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영정 앞에 나흘 늦게 도착한 아들

김태중 2026. 9. 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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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8시,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장민호씨 어머니의 관이 나갔다. 장민호씨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미국 주재 한국 영사관을 통해 일시 입국을 신청했다.

2020년 여름, 구순을 앞둔 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장민호씨는 30일짜리 일시 입국허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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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13년 추방·8차례 입국금지 연장, 국가보안법에 의해 장민호씨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김태중 기자]

 13년 국가보안법 추방자(피해자) 장민호씨 어머니 마지막 길 배웅
ⓒ 장민호 귀국대책모임
지난 6일 오전 8시,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장민호씨 어머니의 관이 나갔다. 향년 93세. 어머니는 8월 31일 오전 11시 30분에 눈을 감았고, 아들은 9월 4일 저녁에야 인천공항에 내렸다. 장민호씨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미국 주재 한국 영사관을 통해 일시 입국을 신청했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어머니 병문안을 위해 입국금지 일시해제를 신청해왔다.

이번에도 3년 전인 2023년과 같은 절차로 입국을 신청했지만, 담당자는 장씨에게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발급하는 범죄경력증명서(현지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내용)를 내야 한다고 했다. 지문을 채취해 FBI를 통해 증명서를 받고 미 국무부에서 공증까지 받아야 해, 발급에 4주가 걸리는 서류다. 결국 장씨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다"

장민호씨는 2006년 10월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다. 재미동포 사업가였던 장씨를 두고 언론은 '간첩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7년 12월 13일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은 '일심회'가 이적단체라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직의 실체를 인정받지 못한 '간첩단'이었지만, 사건은 '일심회 간첩단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복역했다. 2013년 10월 만기 출소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청주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고, 같은 해 11월 30일 미국으로 강제 퇴거됐다.

출입국관리법상 강제퇴거자의 입국금지 기본 기간은 5년이다. 2018년이면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확인한 바로는 그 뒤에도 해마다 연장돼 모두 8차례, 13년이 됐다. 무엇을 근거로 연장된 것인지, 언제 풀리는지, 장씨는 알 길이 없다.

장민호씨의 일시 입국에 제동이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여름, 구순을 앞둔 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장민호씨는 30일짜리 일시 입국허가를 받았다. 8월 4일 입국 예정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이유로 입국금지 해제 조치가 중단됐으나 통보는 없었다. 그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

당시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의 항의 끝에 비자가 재발급됐고, 그는 8월 24일에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 달 중 보름은 자가격리로 날렸고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보름뿐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장씨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지난 1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 모였다.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통일시대연구원, 한국교회인권센터를 비롯한 인권·종교·통일 단체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요구는 하나였다. 장씨가 어머니 장례만은 치르게 해달라. 이후 당국은 FBI 범죄경력증명서 없이 장례 참석을 위한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지난 5일 저녁, 국립중앙의료원 빈소에서 열린 '추모와 위로의 나눔' 자리에서 장민호씨는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비자를 신청했지만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어머님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하게 됐다"라고 안타까워 하며 "과거 일시 입국 심사에서는 FBI 범죄경력증명서를 요구받은 적이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장씨와 그의 귀국을 돕는 단체들은 왜 그 서류가 당시 입국 심사 과정에서 요구됐는지, 어떤 절차와 규정에 근거한 것인지 법무부와 영사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12조 4항엔 이렇게 쓰여 있다.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여기서 말하는 '자국'을 국적국보다 넓게 해석해왔다. 세계인권선언 제13조 2항도 같은 권리를 보호한다.

장민호 귀국대책모임과 연대 단체들은 정부와 법무부를 향해 ▲8차례에 걸친 입국금지 연장의 법적 근거와 심사 기준 ▲임종이 임박한 시점에 FBI 범죄경력증명서를 새로 요구한 근거 ▲장기 입국 제한은 언제 해제되는지 등을 묻고 있다.

장민호씨는 장례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머님을 배웅하는 마지막 날, 힘든 일정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여 주신 동지들께 머리 숙여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9월 1일 청와대 분수대 앞 긴급 귀국 촉구 기자회견 전경.
ⓒ 장민호 귀국대책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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