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분장놀이 열풍 보는 시골 학예사의 씁쓸함

엄원식 2026. 9. 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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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가 뚜껑을 열고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무대를 걷는다. 최근 4800만 회 이상의 SNS 조회수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편'의 결선 현장이다.

이 유물들도 분장놀이처럼 톡톡 튀는 기획을 만나면 얼마든지 지역의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국중박 분장놀이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진정한 전 국민의 축제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그 시선이 지방의 작은 공립박물관으로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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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학예사의 문화유산 다시보기 2] 재미·의미 동시 잡은 기발한 기획, 작은 박물관으로도 이어지길

[엄원식 기자]

▲ "내가 바로 K-유물"… 국중박 분장놀이 모집 포스터 2026년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편' 참가를 독려하는 홍보 이미지. "내가 바로 K-유물"이라는 재치 있는 문구와 황금빛 유물로 완벽하게 변신한 참가자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엄숙했던 박물관이 대중의 즐거운 놀이터로 변모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가 뚜껑을 열고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무대를 걷는다. 온몸을 금빛으로 칠한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띠며 종종걸음으로 관객과 호흡한다. 버려진 종이상자와 수백 개의 병뚜껑을 모아 삼국시대의 화려한 금동신발을 빚어낸 학생들도 있다. 최근 4800만 회 이상의 SNS 조회수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편'의 결선 현장이다.
과거 엄숙함의 상징이었던 박물관이 남녀노소 전 국민의 역동적인 놀이터로 변모하고 있다. 사실 대중이 예술을 모방하며 즐기는 문화는 역사 속에도 존재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명화나 역사적 장면의 한 컷을 살아있는 몸과 배경으로 직접 연출해 정지된 포즈를 취하는 '활인화(活人畵, Tableaux Vivants)'가 사교 오락으로 유행했다. 가까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미국 J. 폴 게티 미술관이 제안해, 일상용품으로 명화를 기발하게 재현한 챌린지가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 기발한 상상력의 실사화, 2025년 수상작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지난 2025년 행사에서 신라의 화려한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온몸으로 재현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디테일이 돋보인다. 진열장 속 유물이 대중의 유쾌한 상상력을 만나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멋지게 포착해 우리의 전통 유산에 접목했다. 2025년 처음 시작된 이 기획은 유리 진열장 너머에 박제되어 있던 우리 문화유산에 '놀이'라는 숨결을 불어넣었다. 금기시되던 유물의 변형과 재해석을 과감히 허용함으로써, 대중은 교과서 속 유물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와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특히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올해 '전국 4개 권역'으로 무대를 넓힌 점은 고무적이다. 참가자들은 덜 알려진 유물까지 스스로 샅샅이 찾아보고 공부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입혔다. 수동적인 감상자에 머물던 대중이 우리 역사를 알리는 적극적인 문화 전도사로 나선 것이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으며 박물관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춘 기획자와 관계자들의 통찰과 노고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국립' 박물관 중심이라는 씁쓸함... 숨은 향토 문화유산 관심도 높아지길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편' 본선 진출작.
ⓒ 국립중앙박물관 유튜브 갈무리
다만, 며칠 전 지방 박물관에서 고군분투하는 후배 학예사와 전화 통화를 나누며 이 화려한 성공 이면에 가려진 지역의 씁쓸한 현실을 짚어보게 되었다. 전국으로 무대가 넓어지며 큰 호응을 얻었지만, 여전히 그 혜택과 스포트라이트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형 '국립' 박물관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역에도 정작 지역민들조차 가치와 존재를 잘 모르는 숨겨진 향토 문화유산이 수두룩하다. 이 유물들도 분장놀이처럼 톡톡 튀는 기획을 만나면 얼마든지 지역의 명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초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방 공립박물관의 현실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고작 1~2명의 학예사가 유물 관리부터 온갖 잡다한 행정 업무까지 도맡아 쳐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이런 대규모 기획은 그저 닿을 수 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비수도권의 인구 유출을 막고 지역 소멸을 늦추기 위해서는 거창한 토목 공사보다 사람의 발길을 직접 이끄는 자생적인 '문화 콘텐츠'가 필수적이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사람은 움직인다'는 것을 이번 행사가 명확히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국중박 분장놀이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진정한 전 국민의 축제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그 시선이 지방의 작은 공립박물관으로 향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자신들의 행사 규모를 키우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지역 박물관들도 이러한 기획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체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중앙의 훌륭한 성공 모델이 지역 실정에 맞게 이식될 수 있도록 든든한 멘토이자 후원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지역의 낡은 수장고에 먼지 쌓인 채 잠들어 있던 향토 유산들이 주민들의 발랄한 아이디어로 깨어나 동네 무대 위를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화 분권이자, 문화를 매개로 지역에 사람을 불러 모으는 가장 매력적인 방파제가 될 것이다. 이 역동적인 문화 향유의 즐거움이 지역 소외 없이, 전 국민의 일상 속 축제로 온전히 자리 잡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오랜 기간 지역 문화 행정 최일선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지역 역사물인 <문경별곡>과 <점촌별곡>을 동시에 집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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