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 반년 만에 최고치…수출엔 호재, 여행·증시는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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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가 달러당 153엔대까지 오르며 약 반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에 미국과 일본 통화당국의 추가 대응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엔화 매수세가 강해진 영향이다.
미국도 일본의 엔저 시정 움직임에 힘을 실으면서 시장에서는 엔화가 다시 급격히 약해질 경우 추가 대응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
엔화가 약할 때는 일본 기업들이 달러 기준 판매가격을 낮추기 쉬워 한국 기업에 불리하지만, 엔화가 강해지면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누려온 환율상의 이점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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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가 달러당 153엔대까지 오르며 약 반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에 미국과 일본 통화당국의 추가 대응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엔화 매수세가 강해진 영향이다.
시장에서는 단기 투기세력뿐 아니라 중장기 투자자들까지 엔화 매도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엔저 흐름이 본격적으로 꺾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파른 엔고 전환이 현실화할 경우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에는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일본산 소재·부품의 수입 비용과 일본 여행 부담을 높이고 글로벌 자금 흐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53엔대로 떨어졌다. 전날 오후까지만 해도 155엔대에서 움직였지만 154엔선을 거쳐 하루 새 153엔대까지 내려왔다. 지난 2월 이후 가장 낮은 환율로, 엔화 가치로는 약 반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지난 7일에는 달러당 154.05엔까지 떨어지며 미·일 당국의 공동 시장 개입 당시 기록했던 수준까지 넘어섰다.
엔화를 끌어올린 가장 큰 동력은 일본의 금리다. 일본은행은 오는 17~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연다. 시장에서는 현재 연 1.0%인 정책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거의 반영하고 있다. 일본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1.4%로 상향 조정되고, 7월 실질임금이 전년 동월보다 2.4% 증가하는 등 추가 긴축을 뒷받침하는 지표도 잇따르고 있다.
미·일 당국이 엔화 약세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을 것이란 인식도 커졌다. 일본은 지난 7월 말부터 8월까지 엔화 가치를 떠받치기 위해 역대 최대인 15조4000억엔 규모의 시장 개입에 나섰다. 미국도 일본의 엔저 시정 움직임에 힘을 실으면서 시장에서는 엔화가 다시 급격히 약해질 경우 추가 대응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

그동안 엔저에 베팅했던 자금이 방향을 돌리기 시작한 점도 상승 속도를 높였다.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린 뒤 미국 주식이나 채권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는 미·일 금리 차가 클수록 유리하다. 반대로 일본 금리가 오르고 엔화 가치까지 상승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엔화를 빌리는 매력이 줄고 상환 부담은 커진다. 해외 자산을 팔아 엔화를 되사는 움직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 자금 환류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엔화 약세 전망이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엔고는 국내 수출기업에는 대체로 긍정적인 재료다. 자동차·기계·철강 등 한국과 일본 업체가 해외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업종은 엔저가 완화될수록 가격 경쟁에서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엔화가 약할 때는 일본 기업들이 달러 기준 판매가격을 낮추기 쉬워 한국 기업에 불리하지만, 엔화가 강해지면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누려온 환율상의 이점이 줄어든다. 현대차·기아처럼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일본에서 소재와 부품, 장비를 들여오는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엔화가 원화에 대해서도 강해지면 같은 제품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원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정밀기계 등 일본산 소재·장비 비중이 높은 업종은 엔·달러보다 원·엔 환율의 움직임이 실제 원가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일본 여행 비용이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오르면 숙박·외식·쇼핑 등에 필요한 원화 금액도 늘어난다. 수년간 이어진 ‘슈퍼 엔저’를 이용해 일본을 찾았던 국내 여행객들에게는 부담이다. 반대로 일본인에게 한국 여행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효과가 나타날 경우 국내 관광·유통업계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증시에는 보다 복잡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엔고 자체는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에 유리하지만 엔 캐리 자금이 빠르게 청산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투자자들이 빌린 엔화를 갚기 위해 미국이나 한국 등 해외 주식과 채권을 매도하면 글로벌 위험자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어서다.
다만 현재의 엔화 강세가 곧바로 대규모 엔 캐리 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8일 엔 캐리 투자자금의 청산 유인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시장을 흔들 정도의 급격한 청산이 나타나려면 별도의 위험회피 요인이 동반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연말 달러·엔 환율은 150엔 부근까지 점진적으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의 시선은 일본은행의 9월 회의와 미국의 물가 지표로 향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예상대로 금리를 올린 데 이어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둘 경우 달러당 150엔선이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다. 반대로 미국 물가가 다시 뛰며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 달러 강세가 살아나 엔화 상승 속도가 둔화할 가능성도 있다.
은행권 한 외환딜러는 “지금은 엔화가 오른다는 사실 자체보다 상승 속도를 봐야 한다. 150엔선을 향해 단기간에 추가로 움직이면 엔 캐리 자금과 아시아 통화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국내 시장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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