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기업 원팀 뭉쳤다…캐나다 아쉬움 씻을 K방산 ‘승부수’ [Focus 인사이드]
“K-방산 괜찮습니까?”, “K-방산, 이제 한풀 꺾인 것 아닙니까?”, “K-방산이 가진 강점도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닙니까?”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우리 기업이 독일 기업에 우선협상 지위를 내준 뒤 필자가 여러 차례 마주했던 질문들이다. 아쉬움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때마다 이렇게 답했다.
“두고 보십시오.”
K-방산의 경쟁력은 어느 한두 건의 수주 결과로 흔들릴 정도로 얕지 않기 때문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능력이 결합한 탁월한 가격 경쟁력, 주문받은 무기를 약속한 시간 안에 공급하는 빠른 납기, 실전과 운용 현장에서 검증된 신뢰성, 북유럽의 혹한에서 중동과 열대지역의 혹서까지 작동하는 전천후 성능, 그리고 정부와 기업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팀 코리아’. 각각의 강점을 가진 국가는 있어도 이 모든 것을 함께 갖춘 나라는 찾기 어렵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움직임은 이러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K9은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에서도 계열 차륜형 자주포 시제품 공급 기회를 확보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K9 자주포의 스페인 진출이다. 이번 사업의 의미는 몇 문을 얼마에 수출하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유럽시장에 들어갔느냐에 있다.
지금 유럽 방산시장은 거대한 기회와 높은 장벽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은 국방비를 대폭 확대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자국과 역내 방산산업을 보호하고 공급망을 유럽 안에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 단순히 한국에서 만든 완제품을 유럽에 판매하는 방식만으로는 앞으로 시장 진입이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 사례는 매우 지혜로운 협력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기업은 스페인 정부에 완제품만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페인이 자랑하는 대표 방산기업 인드라와 손을 잡았다. 한국의 K9 플랫폼과 생산역량에다 스페인의 산업기반과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한국 무기를 스페인에 ‘파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과 ‘함께 만들고 함께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K-방산은 유럽 방산산업 보호정책의 외부 경쟁자가 아니라 유럽 방산 생태계의 파트너가 된다. 앞으로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전통적인 방산 강국의 대기업들과도 이 같은 모델을 확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쟁자로만 바라봤던 기업들과 공동연구·개발·생산하고, 더 나아가 제3국 시장을 공동개척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지혜로운 전략에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마크 루터 나토 사무총장과 한·나토 조달기본협정 체결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우리 기업이 나토 공동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한층 다져진다. 방위사업청도 ‘나토 표준 제공 및 관리 지침’을 마련해 우리 기업과 연구기관이 필요한 나토 표준을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나토 시장에 들어가려면 상호운용성과 표준, 인증과 조달절차를 함께 충족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 방대한 나토 규정과 표준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시행착오를 겪게 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이러한 움직임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대통령은 정상외교를 통해 제도적 문을 열고, 방사청은 나토 표준과 조달절차라는 실무적 문턱을 낮추며, 기업은 스페인 사례처럼 현지의 대표기업과 손잡고 산업생태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묶일 때 파급력은 막대할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K-방산이 나토와 EU의 블록화 장벽을 넘어가는 새로운 ‘팀 코리아 모델’일 수 있다.
우리는 유럽의 방산산업 보호정책을 비판하는 데 머물 필요가 없다. 상대국이 왜 자국 산업을 키우려 하는지를 이해하고, 오히려 그 목표를 함께 달성하는 파트너가 되면 된다. “우리 제품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 만들고 함께 연구하고 함께 세계시장으로 나가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폴란드와의 협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무는 폴란드와의 대규모 계약에 이어 현지 방산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생산과 공급망을 현지에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히 무기를 판매하는 관계를 넘어 폴란드 방위산업과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번 달 폴란드에서 열리는 MSPO 2026도 이러한 협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장이 될 것이다. 유럽의 주요 정부와 군, 방산기업이 모이는 자리에서 K-방산의 기술력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생산과 공급망, 제3국 공동진출이라는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확대해야 한다. 크로아티아에서도 천무 계약의 낭보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달 자그레브에서 천무 18대, 약 4억 7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 체결이 예정돼 있다. K-방산의 유럽 확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개별 계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미국에서는 세계 최대 방산시장에 도전하고, 스페인에서는 현지 대표기업과 손잡고 서유럽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가며, 폴란드에서는 현지 생산과 공급망을 함께 만들고, 크로아티아 등 새로운 유럽 시장으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이 모든 사례를 관통하는 것은, K-방산의 두려움 없는 도전과 끊임없는 진화다.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엔 피땀 눈물이 담긴 연구로 기술의 장벽을 넘었다. 수출 실적이 부족했던 시기엔 인내와 우직함으로 신뢰를 쌓아 그 장벽을 넘었다. 그리고 이제 세계적인 경쟁자로 성장하자 나토와 EU의 블록화라는 새로운 장벽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장벽 앞에서 멈출 이유가 없다. 수출 장벽이 높아지면 공동생산으로 들어가고, 현지산업 보호가 강해지면 그 산업의 파트너가 되며, 시장이 블록화하면 그 블록의 기업들과 함께 연구하고 생산하고 제3국으로 나가면 된다.
앞으로 K-방산의 새로운 국제 협업 방식은 분명하다. 공동연구, 공동개발, 공동생산, 공동마케팅이다. 한 번 무기를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군수지원과 성능개량을 책임지고, 기술과 인재를 연결하며, 신뢰를 기반으로 함께 다음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이게 필자가 K-방산의 미래를 자신하는 이유다. 우리는 미국처럼 압도적인 군사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도 아니고,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100년 넘는 방산 수출의 역사를 가진 나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과 빠른 기술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고, 고객이 요구하는 시간에 무기를 공급하며, 혹한과 혹서에서도 운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정부와 군, 기업이 한 팀으로 세계시장을 뛴다. 극강의 강점 조합이다. 그리고 이제 상대국과 함께 연구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수출하는 방법까지 진화하고 있다.
K-방산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세계 몇 위의 방산 수출국으로 끝나선 안 된다. 대한민국의 무기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위기의 순간에 “한국과 함께라면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우리의 기술과 생산능력이 우방국의 안보와 공급망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축이 되는 것. 세계의 무기 수출국이 아니라 세계의 안보를 함께 책임지는 신뢰받는 전략적 파트너가 되는 것. 이것이 K-방산이 가야 할 진로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결과를 보고 K-방산이 한풀 꺾였다고 말했던 분께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 “조금 더 두고 보시라.”
미국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고, 스페인에서는 새로운 시장 진입의 길을 만들고 있으며, 폴란드에서는 수출을 산업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정상외교는 나토 시장으로 들어가는 제도적 문을 열고 있고, 방사청은 그 안으로 들어가는 실무적 장벽을 낮추고 있다.

K-방산은 이제 세계 방산시장의 단순한 도전자가 아니다. 기술과 제조, 속도와 신뢰, ‘팀 코리아’의 힘과 지혜로운 협력을 바탕으로 세계 방산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주역이 되고 있다. 필자는 K-방산의 미래를 믿는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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