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헬스키친’ 김수하 “노래마다 성대를 갈아 끼우는 기분이었죠”

장지영 2026. 9. 9.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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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질풍노도의 소녀로 돌아가는 일, 그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뮤지컬 '헬스키친'의 주인공 앨리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배우 김수하의 고백이다.

김수하는 "가발과 분장으로 외형의 70~80%는 흉내 낼 수 있겠지만, 거기에 기대는 순간 배우로서 패배라고 생각했다"며 "무대 위를 내달리는 첫 순간부터 관객에게 뉴욕의 거친 바람을 호흡하는 앨리로 보이고 싶었다. 오프닝 넘버부터 폭발하는 자유분방함이야말로 이 공연의 승부수였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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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까지 GS아트센터… 17세 사춘기 흑백 혼혈 소녀의 성장기 담아
R&B, 소울 등 앨리샤 키스의 다양한 노래와 뉴욕의 스트리트 감성 표현
뮤지컬 ‘헬스키친’에 출연 중인 배우 김수하. ©PL엔터테인먼트

“17세 질풍노도의 소녀로 돌아가는 일, 그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뮤지컬 ‘헬스키친’의 주인공 앨리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배우 김수하의 고백이다. ‘헬스키친’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앨리샤 키스의 자전적 서사와 음악에서 모티프를 얻어 탄생한 작품으로, 1990년대 뉴욕 맨해튼의 거친 골목 헬스키친에서 자란 17세 소녀 앨리의 성장을 그린다.

백인 엄마와 흑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소녀 앨리는 엄마의 과잉보호 속에서 방황하다 피아니스트 미스 라이자를 멘토로 만나 음악으로 감정을 분출하는 법을 배우고 진정한 자신을 마주한다. 지난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수하는 “어느덧 30대에 접어들다 보니,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앨리보다 엄마와 멘토 선생님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며 “그래서 연출가로부터 ‘어른들의 마음을 그렇게 잘 이해하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때부터 10대 특유의 날 선 반항심과 순수한 열기를 되살리는 마인드 컨트롤에 매달렸다”고 털어놓았다.

김수하는 2015년 대학 재학 중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 무대에 서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여주인공 킴의 언더스터디(대역 배우)로 합류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한국인 최초로 주역을 꿰찼다. 영국과 일본 투어를 거쳐 국내 무대로 돌아온 그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레미제라블’ ‘아이다’ ‘렌트’ ‘하데스타운’ 등 굵직한 대작들을 차례로 거치며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그런 김수하에게도 이번 무대는 자신을 바닥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 도전이었다. 정통 클래식 뮤지컬에 익숙했던 그에게 흑인 음악 특유의 소울과 R&B의 유연한 그루브는 완전히 낯선 분야였기 때문이다.

김수하(가운데)가 출연 중인 뮤지컬 뮤지컬 ‘헬스키친’. ©에스앤코

“초등학교 5학년 때 뮤지컬 배우를 꿈꾼 뒤로는 오직 뮤지컬 넘버만 듣고 살았어요. 대중가요나 팝은 거의 알지 못했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앨리샤 키스의 데뷔 초 영상과 자료들을 샅샅이 찾아봤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무대를 장악하던 특유의 소울풀하고 허스키한 음색, 몸에 밴 듯한 리듬감을 밤낮으로 연구했죠.”

연습 초반 그가 맞닥뜨린 과제는 “뮤지컬처럼만 들리지 않게 해달라”는 연출의 지시였다. 이에 정박에 맞춰 깨끗하게 뽑아내던 소리의 틀을 부수기 위해 그는 점심시간까지 반납하며 음악감독들을 붙들고 개인 레슨을 청했다. 연습이 끝난 늦은 밤에도 주차장 차 안에서 홀로 목을 가다듬는 날들이 이어졌다.

“정통 뮤지컬 발성에 맞춰 단단해진 성대 근육을 팝과 R&B의 호흡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어요. 대학 입시 이후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연습해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박자를 반 박자 뒤로 눕혀 부르는 ‘레이백’이나 즉흥적인 보컬 런(애드리브)을 체화하기 위해 동료 배우들의 입 모양과 숨소리까지 통째로 삼키듯 따라 했죠. 특히 ‘헬스키친’의 넘버들은 R&B·소울부터 힙합·재즈·록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워낙 방대해, 매 곡마다 성대를 갈아 끼우며 노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김수하(왼쪽)가 출연 중인 뮤지컬 뮤지컬 ‘헬스키친’. ©에스앤코

보컬뿐 아니라 몸짓에서도 완전한 앨리가 되고자 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수년간 갈고닦은 발레를 그만둔 그는 스트리트 댄서들의 걸음걸이와 손짓 등을 하나하나 체화했다. 김수하는 “가발과 분장으로 외형의 70~80%는 흉내 낼 수 있겠지만, 거기에 기대는 순간 배우로서 패배라고 생각했다”며 “무대 위를 내달리는 첫 순간부터 관객에게 뉴욕의 거친 바람을 호흡하는 앨리로 보이고 싶었다. 오프닝 넘버부터 폭발하는 자유분방함이야말로 이 공연의 승부수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이런 집념에 원작자이자 프로듀서인 앨리샤 키스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번 한국 프로덕션을 위해 방한했던 키스는 첫 공연을 지켜본 뒤 제작진을 통해 “수하가 무대를 완벽하게 이끌어준 덕분에 비로소 안도했고, 더없이 벅찼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다만 미국 흑인 커뮤니티의 서사와 혼혈아로서의 정체성이라는 소재가 한국 관객에게 다소 거리감 있게 다가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종차별 논란을 피하고자 블랙페이스(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 등을 지양한 만큼 인종적 맥락이 흐릿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수하는 ‘보편적 공감대’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외형이나 인종적 특성을 무리하게 흉내 내기보다 인물들이 품은 감정의 원형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는 차별과 부당함, 억울한 답답함의 정서로 엘리를 풀어냈죠. 무엇보다 이 작품은 17세 앨리뿐 아니라 남편 없이 딸을 키우는 엄마, 그리고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멘토 선생님으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연대와 성장’이 단단한 뼈대를 이룹니다. 중장년층 부모 관객분들이 눈물을 훔치며 극장을 나서는 것도 바로 그 세대를 잇는 사랑의 힘 때문 아닐까요.”

공연은 오는 11월 8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이어진다.

뮤지컬 ‘헬스키친’에 출연 중인 배우 김수하. ©PL엔터테인먼트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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