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화사하게... 여름 보내고 가을 맞이한 맨드라미

김홍의 2026. 9. 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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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철원 고석정 꽃밭을 찾았다. 약 24만㎡에 이르는 드넓은 꽃밭에 들어서자 계절은 조용히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석정 꽃밭에서 누군가는 형형색색의 맨드라미를 사진으로 남기고, 누군가는 버베나 사이를 걷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고석정 꽃밭의 아름다움은 꽃의 수나 화려한 색에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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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4만㎡ 달하는 철원 고석정 꽃밭, 자연이 빚은 대지와 전쟁의 흔적 속에 피어나

[김홍의 기자]

 시간이 쌓인 대지 위로 촛불맨드라미의 가을색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 김홍의
10일, 철원 고석정 꽃밭을 찾았다. 약 24만㎡에 이르는 드넓은 꽃밭에 들어서자 계절은 조용히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노랑과 빨강, 분홍이 선명하게 어우러진 맨드라미였다. 형형색색의 꽃들은 한여름의 끝자락을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고, 그 곁으로는 보랏빛 버베나가 부드러운 물결처럼 이어졌다. 아직 붉게 물들기 전의 댑싸리와 막 피기 시작한 백일홍, 천일홍은 다가올 계절을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꽃밭을 걷다 보니 '이곳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꽃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사한 꽃밭 사이로 사람들이 걸으며 저마다의 계절을 만난다.
ⓒ 김홍의
철원은 한탄강을 따라 협곡과 주상절리가 발달한 지질학적 경관을 품고 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대지 위에 오랜 침식 작용이 더해지며 오늘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한탄강 일대는 이러한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철원은 자연의 시간만 간직한 곳이 아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접경 지역이기도 하다.

고석정 꽃밭이 자리한 부지는 한때 'Y진지'라 불리던 육군의 포 사격장이자 전차 기동훈련장으로 사용됐다. 1972년부터 36년 동안 군사 훈련과 포격 소리가 이어졌던 이곳은 군부대 이전 합의를 거쳐 유휴부지가 됐다. 철원군은 2016년부터 이곳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단위 꽃밭으로 탈바꿈했다.

자연이 만든 대지 위에 전쟁의 시간이 지나갔고, 그 위에 사람의 손길이 더해졌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이 겹겹이 쌓여 오늘의 고석정 꽃밭을 이루고 있다.

계절 위에서 만나는 시간
 보랏빛 버베나 꽃밭 사이로 깡통열차가 달리고 그곳에 사람들의 시간이 흐른다.
ⓒ 김홍의
꽃은 저절로 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대규모 꽃밭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품종을 심을지 고민하고, 계절에 맞춰 파종하고, 뜨거운 여름의 폭염을 견디도록 돌보는 사람들의 손길이 있어야 비로소 이 거대한 풍경이 완성된다.

맨드라미의 강렬한 붉은빛도, 버베나의 보랏빛 물결도, 아직은 파릇한 댑싸리 군락도 결국 자연이 만든 대지 위에 사람이 계절을 더해 만들어낸 풍경이다.

그래서 고석정 꽃밭은 단순히 꽃이 많은 관광지가 아니다. 자연의 시간 위에 사람의 시간이 더해져 하나의 계절로 완성된 풍경이다. 같은 꽃이라도 어디에서 피었는지, 그리고 언제 바라보는지에 따라 풍경은 다르게 다가온다.

고석정 꽃밭에서 누군가는 형형색색의 맨드라미를 사진으로 남기고, 누군가는 버베나 사이를 걷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고석정이라는 이름에서 한탄강의 협곡과 고석바위, 절벽 위 정자의 풍경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임꺽정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한때 이곳에서 포성이 울렸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 눈앞의 꽃밭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장소지만, 바라보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여행은 풍경만 보는 일이 아니다. 한 장소가 품고 있는 자연의 시간과 역사의 시간, 그리고 사람의 시간을 만나는 일이다. 그 시간을 마주하는 순간, 오늘 이곳에 선 여행자의 시간도 그 위에 겹친다.

그 순간 고석정 꽃밭은 단순한 꽃밭이 아니라, 여러 시간이 겹친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직 초록빛인 댑싸리, 다가올 가을의 시간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 김홍의
꽃 따라 걷다가 만난 시간
 형형색색 맨드라미가 오랜 대지 위에 화사한 가을의 시간을 수놓고 있다.
ⓒ 김홍의
꽃밭을 나서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노랑과 빨강, 분홍의 맨드라미는 여전히 환하게 피어 있었고, 보랏빛 버베나는 늦여름 바람을 따라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철원은 자연이 오랜 시간에 걸쳐 빚어낸 대지 위에 전쟁의 시간을 품었고, 그 위에 사람이 또 하나의 계절을 일구어낸 곳이었다. 그래서 고석정 꽃밭의 아름다움은 꽃의 수나 화려한 색에만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시간이 한곳에서 만나고 있다는 데 있다.

꽃은 계절이 오면 다시 같은 자리에 핀다. 자연의 시간도, 계절의 시간도 다시 흐른다. 그러나 그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오늘 내가 마주한 풍경과 그 순간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은 풍경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만났을 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올가을, 고석정 꽃밭을 천천히 걸어보자. 화려하게 피어난 꽃을 만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꽃이 피어난 대지의 시간과 그곳을 지나온 역사의 시간, 그리고 오늘의 계절을 만들어낸 사람의 시간을 함께 만나보자.

고석정 꽃밭은 꽃을 보러 가는 여행이면서, 한 장소에 쌓인 시간을 걸어보는 여행이기도 하다.
 꽃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시간이 풍경에 겹쳐졌다.
ⓒ 김홍의
[고석정 꽃밭 정보]
- 운영기간: 2026년 8월 28일 ~ 10월 31일 (매주 화요일 휴무)
- 운영시간: 09:00 ~ 20:00 (매표 마감 19:00)
- 입장료: 대인 10,000원 / 소인 4,000원 (개인 기준)
- 상품권 환급: 입장료의 50%를 철원사랑상품권으로 환급
- 감면 혜택: 65세 이상 어르신,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 감면. 철원군민은 신분증 지참 시 무료
※ 꽃의 낙화 시기에 따라 폐장 날짜가 조정될 수 있으며, 일몰 시간에 따라 운영시간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인근 여행지]
● 고석정
신라 진평왕과 임꺽정의 전설이 전해지는 철원의 대표 명승이다. 한탄강 협곡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한탄강 물윗길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운영되는 부교 트레킹 코스다. 태봉대교부터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한탄강의 계절 풍경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 한탄강 주상절리길(잔도길)
순담매표소와 드르니매표소를 잇는 약 3.6km의 탐방로다. 절벽을 따라 조성된 잔도와 스카이전망대에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한탄강의 웅장한 지형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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