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한 장으로 세계를 흔드는 아프리카 국가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6. 9. 7. 17:4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요즘 '세계 경찰서'는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결의안을 발의한 아프리카 서북부 토고공화국의 로베르 뒤세 외무장관은 '지도는 인류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세계인들이 아프리카를 올바로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세계지도가 필요하다는 발언이다.

공정한 세계지도가 보편화되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투자 유치도 한결 유리해질 수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유엔, 아프리카 실제 크기 반영한 세계지도 결의안 채택... 미국 홀로 반대

[김종성 기자]

 4일(현지시간) 유엔 총회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도한 결의안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면적을 확대하고 북미와 유럽의 면적을 축소하는 지도를 채택하기로 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을 목표로 한 이 결의안은 164개국의 지지를 받았으나, 미국은 반대표를 던졌고 다른 6개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은 ‘이퀄 어스(Equal Earth) 지도 투영법’으로 알려진 이 새로운 지도가 “세계의 지도적 표현 정확도를 높이는 데 적합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 이퀄 어스
요즘 '세계 경찰서'는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인 '공동 서장'들은 세계 치안을 지키기보다 각자의 싸움에 매몰돼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지리한 소모전에 묶여 있고,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을 쳤다가 호르무즈해협에 갇혀 있다. 중국은 대만 포위 훈련을 되풀이하고 대만 동부 해역에 대한 활동을 늘리는 방법으로 동태평양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를 지렛대로 러시아를 견제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

1945년에 출현한 현존 세계 질서의 핵심 특징은 미국 중심주의, 달러 패권, 자유무역 등과 더불어 국제연합이다. 이 중에서 자유무역 다음으로 현저하게 동요하는 것이 유엔의 위상이다. 유엔의 위상 추락은 현존 질서의 구속력이 약해지고 세계가 다음 질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런데 개점휴업 상태인 유엔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4일 유엔총회가 아프리카의 실제 크기를 정확히 반영하는 세계지도의 사용을 지지하는 결의를 채택한 일이 그것이다.

미국이 유일하게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몰도바·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세르비아·조지아가 기권하고 164개국이 찬성한 이 결의안은 16세기 이후 널리 사용된 지금의 '메르카토르 도법' 대신 대륙 면적을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는 '평등한 지구(이퀄 어스, Equal Earth) 도법'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세계지도

<하멜 표류기>의 저자인 헨드릭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한 때가 양력으로 1653년 8월 16일이다. 그는 이전 세기인 16세기 후반 이후로 네덜란드의 해상 활동이 왕성한 시대에 성장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동인도회사의 자카르타 본사에서 나가사키 지점으로 가다가 8월 폭풍우를 만나 조선과 인연을 맺게 됐다.

하멜 같은 네덜란드인들의 해상 활동에 필요한 토대를 놓은 인물 중 하나가 그 나라 지질학자인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1512~1594)다. 그가 1569년에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세계지도를 만든 것은 조선에서 선조 임금이 즉위하고 개혁 세력인 사림파가 집권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뒤다.

메르카토르의 지도는 오늘날까지 사용될 정도로 불후의 역작이 됐지만, 그의 작품은 문제점이 적지 않다. 이 지도에서는 적도 부근이 실제보다 작게 보이고 고위도 지방은 크게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침을 흘리는 그린란드의 실제 면적은 약 216만 6천 평방킬로미터이지만, 이 지도에서는 그곳이 약 2534만 평방킬로미터다. 12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 것이다. '평등한 지구 도법'이 보편화되면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바라보며 흘릴 군침의 양도 12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

아프리카는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대륙이다. 적도는 이 대륙의 중간보다 약간 남쪽인 가봉-콩고-콩고민주공화국-우간다-케냐-소말리아를 관통한다. 그래서 이 대륙은 메르카토르 도법의 최대 피해자다. 그린란드보다 14배나 넓지만 이 지도에서는 그린란드와 비슷하다.

결의안을 발의한 아프리카 서북부 토고공화국의 로베르 뒤세 외무장관은 '지도는 인류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세계인들이 아프리카를 올바로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세계지도가 필요하다는 발언이다.

