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정당 선거 압승에 요동치는 獨 정치판…전후 역사상 극우 첫 집권하나

유럽을 휩쓴 반이민 정서가 ‘나치의 역사’를 철저히 금기시해온 독일마저 흔들었다. 독일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40%가 넘는 득표율로 압승하며 독일을 넘어 유럽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처음으로 극우 정당의 집권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실시된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 의회 선거에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43.8%를 득표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옛 동독 지역에 속한 작센안할트는 인구 약 230만명의 작은 주이지만, 동부 독일 민심의 풍향계로 꼽히는 지역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여당 기독민주당(CDU)은 이번 선거에서 17.2%를 득표하며 2위에 그쳤다. 이 밖에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이 각각 9.3%와 8.9%를, 좌파당은 8.6%를 득표했다. 2021년 열린 직전 주의회 선거에서는 AfD가 20.8%를, CDU는 37.1%를 득표했었다. 5년 만에 전세가 크게 역전된 것이다.

AfD의 압승 배경으로는 유럽 전반에 퍼지고 있는 반이민 정서가 우선 꼽힌다. 강경한 이민·난민 정책을 핵심 의제로 내세운 AfD는 ▶신속한 불법 이민자 추방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 신설 ▶난민 자녀 분리 교육 ▶이민 노동자 유입 억제 ▶우크라이나 난민 보호 축소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이런 부분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맵이 ARD 의뢰로 6일 실시한 조사에서 작센안할트 유권자의 38%가 “난민·망명 정책에서 가장 문제 해결 능력이 높은 정당은 AfD”라고 응답했다.
서독 중심의 정치·사회 구조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소외감도 AfD의 지지 기반이 됐다. 통일 30여 년이 지나도록 해소되지 않은 동서독 간 경제 격차가 분노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가계자산 조사에 따르면 옛 동독 지역 가구의 순자산 중간값은 3만5900유로(약 5600만원)로, 서독 지역의 14만3200유로(약 2억2500만원)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작센안할트의 실업률 역시 현재 8%로 독일 평균(6.3%)을 웃돈다. 마르쿠스 뵈이크 영국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현대독일사 조교수는 가디언에 “AfD가 동독 주민들이 2등 시민이라고 느끼는 소외감을 효과적으로 흡수했다”고 짚었다.
이 밖에 젊고 친근한 이미지의 울리히 지그문트(35) 주총리 후보 겸 주 당대표가 소셜미디어(SNS) 중심으로 펼친 선거전도 효과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0년생인 지그문트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각각 약 64만명, 37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다. “거친 언사로 대표되는 기존 AfD 강경파와 차별화되는 인물”(로이터), “다니는 곳마다 팝스타처럼 환영받았다”(가디언)는 보도가 나왔다. 반대 진영에선 국가주의와 반이민 주장을 친근한 이미지로 포장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달 지그문트를 표지 모델로 내세우며 ‘독일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는 제목을 붙였다.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곳곳에서 세를 불려왔다. 이탈리아에서는 2022년부터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집권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연합(RN)은 2024년 총선에서 의석을 88석에서 143석으로 대폭 늘렸고, 같은 해 오스트리아 총선에서는 자유당(FPO)이 28.8%를 득표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제1당에 올랐다. 영국에서는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개혁당이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400석 넘는 지방의회 의석을 추가하며 약진했다.
그러나 나치를 경험한 독일에선 그 울림이 다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주의의 부활을 극도로 경계했다. 특히 2013년 AfD 창당 이후에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구성 과정에서 극우 정당과 협력하지 않는 이른바 ‘방화벽(Brandmauer·브란트마우어)’을 유지해 올 만큼 극우의 집권을 막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방화벽은 헌법적 정신에 가깝다’는 해석마저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독일에선 전후 극우 정당이 연방정부는 물론 주정부에서도 집권한 전례가 없다.

이런 독일에서 AfD가 40% 넘는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전후 질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란 분석이 나온다. AfD가 실제 집권에 성공해 방화벽이 무너지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벤야민 회네 독일 켐니츠공대 정치학자는 도이칠란트푼크에 “AfD가 집권하면 헌정질서를 재편하려 들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칙이 체계적으로 침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그문트를 비롯해 AfD 지도부를 둘러싼 극우·신나치 연계 논란은 이런 우려를 더욱 키웠다. 가디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그문트는 2023년 11월 독일 극우 인사들의 모임인 ‘포츠담 비밀 회동’에 참석해 이민자를 독일 밖으로 내보내는 ‘재이주’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회동엔 신나치 활동가도 참석했다. 또 작센안할트주 AfD 주의회 교섭단체에는 신나치 청년단체인 HDJ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AfD의 부상이 독일 사회에서 신나치 세력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AfD는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집권하려면 다른 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한데, 이번 선거에서 5.3%를 득표한 극좌 포퓰리즘 정당 사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이 AfD와의 연정 가능성을 시사해 이 경우 방화벽이 무너질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토마스 슐체 BSW 주총리 공동후보는 6일 독일 DPA 통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정당과 대화한다. 여기에는 AfD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AfD와 BSW는 각각 극우와 극좌로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다. 하지만 대러시아 제재에 반대하고,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 도입을 주장하는 등 일부 현안에서는 입장이 같다. 특히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두 당 모두 난민·이민자 유입을 강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곧게 뻗은 쇠막대를 말발굽 모양으로 구부리면 양 끝이 가까워지듯, 정치적으로 정반대에 있는 두 축이 오히려 비슷한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이른바 ‘말발굽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메르츠 총리는 딜레마에 빠졌다. AfD가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면 CDU는 작센안할트 주정부에서 밀려나 야당으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막으려면 CDU는 사민당·녹색당 등 이념적으로 거리가 먼 좌파 정당들과 손을 잡고 반(反)AfD 연정을 꾸려야 한다. 반대로 AfD와의 협력해 연정을 구성하면 그간 고수해온 방화벽 원칙이 무너지면서 당 내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
토르스텐 프라이 총리실장은 선거 직후인 7일 독일 공영방송 ZDF에 “우리는 극우주의자들과 대화하지 않는다”며 AfD와의 연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 주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현 CDU 소속 스벤 슐체 주총리가 직을 유지할 수 있다”며 CDU 주도의 정부 구성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편 AfD에 미국 우파 진영도 힘을 실어온 일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JD 밴스 미 부통령은 지난해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독일 정치권의 방화벽 관행을 겨냥해 “방화벽이 설 자리는 없다”고 비판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AfD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고 하는 등 수차례 AfD를 공개 지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번 선거 직후 별다른 언급 없이 AfD의 압승을 전한 독일 매체의 게시물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공유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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