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빠졌지만…다시 주목받는 전력기기
한동안 부진한 흐름을 보인 전력기기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미국 전력망 투자 확대 기대를 타고 거침없이 오르던 전력기기주는 지난 5월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걸었다. 단기간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데 따른 가격 부담이 커진 데다, 반도체로 투자자 관심이 집중되며 주요 종목 주가는 고점 대비 40% 가까이 급락했다.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2분기 주요 전력기기 업체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수주 목표를 높여 잡으며 업황이 정점을 찍었다는 우려를 잠재웠다. 미국이 자국 전력망에 들어가는 외국산 전력장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국내 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도 커졌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며 관련 종목 주가가 뛰었다. 지난 8월 27일 HD현대일렉트릭은 12%, 효성중공업은 10%, LS일렉트릭은 9%, 산일전기는 14%씩 급등했다.
다만 전력기기주가 지난해처럼 일제히 오르는 장세가 다시 펼쳐질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일부 종목의 주가는 낮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와 미국 정책, 환율 등 확인해야 할 변수도 적잖다. 증권가에서는 전력기기 슈퍼사이클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면서도, 업종 전체를 추격 매수하기보다 수주와 실적 개선이 확인되는 기업을 압축해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주요 3사 수주 목표 일제히 높여
증권가에서는 최근 조정을 전력기기 산업의 문제보다 비싸진 주가가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주가가 하락하는 동안 주요 기업의 이익 전망은 좀처럼 꺾이지 않아서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S일렉트릭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 5월 6499억원에서 9월 초 7140억원으로 약 10% 높아졌다. 같은 기간 효성중공업 영업이익 전망치도 1조942억원에서 1조1259억원으로 3%가량 상승했다. 주요 3사 중 HD현대일렉트릭 전망치만 1조2539억원에서 1조2324억원으로 약 2% 하락했다.
주가 부담은 크게 낮아졌다. 지난 5월 초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78배에 달했던 LS일렉트릭은 최근 41배 안팎까지 내려왔다. HD현대일렉트릭은 같은 기간 43배에서 23배, 효성중공업은 42배에서 25배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적 눈높이가 오르는 가운데 주가가 떨어지며 고평가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고점 대비 주가가 35~45% 빠졌지만, 같은 기간 주요 3사 2분기 실적과 수주는 모두 사상 최대”라며 “최근 조정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로 수급이 쏠린 탓에 발생한 주가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수주다. 주요 기업은 오히려 올해 수주 목표를 줄줄이 높여 잡았다. 효성중공업은 중공업 부문 연간 신규 수주 가이던스를 기존 8조4000억원에서 12조원으로 상향했다. HD현대일렉트릭 또한 연간 신규 수주 목표를 42억2000만달러(약 5조7000억원)에서 52억달러(약 7조1000억원)로 올렸다. LS일렉트릭 역시 올해 신규 수주 목표로 6조~6조5000억원을 제시했다.
이미 쌓아둔 일감도 상당하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 수주잔고는 84억9000만달러(약 11조5000억원), LS일렉트릭은 7조원, 효성중공업 중공업 부문은 17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 외 산일전기 또한 올 2분기 신규 수주가 24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3% 증가했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주가 조정과 달리 수주 흐름은 오히려 강해졌다”며 “최근 반등은 주가가 충분히 조정받은 상황에서 2분기 실적과 수주가 업황 고점 통과(피크아웃) 우려를 완화한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전력망 공급 규제가 추가 촉매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美 전력 부족 장기화가 성장 동력
전력기기 업황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여전히 미국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765㎸ 초고압 송전망과 초고압직류송전(HVDC), 데이터센터 전용 변전소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진입장벽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초고압 설비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강점이 부각된다.
효성중공업은 미국에서 765㎸급 초고압 변압기를 생산할 수 있는 멤피스 공장을 운영 중이다. 단순 변압기뿐 아니라 가스절연개폐장치(GIS)·가스차단기(GCB)도 함께 공급할 수 있어 송전망 투자가 확대될수록 단품 판매보다 변전소 패키지 수주 기회가 늘어날 전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북미 초고압 변압기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최근에는 빅테크와 직접 계약하는 방식으로 고객군을 넓히고 있다. LS일렉트릭은 데이터센터 접속용 배전설비부터 내부 전력 인프라와 초고압 변압기까지 공급 범위가 넓다는 평가다.
미국 정책도 새로운 변수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26일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외국산 전력망 장비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적용 범위에는 변전소용 변압기와 고압 차단기 등 주요 전력장비가 포함된다. 향후 세부 규칙에서 특정 국가와 업체가 규제 대상으로 지정되면 미국 현지 생산시설을 확보했거나 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국내 기업의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단, 아직 구체적인 수혜 규모를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행정명령 적용 범위와 대상 업체를 정하는 후속 규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동헌 애널리스트는 “중국산 배제 범위와 적용 시점에 따라 국내 기업의 반사이익 규모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험 요인도 있다. 가장 큰 부담은 여전히 높은 주가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주요 전력기기 업체 12개월 선행 PER은 약 35배다. 글로벌 경쟁사 PER 역시 30배 수준으로 높지만, 코스피 PER이 7~8배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가 선뜻 접근하기 쉽지 않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데이터센터가 정치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변수다. 데이터센터 증가가 전기요금 상승과 토지·수자원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지역사회 반발이 커지고 있어서다. 프로젝트가 취소되지 않더라도 인허가나 전력 연계 일정이 1~2년 늦춰지면 기업 실적보다 PER이 먼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환율도 살펴야 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중장기 업황이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단기 이슈에서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다”라며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현재 수주 단가가 정점을 지났다는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신규 투자자는 환율 저점을 확인한 뒤 진입하는 전략도 고려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전력기기 업종 전체보다 기업별 수주와 이익 개선 속도를 살펴야 할 시기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유안타증권은 효성중공업을 업종 내 최선호주로 꼽고 목표주가 500만원을 제시했다. 9월 2일 종가 대비 81% 높은 수준이다.
손현정 애널리스트는 “효성중공업은 초고압 변압기뿐 아니라 가스절연개폐장치(GIS)와 초고압 가스차단기(GCB)를 함께 공급할 수 있다”며 “향후 미국 765㎸ 송전망 확대 시 단품보다 변전소 패키지 단위로 매출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뿐 아니라 미국 전력망 투자 수혜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트폴리오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6호(2026.09.09~09.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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