세계지도의 공정성은 경제적 이익과도 관련이 있다. 낯선 나라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는 현지의 지리적 크기도 감안하게 된다. 외국에 큰 돈을 투자하는 모험을 벌일 때는 현지의 실제 면적도 세밀히 조사하게 되지만, 그런 조사를 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메르카토르 지도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공정한 세계지도가 보편화되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투자 유치도 한결 유리해질 수 있다.

서세동점 과정에서 활용

잘못된 지도가 오래 사용된 데는 이 지도를 활용해 세계를 주도해 온 서유럽 국가들의 태도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자신들의 대륙이 크게 보이도록 만든 지도를 굳이 고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경제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1929~2005)는 서양 중심 세계관의 문제점을 논파하는 <리오리엔트>에서 '유럽대륙'이라는 용어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유럽이라는 독자적인 대륙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사실, 유럽이라는 것은 거대한 유라시아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의 한 반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유럽대륙보다는 유럽반도가 더 정확하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유라시아 전체를 놓고 보면 유럽은 반도에 불과하므로 그의 주장이 틀리다고 할 수 없다. 그는 메르카토르 지도에 대한 서양 학계 내부의 비판을 이렇게 소개한다.

"1968년 갑자기 세상을 타계하기 전, 먀살 호지슨은 작디작은 영국을 인도만큼 크게 그렸다면서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제작된 지도를 비판했다."

"블로트는 '역사의 전진'을 지도로 표현하는 작업이 얼마나 유럽 중심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었다."

"마틴 루이스와 카렌 위겐은 '대륙의 신화'를 폭로한다. 일례로, 유럽인은 지리학적 사실성에 반하여 자신들의 반도를 한사코 대륙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그에 비해 인구가 훨씬 많은 인도는 겨우 '아대륙'이고, 중국은 그저 '나라'라고 한다."

서세동점으로 표현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동양 진출은 인도나 중국 같은 동양 대국들을 빼앗거나 쓰러트리거나 폄하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메르카토르 지도가 유용하게 활용됐다는 점이 위의 지적들에서 나타난다.

서구 중심 현존 질서 무너트리기
 3일(현지시간) 세네갈 다카르의 ‘아프리카 기념 광장’에서 사람들이 아프리카 각국 국기가 그려진 아프리카 대륙 조각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아프리카인들이 메르카토르 지도에 반기를 드는 데는 과거사 청산의 동기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유럽에 대한 식민지배 배상청구를 위한 인식상의 토대를 놓고자 하는 의도가 짙다. 지난 2월 14일과 15일 열린 제39차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 결정문은 세계지도 문제가 "인지적 정의와 배상의 행위"와 관련이 있으며 "세계적 상상 속에서 아프리카의 진정한 위치를 회복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와 달리 아프리카는 대륙 차원에서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질적 배상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지도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164개국이 찬성하는 사안을 미국이 홀로 반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고 배상청구가 확산되면 결국에는 미국의 세계질서 관리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4일 유엔총회장에서 미국 대표 야리나 페렌체비치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요구가 "훨씬 더 크고 급진적인 이념적 프로젝트"와 관련돼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식민지배 배상을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세계질서를 흔드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질서 구상과도 충돌한다. 트럼프가 희망하는 세계질서는 그것과 명확히 배치된다. 언뜻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는 지도문제에 대해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것이 미국 패권의 약화로까지 귀결될 가능성 때문이다.

한편, 러시아에 인접한 우크라이나 등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만든 세계지도에서 크림반도가 러시아 땅으로 표기된 것이 원인이다. 이 나라들은 메르카토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반감 때문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고 기권표를 선택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기울어가는 유엔 무대에 들어가 현존 세계지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유엔 무대에서 호소하는 모습은 얼핏 보면 유엔과 현존 질서의 권위를 높여주는 것처럼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기울어가는 유엔에 들어가 서구 중심의 현존 질서를 무너트리기 위한 세계지도 이슈를 꺼내 들었다. 기울어가는 집에 들어가 그 집을 더 기울게 만드는 일을 벌인 셈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