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겠다'가 아닌 '계속 쓰겠다'... 시인 추성은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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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은 시인은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벽'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추 시인은 당선소감에서 "나는 계속 쓸게요"라고 말했다.
필자는 추 시인이 등단하기 전 대학에서 같은 시 수업과 합평에 참여하며 서로의 작품을 읽은 인연이 있다.
지난 8일 서울 합정역 인근 모임공간 해밀에서 추성은 시인을 만나, 첫 시집과 최근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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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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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접시 위에는 잘 차려진 비밀이> 추성은의 첫 시집 표지 이미지 |
| ⓒ 교유서가 |
추 시인은 당선소감에서 "나는 계속 쓸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1월 산문집 <이전과 다르지 않다, 아마 미래도>를 출간했고, 4월에는 첫 시집 <접시 위에는 잘 차려진 비밀이>를 펴냈다.
첫 시집에는 '벽'을 비롯해 '투명한 늑골', '시인의 말2', '고스트 하우스', '수박 게임', '유형' 등 모두 45편의 시가 실렸다. 시집 제목은 수록작 '투명한 늑골'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에서 가져왔다. 새는 '벽' 뿐만 아니라 '투명한 늑골'과 시집의 마지막 작품 '유형' 등 여러 수록작에도 등장한다.
필자가 추성은 시인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그가 시인이 되기 전이었다. 필자는 추 시인이 등단하기 전 대학에서 같은 시 수업과 합평에 참여하며 서로의 작품을 읽은 인연이 있다. 이후 지속적으로 가까이 교류한 사이는 아니지만 지난 4일 서울 합정에서 열린 교유서가 시집 북토크에서 추 시인을 다시 만났다. 이를 계기로 첫 시집과 최근 작품 활동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 8일 서울 합정역 인근 모임공간 해밀에서 추성은 시인을 만나, 첫 시집과 최근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추 시인과의 일문일답.
첫 시집의 첫 시가 된 '벽'
- 2024년 신춘문예 당선작 '벽'을 첫 시집의 첫 작품으로 배치했습니다. 왜 '벽'이었나요?
"첫 번째 시는 이 시집을 가장 크게 설명할 수 있는 정체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벽'이 제 시를 가장 가깝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고요. 투명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와 부딪히는 순간을 통해 이 시집을 읽어줬으면 했어요."
- '벽'을 비롯해 시집 여러 작품에서 새가 등장합니다. 시집을 묶기 전에도 새를 반복해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저도 시집을 묶으면서 새가 이렇게 (제 시에) 많이 나오는지 알게 됐어요. 처음부터 '새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쓰는 건 아니거든요. 시를 쓰면서 화자나 소재를 선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새는 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자유로운 존재인데, 반대로 갇힐 수도 있는 존재잖아요.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제가 시에서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함께 놓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데, 새가 그런 것을 표현하기 좋은 존재였어요."
- 첫 시집에는 현재는 마음에 들지 않는 과거 작품도 남겼다고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유형'은 뺄지 고민했다고요.
"'유형'은 굉장히 날것의 상태였고 제가 평소 쓰는 방식과도 다르게 전개된 작품이라 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시행착오의 일부도 그냥 나로서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시집에는 그런 흔적까지 들어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 그렇다면 첫 시집은 지금까지 써온 시를 묶은 '성장 기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죠. 저의 성장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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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일 서울 카페꼼마 합정에서 열린 ‘교유서가 시집 북토크’. 왼쪽부터 윤다미 시인, 추성은 시인, 송하얀 시인. |
| ⓒ 교유서가 |
"시인이기 이전에 저도 독자로서 시를 먼저 접했잖아요. 그때 시인들에게 가장 실망했던 지점이 자기복제였던 것 같아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고 스스로 한계를 두는 거죠. 그래서 저도 그렇게 되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나에게서 계속 벗어나려는 몸짓이 있어야겠다고요. 그래야 읽는 사람도 재미를 느끼니까요."
- 본인의 시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반복된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있죠. 쓰다가 '이거 내가 전에 썼던 마무리랑 똑같은 마무리를 쓰고 있네' 하고 발견할 때가 있어요.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사용하는 거예요. 쓰는 저는 만족할 수 있지만 읽는 사람은 '왜 계속 비슷하지?' 하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발견하면 '내가 너무 안주하고 있구나' 생각해요. 재미가 없죠."
