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으로 1년 살기' 시도한 사람이 깨달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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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에 목매는 한국 사회에 익숙한 정미로썬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격한 주장이지만, 통념을 깨부수는 순간이 도래한다.
처음엔 당장 자신의 호구지책 해결에 급급하던 정미는 조금씩 자신이 정말로 추구하던 한국 사회 시스템 너머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안정감을 형성한 '0원으로 사는 삶'을 과감히 떨치고 정미는 먹을 것과 잘 곳이 가득한 런던을 벗어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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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미'는 한국을 떠나 영국 런던의 한국계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팍팍한 일상에 지쳐 외국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수많은 청춘에게 꿈과 같은 성공담으로 비칠 테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한국과 다를 바 없는 회사 환경에 질리고 만다. 끝내 해고를 당한 그녀는 곧바로 벼랑 끝에 선다. '회사 인간'이 회사를 벗어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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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
| ⓒ (주)시네마 달 |
사람은 먹어야 산다. 실업자가 된 정미 역시 이 법칙을 거스를 순 없다. 런던 한복판에서 자급자족할 텃밭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끼니는 매번 돌아온다. 0원으로 버티기로 했으니 실천해야 하는데 대체 무슨 수로?
다행히 와이파이는 쓸 수 있다. 이것저것 필사적으로 검색해 본다. 생소한 "스킵 다이빙"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 도시의 식품 유통 구조에서 빚어진 틈새, 쉽게 말해 '폐기' 수집이다. 관련 활동가의 도움으로 정시에 쓰레기 포장을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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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
| ⓒ (주)시네마 달 |
처음엔 당장 자신의 호구지책 해결에 급급하던 정미는 조금씩 자신이 정말로 추구하던 한국 사회 시스템 너머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너무나 충실하게 'K-라이프'를 살던 그녀로선 먹고 자는 것 해결하는 게 좋긴 한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혼란의 연속이다. 남의 소유인 집을 점거하고 사는 게 허용될 수 있는지, 스퀏팅이 공인된다면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지 고민이 거듭된다. 그저 도움을 얻고 누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 대안적인 삶의 탐구를 개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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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
| ⓒ (주)시네마 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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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
| ⓒ (주)시네마 달 |
몇 곳의 공동체를 전전하던 정미는 웨일즈에 자리한 '올드 채플 팜' 공동체에서 작은 해답을 얻는다. 단순히 의식주를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는 명분을 넘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며 최적의 지속 가능한 삶을 학구적으로 탐구하는 이곳에서 그녀는 이런 고단한 삶의 의의와 가치를 체화할 수 있게 된다. 그저 단기간의 낯선 모험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인생관 변혁으로 향하는 체질 변화의 순간이 도래한 것. 이젠 노련해진 영국에서의 삶을 벗어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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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
| ⓒ (주)시네마 달 |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의 연례 축제는 그들만의 작은 우주와 다를 바 없다. 휴대전화 사용이나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고, 대안적 공동체의 원칙이 외부의 복잡한 법과 제도 대신 통용된다. 정미는 분위기에 동화 되다가도 필사적으로 거부하며 의심을 거듭한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두 세계가 대결하는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안식은 어디인지 찾는 것. 다른 활동가와 달리 인류의 미래나 세계 평화 같은 대의명분이 아닌 지극히 개인에서 출발하는 고민이다.
다시 길을 떠나 유럽을 빙 둘러 횡단하던 정미는 현대판 히피들의 카라반에 합류한다. 대형 트럭을 개조한 캠핑카에서 처음 보는 이들이 한데 어울리며 여정은 이어진다. 물론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히피들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당국과 충돌을 빚는 건 물론, 구성원 사이에도 노선과 태도에 따른 갈등이 툭하면 벌어진다. 작은 사회 속 대립은 곧 히피와 펑크,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지향 사이의 현대 사회운동 논쟁으로 자연히 연결된다.
일련의 상황을 겪으며 정미는 수시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난민을 돕는 사회 운동에 참여할 것인가, 아직 해소하지 못한 개인의 고뇌를 풀기 위한 구도의 길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여기에 수십 가지 고민이 접속되며 상황은 계속된다. 일단 계속 길을 가기로 한다. 중부 유럽에서 동유럽, 남유럽으로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과연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 의심하던 1년이란 시간도 어느덧 끝나간다. 조용한 그리스의 섬에서 정미는 최초 목표를 완수한다.
담요를 입은 사람의 전설 속으로
하지만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행가라면 충분히 책 한 권 내고 남을 여정을 치렀음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1년이란 시간이 주인공을 예전과는 다른 존재로 변형 시킨 듯하다. 정미는 다시 동쪽으로 향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동쪽으로 향하는 누더기 차림의 주인공은 이제 신비로운 걸식 수행자의 형상을 닮아간다.
'데르비쉬', 즉 '담요를 입은 사람'이란 뜻을 듣게 된 그녀는 자신이 고대의 수행자와 비견 된다는 걸 깨닫는다. 튀르키예에서 이란으로 향한 발걸음, 지금 전화에 휩싸인 땅에서 그녀가 접한 호의와 친절은 2026년 한국 관객에게 영화 외부적인 단상을 던질 만하다. 물론 오리엔탈리즘이 영화의 귀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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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릉 입은 사람> 포스터 |
| ⓒ (주)시네마 달 |
주인공의 모든 걸 공감하거나 동의할 필요는 없다. 사회적 연대나 대안 공동체 형성 노력보다는 우선순위로 개인의 구원, 혹은 영성 추구를 놓는 선택이 자칫 신비주의로 매몰될 우려를 낳을 구석도 종종 엿보인다. 하지만 동시대 현대 한국인 절대 다수가 감히 의심조차 품기 힘든 시스템 외곽의 삶을 체험하고, 소유의 강박에서 벗어난 삶이 가능함을 실증한 도전은 일상의 헛헛함에 시달리는 관객에게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북돋기엔 충분해 보인다.
<작품정보>
담요를 입은 사람
Blanket Wearer
2024 한국 다큐멘터리
2026.09.09. 개봉 117분 12세 관람가
감독 박정미
출연 박정미 외
제작 박정미
배급 ㈜시네마 달
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급지원상
16회 부산평화영화제 도란도란관객상, 장편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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