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묘소는 쓸쓸했고, 백두산 천지는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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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백두산 천지! 한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신 아침 햇살을 껴안으며 짙푸르게 빛나는 호수.
북파에서 천지를 만났지만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발걸음은 백두산 서쪽으로 향한다.
'백 번 올라가야 천지를 두 번 볼 수 있어 백두산이라 한다'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지금의 행운을 꽉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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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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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시인의 묘소.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위치 |
| ⓒ 장애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하 인용시는 윤동주 '자화상'. 시집 표현 그대로 인용)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무성한 여름 풀숲을 헤치며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은 고행 그 자체였다(지난 8월 26일 북간도로 떠나 닷새간의 짧은 여행이었다). 관광지로 잘 꾸며진 시인의 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안내 표지판 하나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공동묘지가 있는 작은 언덕길, 인적이 드문 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 농부는 현지인이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이 온몸을 적시고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쯤, 시인이 산모퉁이를 돌아 찾아갔던 외딴 우물처럼 낯선 곳에서 문득 시인의 묘소가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시인의 묘소가 무척 쓸쓸해 보인다.
시간을 거슬러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겨우 6개월 앞둔 날, 윤동주 시인은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채 스물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 소식을 받은 시인의 아버지 윤영석은 당숙 윤영춘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 고향 북간도 용정으로 돌아온다.
이후 이 묘소는 40년 남짓 잊혀 있다가 1985년 시인의 동생 윤일주의 부탁을 받은 일본인 학자 고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중국 연변대학에 체류하던 중, 현지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찾아낸다.
시인의 묘소 바로 옆에는 시인과 같은 혐의로 체포되어 비슷한 시기에 옥사한 고종사촌 '송몽규'의 묘가 있다. 2016년 우리나라에서 <빛나던 미완의 청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동주>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 덕택에 우리는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기억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윤동주의 시에는 하늘과 바람, 별과 달, 우물과 같은 맑고 평화로운 시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서정의 깊은 곳에서 시인은 한결같이 자신을 들여다본다. '자화상'의 우물 속 사나이를 미워했다가 가엾어하고 다시 그리워하듯, 그의 마음은 세상을 향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런 시인의 묘 앞에서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다시 생각한다. 세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백두산으로 향하는 순례길이다. 평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살피고, 미움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윤동주의 시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에게 건네는 울림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2026년 현재, 오랜 세월 서울을 내려다본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누상동에서 하숙하며 종종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었다고 전해진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그의 대표작들이 이 무렵에 쓰였다.
문득 용정의 윤동주 묘소가 인왕산 자락에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적거리는 관광지가 된 시인의 생가와 뚜렷이 대비되어,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시인의 묘소가 더욱 쓸쓸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거닐던 인왕산 자락 혹은 시인이 청춘을 보낸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어느 자리라면 시인도, 시인을 찾는 사람들도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지나친 욕심일까?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시인의 묘소를 떠나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본다. 우물 속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았던 시인처럼, 이번 순례여행 또한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
남과 북이 서로를 미워한 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서로를 가엾게 여기고 다시 그리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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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간도의 달-백두산 북쪽 기슭마을의 하늘 |
| ⓒ 장애라 |
달빛과 차의 불빛 외엔 어둠뿐인 숲길이다. 백두산의 넓은 품을 실감한다. 산자락이 넓어서 이리 보아도 지리산, 저리 보아도 지리산인 남쪽 땅이 갑자기 생각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득한 저 앞의 한 점으로 수렴하여 나의 존재마저 소멸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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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북파 천지 올라가기 전 북파 아래쪽에서 바라본 풍경 |
| ⓒ 장애라 |
백두산 북파로 올라가는 길, 계속 달라지는 초목의 종류가 산의 높이를 말해준다. 우리나라 산은 그 수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녔다는 사실을 백두산에서도 새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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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천지 북파 정상에서 내려다 본 호수 |
| ⓒ 장애라 |
우리 애국가 가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을' 일은 없을 것 같아 안심한다. 평생을 기다려 온 시간은 영원 같았는데, 천지를 마주하도록 허락받은 시간은 너무도 짧게 느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아침, 낮, 저녁. 계절과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찰나 같은 한순간만 스쳐본 것을 과연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내려온다. 안녕, 안녕, 안녕하기를.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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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부석림 입구 쪽 전망대에서. 우연히 날아든 새 한 마리 |
| ⓒ 장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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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서파 능선과 하늘 |
| ⓒ 장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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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천지 서파 정상에서 내려다본 천지 |
| ⓒ 장애라 |
8월 30일 귀국하는 길에도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소망 하나가 있었다. 언젠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대륙으로 갈 수 있는 날, 북쪽 땅에서 잠시 내려 백두산에 들를 것이다. 그날은 아직 비어 있는 천지의 그림 한 자락을 마저 채워, 마침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것이다.
백두산은 그 자체로 장엄한 한 편의 대서사시다. 동시에 송화강과 두만강, 압록강의 젖줄이 되어 흐른다. 그리고 그리움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서정시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처럼.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1939년 9월, 동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백두산 평화기원순례를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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