호 기자

이효석은 어렸을 적 학교를 오갈 때 봤던 장면, 그러니까 메밀밭 지나고 개울 건너며 구경했던 고향 풍경을 소설에 담았다. 봉평장은 2·7장이고 대화장은 3·8장이다. 봉평장을 파한 장돌뱅이들이 밤새 걸어 대화장으로 가는 소설 속 설정이 지금도 맞아떨어진다.

여행자가 꼭 알아야 할 소설 속 설정은 이효석이 그려낸 봉평의 9월이다.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인 봉평의 가을 풍경은 9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평창관광문화재단에 따르면, 봉평에만 60만㎡가량(약 18만 평)의 메밀밭이 있다. 축구장 84개 면적이다. 축제를 위해 조성한 꽃밭도 있고, 농민이 경작하는 메밀밭도 있다. 하여 요즘도 맑은 밤이면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얀 들판이 연출된다. 지난 4일 효석문화제가 개막한 밤도 꼭 이런 날 밤이었다.

한 달 내내 피는 메밀꽃
올해 효석문화제는 오는 13일 폐막한다. 축제 주인공은 물론 메밀꽃밭이다. 흥정천 주변 곳곳에 메밀꽃밭을 조성했는데, 꽃밭 입장료 따로 받는 여느 꽃 축제와 달리 모든 꽃밭을 개방한다. 평창군에서 사용한 5000원짜리 영수증만 보여주면 메밀밭에 설치한 즉석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 가져갈 수도 있다. 이효석문학관도 축제 기간에 무료 개방된다.

메밀꽃은 보통 열흘이면 진다. 축제도 열흘 만에 끝난다. 하지만 봉평에선 한 달 내내 메밀꽃을 감상할 수 있다. 메밀 파종 시기를 달리해 꽃 피는 시기를 조절했다. 축제장이 너무 붐비면 농민이 경작하는 메밀밭으로 발길을 돌려도 좋다. 9월 초순 무이예술관 앞의 메밀밭이 가장 하얬다.

지난 4일 개막한 강원도 평창 효석문화제 먹거리 장터의 메밀막국수. 콩나물 같은 게 메밀 싹이다. 손민호 기자

흥정천변 축제장에 조성된 먹거리 장터는 지역 식당이 나와서 차렸다. 축제 주제가 메밀꽃이니, 당연히 메밀 음식을 먹어야 한다. 봉평의 대표 막국숫집 ‘진미식당’이 메밀 음식을 내는데, 메밀막국수(9000원)와 메밀묵무침(2만원)은 순도 100%의 메밀만 쓴다. 국수가 뚝뚝 끊기는 게 별미다.

행사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휘닉스파크 평창’이 있다. 축제 기간에 투숙객을 대상으로 리조트와 행사장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행사장 곳곳을 누비는 ‘메밀꽃열차(5000원)’ 무료 이용권을 준다.

봉평=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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