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미쳤냐?' 하고 후회했다, '구글 미쳤다'고 할 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게시물 삭제를 구글에 요청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가 구글의 협업 사이트에 공개됐다는 보도가 지난 8일 나왔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삭제를 요청해도 계속 올라오니,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이런 와중에 구글에 불법 촬영물 삭제를 요청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와 요청문이 구글의 협업 연구기관 사이트에 공개된 사실이 지난 8일 보도됐다.
그런 상황에서 구글이 협업기관에 피해자 개인정보를 넘겼고, 이게 일반에 공개됐다? 거대 플랫폼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주연, 이정환 기자]
"구글 미쳤냐?"
디지털 성범죄 관련 게시물 삭제를 구글에 요청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가 구글의 협업 사이트에 공개됐다는 보도가 지난 8일 나왔다.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아래 활동명 '단'으로 표기)는 X(구 트위터)에 '미쳤냐'라고 썼다. 그러고는 후회했다고 한다.
|
|
| ▲ 추적단 불꽃의 '단' 원은지씨. |
| ⓒ 이주연 |
"이 얘기를 들으면 또 얼마나 힘들까, 본인의 신상정보가 노출된 건 아닌지 얼마나 불안할까 싶었다. 몇몇 피해자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몇 년도에 발생한 피해야?'부터 내게 묻더라. 자신이 또 피해자가 됐을 수 있다는 감각이 올라온 거다."
n번방 사건 이후 6년여 동안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쫓으며 주범들을 잡으려 고군분투했던 그다. 그러나 가해자가 붙잡히고 처벌 받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의 눈길이 가 닿은 건 사건 뒤에 남은 '사람'이었다. 처음엔 구글에 화가 났다가, 이내 피해자들의 마음을 살피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껏 가해자들의 엽기적 행각과 검거·처벌 과정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유포될지 모르는 피해물이 끝없이 재생산되는 동안, 피해자들은 잊혀갔다. 6년 동안 그가 '안부'를 물으며 일상을 나누는 피해자만 60명에 달한다. 단은 그중 K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만난 K씨의 피해 영상은 두 달 동안 불법 사이트에 계속 다시 올라왔다. K는 일주일의 절반을 그 사이트 모니터링에 썼다고 하더라. 심지어 피해물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를 적립하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 사이트에 출석 체크를 해야 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가해 사이트에 매일 출석하는 구조다."
K와 같은 피해자 60명의 '사건 이후'를 지켜보며 단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순간에만 잠깐 등장하고, 회복의 과정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 이제는 '듣는다'는 것을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피해 당시의 진술을 듣는 일이 아니라, '그 이후'를 계속 듣는 일이 필요하다. 사건은 종결되어도 삶은 이어지니까."
단이 내놓은 신간 <불꽃이 꺼지지 않게>(돌고래)는 그렇게 '사건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순간에만 피해자를 불러내는 사회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함께 지켜보는 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단에게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 이후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너무 무관심"
- 지난 6년간의 기록을 책으로 담았다.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의 신상정보, 이름, 얼굴 영상, 불법 촬영 피해물이 함께 유포되는 범죄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에게 선뜻 '당신의 이야기를 해달라' 말하기가 어렵다. n번방 사건 때도 '피해자가 좋아서 보낸 거 아니냐'는 인식도 있었고, 낙인 찍어 보는 시선도 존재했다. 피해자가 직접 목소리 내기 어려운 구조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이야기를, 당사자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읽을 수 있게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걸 책으로 담아낼 수 있어 감사하다. 글을 통해 제도와 실무자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전제
되어있는 것 같다.
"그렇다. n번방 때부터 시작해 불법 성착취물 R 사이트 추적, L 사건(아동·청소년 온라인 성착취 사건),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텔레그램 겹지인방 등을 취재하면서 절절히 느꼈다. 사건을 접한 이들은 가해자들의 엽기적 행각에 집중한다. 결론은 '저놈을 강력하게 처벌하자'다. 가해자만 처벌하면 피해자는 새 삶을 찾게 될 거라 믿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n번방 사건 이후 6년이 흐르는 동안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과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단순한 안부뿐 아니라 '피해 경험 때문에 나는 지금 이런 상황이야, 이런 부당한 일을 겪고 있어'도 나눴다. 이런 상황을 기사로 알려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보도해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 뉴스가 나와도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지 않나."
