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그림은 누구의 것인가…오윤의 칼이 향한 자리

김희윤 2026. 9. 8. 19: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윤의 판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그렸느냐만이 아니다.

오윤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가는 통로는 책이었다.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1984)에는 오윤이 만든 제목 서체와 판화 '새벽'이 표지에 쓰였고, 내지에는 그의 '노동의 새벽'이 실렸다.

오윤의 판화가 40년 뒤에도 읽히는 이유는 그가 남긴 정치적 메시지에만 있지 않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고 40주기,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서 기획전
완성작 31점·자료 300여점으로 다시 읽는 민중미술
판화·문학·굿의 관계와 창작 과정…'민중'이라는 이름 너머의 오윤

오윤의 판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그렸느냐만이 아니다. 그 그림은 누구에게 가려고 했는가. 1979년부터 박경리의 소설 '토지' 표지에 쓰인 판화 '지리산'(1977)은 그 질문을 잘 보여준다. 그림은 미술관 벽에만 머물지 않고 책의 얼굴이 돼 독자에게 갔다. 오윤은 시집과 소설의 표지, 삽화, 포스터를 만들며 미술이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찾았다.

오윤, 〈도깨비〉, 1985, 광목에 고무판, 채색, 87.5×207㎝. 도깨비들이 음식을 나누고 춤추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오윤 특유의 해학과 신명이 드러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서울시립미술관
오윤의 1985년작 〈도깨비〉 고무판화 원판. 도깨비들이 먹고 마시며 어우러진 장면을 새긴 판각의 흔적을 통해 완성된 판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열린 오윤(1946~1986) 작고 40주기 기획전은 그 질문을 다시 꺼내는 자리다. 전시는 완성 작품 31점과 판화 원판, 습작, 드로잉, 노트 등 자료 300여점을 함께 보여준다. 작품의 결과뿐 아니라 한 장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도록 했다.

오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 설명은 틀리지 않지만 그를 이해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다.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이 작품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해주는 동안, 정작 그가 어떤 형식을 고민했고 왜 나무판을 골랐으며 사람들의 몸짓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이번 전시는 오윤을 이미 완성된 미술사적 인물로 기념하기보다, 끊임없이 작업 방식을 바꾸고 자신의 언어를 찾아갔던 예술가로 다시 읽는다.

오윤이 1977년 제작한 〈우는 아이〉 목판화 습작. 굵은 선과 단순화한 형태로 인물의 표정을 포착한 작업으로, 전시는 출판미술과 판화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서울시립미술관

그는 1969년 서울대 미대 재학 중 '현실동인'을 결성했고, 1979년 '현실과 발언' 창립에 참여했다. 전돌 작업과 출판미술을 거쳐 목판화의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했으며, 1980년대 중반 한과 신명을 역동적으로 풀어내며 예술적 절정기에 이르렀다. 1986년 그림마당 민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는 오윤의 노트와 메모에서 가져온 여섯 개의 제목을 따라간다. '개도치 오윤' '땅에 넋이 있지라' '응당 무엇을 표현하는가' '나가 포함된 집단적 흥' '나두야 간다' 등이다. 연대기적 흐름을 따르되 각 장의 제목을 작가의 노트와 메모에서 가져와, 작품과 함께 그의 생각이 형성된 과정을 읽도록 했다.

오윤의 1976년작 '노동의 새벽' 습작 목판화 원판(왼쪽)과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1984). 오윤은 시집 표지의 제목 서체와 판화 '새벽'을 제작하고, 내지에 '노동의 새벽'을 실었다. 노동자의 뒷모습을 새긴 판화는 그가 경주 전돌 작업장에서 만난 노동자 오후식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여기서 판화 원판은 완성작의 부속자료가 아니다. 종이에 찍힌 이미지만 볼 때는 매끈한 윤곽으로 지나쳤던 선이 원판에서는 칼을 쥔 손의 선택으로 드러난다. 어디를 남기고 어디를 덜어냈는지, 형상을 얼마나 단순화했는지가 보인다. 오윤의 인물들이 몇 개의 굵은 선만으로도 일하고, 울고, 춤추는 사람으로 읽히는 이유를 제작의 구조에서 생각하게 한다.

오윤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가는 통로는 책이었다. 그는 생전에 45권의 도서에 표지화와 삽화 등으로 참여했고, 이들 출판물에 판화 137점과 그림 76점을 실었다.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1984)에는 오윤이 만든 제목 서체와 판화 '새벽'이 표지에 쓰였고, 내지에는 그의 '노동의 새벽'이 실렸다. 그 그림 속 노동자의 뒷모습은 관념적인 민중의 형상이 아니었다. 경주 전돌 작업장에서 만난 노동자 오후식은 오윤이 즐겨 그린 인물이었다. 수유동 가오리 작업실 주변에서 만난 막노동꾼과 구두수선공,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던 이웃의 삶도 그의 드로잉에 남았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오윤》에 전시된 작가의 판화 제작 도구와 채색 재료. 판각 도구와 물감, 작업에 사용한 여러 물품을 통해 오윤의 제작 방식과 창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남기용·서울시립미술관

말년의 '도깨비'(1985)는 오윤이 그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을 더 찾으려 했는지 보여준다. 봉산탈춤 팔목중춤의 사설을 새긴 화면에서 도깨비들은 춤추고 북을 두드리며 씨름하고 술을 마신다. 몸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곡선은 흥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번지는 듯하다. 오윤이 노트에 적은 '나가 포함된 집단적 흥' '일의 놀이화, 놀이의 일화'는 이 장면을 읽는 열쇠다. 억압받는 사람을 그리는 데서 나아가, 그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고 웃고 어우러지는 세계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올해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옛 상업은행 건물에서 오윤이 1973년 오경환·윤광주와 함께 제작한 테라코타 부조가 철거 위기에 놓이면서 시작된 보존운동은 그의 미술을 현재의 문제로 끌어온다. 사람들에게 가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어떻게 보존되고 누구의 공간에 놓여야 하는가. 미술관이 원판과 노트를 수집하는 일과 도시 안에 남은 작품을 지키는 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한다.

1965~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재학 시절의 오윤(1946~1986). 작고 40주기 기획전 《오윤》에서는 작가의 사진과 노트, 습작 등을 통해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판화가로 자리 잡기 전의 삶과 예술적 탐색도 소개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마지막 장 '나두야 간다'는 열다섯 살 오윤의 여행일지에서 출발한다. 마흔에 끝난 삶을 돌아보는 전시가 소년의 기록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그 사이에 놓인 작품과 자료들은 한 예술가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곧장 걸어간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만나고 다른 형식을 시험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갔음을 보여준다. 오윤의 판화가 40년 뒤에도 읽히는 이유는 그가 남긴 정치적 메시지에만 있지 않다. 미술은 누구의 삶을 자기 언어로 삼고, 그 삶을 어떻게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가. 그가 평생 붙잡았던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전시는 내년 2월14일까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모음동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