- 본인이 반복해서 사용해온 시의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도 정확히 무엇이 추성은다운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자주 쓰는 방식은 알아요. 앞과 뒤가 순환하고 무언가가 계속 반복되거나 증식하는 식의 구조를 많이 써요. 그래서 최근에는 오히려 그 안에서 멈추는 시를 써보고 싶어요. 계속 확장되거나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시요."
- 지금까지 쓴 작품 가운데 본인의 시 쓰는 방식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나요?
"'수박 게임'이요. 굉장히 빠르게 쓴 시인데, 제가 시에 접근하는 방식이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예지에서 이전 작품을 보내달라고 할 때도 '수박 게임'을 자주 보내요. 그 시에는 안쪽의 자아와 바깥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여러 자아 중 하나를 바깥에 세워놓고 그게 나인 것처럼 살아가기도 하는 거죠. 그 시에는 제가 희미하게나마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요."
- 인터뷰에서는 "이 시인은 뭔가 특색이 없다고 생각이 들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고정된 정체성이 보이는 것보다 '이 시인은 다음에는 뭘 쓰게 될까' 궁금해지는 시인이면 좋겠어요. 지금의 자유분방함을 오래 가져가고 싶고 계속 변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최근 쓰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 화자의 시
- 최근 쓰고 있는 시는 첫 시집에 실린 작품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최근에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많이 등장해요. 어린 시절의 제가 가지고 있던 감정 가운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결핍이나 욕망, 분노 같은 것들이요.
그동안 그런 감정이 시 안에서 제대로 정리돼 나온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린 여자아이를 화자로 두거나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 시를 몇 편 쓰고 있어요. 아직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고요."
-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한 시를 쓸 때 실제 경험과 작품 속 이야기는 어느 정도 달라지나요?
"제 경험에서 시작한 시라도 계속 쓰다 보면 처음의 '추성은'이라는 원본에서 멀어져요. 화자가 다른 인물이 되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제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 거죠."
- '정제되지 않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정제되지 않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은 있어요. 지금은 너무 정제되어 있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요. 어떻게 해야 시 안에서 내가 나일 수 있는가, 고유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시집 제목의 '비밀'
- 시집 제목에 들어간 '비밀'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비밀은 관념 중에서도 굉장히 관념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하트나 분홍색처럼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비밀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마다 전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 비밀을 예쁘게 차려서 접시 위에 보여주는 게 굉장히 어려운 시도라고 생각했어요."
- "시는 어떤 물성을 만드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어떤 뜻인가요?
"보이지 않는 개념에 어떤 형태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저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사물로 그것을 바꾸려고 해요. 보이지 않는 마음도 시에서 이미지가 되면 형태를 가지게 되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시와 독자가 다시 부딪히는 거고요. 저는 시가 충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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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접시 위에는 잘 차려진 비밀이>를 펴낸 추성은 시인. |
| ⓒ 박지희 |
"예전에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컸어요. 그런데 그 욕심이나 부담 때문에 오히려 시와 어긋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시와 동반해서 같이 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시가 오히려 가까워졌어요. 저한테는 '잘 쓰겠다'보다 '계속 쓰겠다'는 말이 더 맞았던 것 같아요."
- 등단 전에 시를 쓰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고요.
"한 1년 정도 시를 전혀 쓰지 않았던 때도 있었어요. 대학에 있을 때나 휴학했을 때 '내가 계속 시를 쓸 수 있을까' 고민했고, 투고도 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안 되겠다.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갑자기 '이거 시 써야 되는데' 하는 순간이 와요."
- 2024년에는 "나는 계속 쓸게요"라고 했고, 지금은 "나 같지 않은 시"를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금 '계속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2024년에 어떤 출발점에 있었다면 지금은 그곳에서 계속 멀어지려는 시도를 하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딘지는 몰라요. 뒤로 갈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요. 정해진 방향은 없어요. 후퇴와 진전이 계속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나아가고는 있지만 멀리 왔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최선을 다해 쓰고, 나아가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 그게 제가 시를 대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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