- 가해자의 엽기적 범행이 아니라 그 사건 뒤에 남아있는 '사람'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 피해자를 몇 명이나 만났나. 그리고 사건 이후에도 어떤 피해가 이어지고 있나.
"60명 정도인 것 같다. 1년에 10명 이상은 만나왔다. 디지털 성범죄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를 피해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예측이 아예 불가능하다. 재유포는 애초 발생한 것과는 아예 별건의 사건이다. 피해자는 지속적인 불안에 놓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난 K씨의 피해 영상은 두 달 동안 불법 사이트에 계속 다시 올라왔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삭제를 요청해도 계속 올라오니,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일주일의 절반을 그 사이트 모니터링에 썼다고 하더라. 심지어 피해물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를 적립하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 사이트에 출석 체크를 해야 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가해 사이트에 매일 출석하는 구조다.
가해자가 옥중에서 글을 올리고 대중이 그것을 퍼 나를 때, 피해자들은 잠잠해졌던 트라우마가 다시 올라온다. 그것을 수습하면서 생계도 유지해야 한다. 직접 반박하려다 자신이 다시 노출되거나 2차 피해를 입을 위험도 있다. '잊힐 권리'를 주장하려면 오히려 자신을 다시 노출해야 하는 모순이 생기는 거다."
|
|
| ▲ 2023년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에 서울 구글코리아 본사 앞에서 여성들이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를 보호하라"며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있다. |
| ⓒ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2023 소식지 갈무리 |
"후회했다. '구글은 미쳤다'라고 할 것을.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여야 했다. 그간 구글이 해 온 행태를 너무 잘 알고 있어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2021년에 앰네스티와 함께한 〈'n번방' 1년, 남은 질문들〉 취재 프로젝트 때부터 제기해 온 문제다. 구글은 피해자의 신상정보나 불법촬영물 관련 검색 결과를 삭제하는 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렸고, 한국 정부의 요청에도 즉각 응하지 않았다. 당시 구글 관계자와는 연락 자체가 잘 안 됐다. 삭제 요청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미국 본사에 직접 전화하는 것까지 고민한 피해자도 있었다. 하지만 영어로 피해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에 막혔다. 한국 정부에서 불법 촬영물 등의 영상을 차단해도 섬네일에 관련 정보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가 있어서 삭제 요청을 했는데 처리 되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구글이 협업기관에 피해자 개인정보를 넘겼고, 이게 일반에 공개됐다? 거대 플랫폼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기사를 보자 피해자들이 생각났다. 이 소식을 들으면 또 얼마나 힘들까, 본인의 신상정보가 노출된 건 아닌지 얼마나 불안할까 싶었다. 몇몇 피해자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몇 년도에 발생한 피해야?'부터 묻더라. 자신이 또 피해자가 됐을 수 있다는 감각이 올라온 거다."
-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 우리가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짚어야 한다. 취재를 이어오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조차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더라. 닉네임, 말투, 범행 수법, 성격까지. 피해자에 대해 아는 것은 나이와 피해 유형 정도였다. 다른 언론도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면 자극적인 부분이 부각되고, 공론화되면 수사에 속도가 붙고, 가해자가 검거되면 관심이 사그라든다. 이 흐름 안에서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순간에만 잠깐 등장하고, 회복의 과정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 이제는 '듣는다'를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피해 당시의 진술을 듣는 일이 아니라, '그 이후'를 계속 듣는 일이 필요하다. 사건은 종결되어도 삶은 이어지니까."
|
|
| ▲ 디지털 성범죄 발본색원하라! 학부모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2024년 9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및 근본적 종합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 ⓒ 이정민 |
"피해 지원이 초기에만 집중된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심리상담은 보통 10회기로 진행된다. 반면 디지털 성범죄는 재유포가 계속된다. 피해 생존자 노라는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기관 등 여러 곳에 직접 연락해 자신의 피해 상황을 알리고 지원 자격이 되는지 물어가며 상담 회기를 연장했다. 그 행정 절차를 피해 당사자가 감당한 것이다.
