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그린스펀 풋은 약이었다, 지금의 풋은 청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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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에는 여러 가지 '풋(put)'이 있다. 정책 당국이 시장 하락을 막아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믿음, 그 자체를 풋이라 불렀다.
그린스펀 풋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시장의 공포를 달래는 방식이었다. 앞선 풋이 시장을 안심시키는 처방이었다면, 지금의 풋들은 그 처방이 쌓이고 쌓여 생긴 청구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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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안심시키던 '풋의 시대' 종말
한국·일본 장기금리까지 뒤흔들어
이제는 '부채 청구서'를 직시할 때

금융시장에는 여러 가지 '풋(put)'이 있다. 풋은 정해진 가격에 자산을 팔 권리를 의미하는 파생상품 용어다. 하지만 시장은 이 단어를 다른 뜻으로 써왔다. 정책 당국이 시장 하락을 막아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믿음, 그 자체를 풋이라 불렀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그린스펀 풋'이다. 1987년 '블랙먼데이' 폭락 직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즉각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을 진정시킨 데서 비롯됐다. 이후 증시가 흔들릴 때마다 Fed가 나서줄 것이라는 기대가 공식처럼 굳어졌고 '버냉키 풋' '옐런 풋'으로 이름만 바뀌며 이어졌다.
그렇다면 요즘은 어떤 풋이 유행하고 있을까. 간밤(9월9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의 새로운 국채 매입 정책이 시행됐다. 10년 이상 장기물 국채를 대상으로, 회당 매입 규모를 20억달러에서 최소 60억달러로 세 배 늘리는 조치다. 이는 오는 11월4일까지 적용된다. 지난달 19일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이 예고한 것이어서, '베선트 풋'이라 부른다. 대통령의 우호적 발언이 주가를 떠받쳐 주길 바라는 오래된 기대, '트럼프 풋'의 재무장관 버전인 셈이다.

베선트 장관의 지난달 확대 계획 발표 당일(19일) 30년물 국채금리는 한때 9bp(1bp=0.01%포인트) 내려 5.2% 안팎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그 하락분은 같은 날 대부분 되돌아갔다. 바로 전날인 18일에는 30년물 금리는 5.3%대까지 치솟아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발표 다음 날에도 베선트 장관은 미 현지 방송 CNBC에 출연해 "회당 매입 규모가 40억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강조한 뒤 "정책 수단은 많다"며 재차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그는 "금리가 근본적인 경제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로리 하이넬 최고투자책임자는 이 조치를 두고 "수익률에 가해지는 다른 압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잘라 말했다. 공교롭게도 베선트 장관의 후속 발언은 미국의 총 공공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선 지 하루 만에 나왔다.
상처의 근원을 따라가면 또 다른 풋이 등장한다. 트럼프 정부가 4년간 5000억달러 규모의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겠다며 앞세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다. 정부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동시에 장기 자금을 찾아 나서면서 국채와 회사채가 같은 투자자의 지갑을 두고 경쟁하는 '역구축 효과'가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익이 크다고 믿는 기업이 높은 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채를 찍어내면서, 국채는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트럼프 풋이 촉발한 AI 투자 붐이, 정부의 차입 비용을 끌어올리는 청구서가 되어 돌아온 셈이다. 여기에 새 Fed 의장의 통화정책 향방을 둘러싼 불확실성, 중동 정세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며 장기금리를 밀어 올렸다.
청구서는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까지 갔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의 확장 재정이 일본의 장기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40년물 국채금리는 올해 초 사상 처음 4%를 넘었고, 10년물도 최근 1990년대 중반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재정 확대로 경기를 띄우려는 정책이 정작 그 재정을 조달할 국채금리 자체를 밀어 올리는 역설이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반복되고 있다. 일본이 오랫동안 미국 국채의 최대 해외 보유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내 장기금리 상승은 일본 자금이 자국 국채로 돌아서게 만들어 미국 국채 수요를 한 번 더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1년 새 눈에 띄게 올랐고,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의 여파를 그대로 받고 있다. 미 국채의 오랜 큰손이었던 일본과 우리나라마저 자국 국채 매력이 약해지는 처지에 놓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린스펀 풋과 지금의 풋들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그린스펀 풋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시장의 공포를 달래는 방식이었다. 반면 트럼프 풋, 베선트 풋, 다카이치 풋은 이미 넘치도록 풀어놓은 재정과 부채가 만들어낸 부작용을 미봉책으로 틀어막는다. 앞선 풋이 시장을 안심시키는 처방이었다면, 지금의 풋들은 그 처방이 쌓이고 쌓여 생긴 청구서에 가깝다. 정책 당국이 저마다 반창고를 붙이고 있지만, 정작 채권시장은 그 밑에 곪아 있는 상처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풋이 유행할수록, 그 이름 뒤에 쌓이는 청구서의 크기도 함께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그래서였나. 지난달 잭슨홀 미팅 후 이런 말이 나돌았다. "Kevin Warsh Just Killed the Fed Put(케빈 워시가 방금 Fed 풋을 죽였다)?" 투자자들이 오랫동안 기대해온 "시장이 흔들리면 Fed가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그가 의도적으로 거둬들였다는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일까.
조원경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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