정책을 설계하는 자리에 피해 생존자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전문가와 기관이 대책을 만든 뒤 피해자에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현행 삭제 지원 시스템의 미비점을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매일 자신의 피해물을 검색해 본 사람일 거다.
또, 피해자가 재판을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필요하다. 최근 비동의 촬영물 유포 피해자 한 분을 돕다가 확인한 문제다. 검찰의 범죄 피해자 생계비 지원은 월 70만 원 상한으로 최대 6개월 지급된다. 그런데 그 피해자는 부양가족 수 등 개별 요건에 의해 1개월분을 받는 데 그쳤다. 여기에 가해자 측의 역고소가 겹치면서 '피의자'가 되어 지원 자격이 불안정해졌고, 추가 법률 대응은 자력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그 특성상 피해 직후 상당 기간 구직조차 어렵다. 결국 경제적 사정 때문에 필요한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그간의 논의는 구조금과 생계비 확대에 머물렀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 범죄 피해자에게는 일정 요건에 따라 긴급 생활자금 대출과 같은 별도의 금융지원 제도가 있지 않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도 그런 조처들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가해자 측의 공탁금이나 합의금에 의존하지 않고 재판을 버틸 수 있는 수단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제도적 공백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 필요한 대책이 아주 복잡하거나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왜 바뀌지 않을까.
"그 지점이 가장 답답하다.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관심의 주기다. 디지털 성범죄는 사건이 터졌을 때만 급하게 다뤄지고, 대책도 그때 만들어진다. 급하게 만든 대책은 급한 부분만 막는다. 2020년 이른바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린 일련의 법 개정을 통해 성착취물의 소지·구입·저장·시청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의무가 부과됐다. 하지만 온라인 그루밍 처벌 규정은 이때 함께 마련되지 않았다. 해당 규정은 2021년 3월 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된 뒤 같은 해 9월에야 시행됐다. 표면적으로는 촘촘해 보였지만, L 사건을 취재하며 이 법이 정확히 어디서 그리고 언제 비껴가는지를 몸으로 확인했다.
다른 하나는 패배감이다. '가해자는 잡기 어렵다, 피해물은 영구히 삭제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짙은 패배감' 그 자체다. 피해 생존자를 돕는 조력자도, 이 문제를 추적하는 활동가도, 정부도 어떤 순간에는 이 거대한 구조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만다. 문제는 너무 크고, 변화는 너무 더디고, 개인의 노력은 너무 미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뀐 건 있다. 텔레그램은 오랫동안 한국 수사기관의 수사 협조에 응하지 않다가 2024년부터 자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것이 바뀐 사례다. 그래서 앞으로도 작은 변화를 계속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피해자가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기가 좋아졌다는데, 왜 내 이자가 오릅니까?"
- '내란 가담 의혹'에도 권한 키운 국정원, 이재명 정부라 괜찮다?
- [단독] 국정원 미공개 자료엔 "쌍방울, 대북사업 이용 주가조작"
- 조성현 대령의 MBC 정찰 지시, 내란 사전 작업?
- '오디세이 끝판왕' 모셨습니다, 교수와 덕후의 입담 티키타카
- 넉 달 만에 '서울 4년치 전기'가 생겨났다
- 54년 만에 무죄 받은 선생님, 치러야 했던 대가는 가혹했다
- 몽골서 사라진 호수만 1166개...토지 위기가 곧 평화 위기
- 물고기 뜯는 점박이물범, 가로림만에서 직접 포착했습니다
- "토사물·대변 치우고 씻을 곳 없어"... 부산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의 절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