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 기립박수에 설경구 눈물 터졌다…베니스 홀린 ‘가능한 사랑’

2026. 9. 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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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진출
이창동 ‘가능한 사랑’ 7분 기립박수
설경구 눈물, 전도연 “수상 의심 안해”
美매체 “계급적 질투에의 사색…최고작”
)이창동(사진) 감독이 6일(현지 시간) 일곱 번째 장편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7분 넘는 기립박수와 함께 외신의 극찬을 받았다. 주연 배우 설경구와 두번째로 함께한 영화 '오아시스'(2002) 이후 24년만에 베니스 경쟁에 복귀했다. EPA=연합

엔딩 크레디트가 채 올라가기도 전부터 박수가 쏟아졌다. 6일(현지시간) 오후 4시 30분, 83회 베니스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베니스의 리도섬에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세계 최초로 상영됐다.

그믐달 같은 절망을 거쳐 보름달 같은 희망으로 인간을 비추는 164분(상영시간) 드라마의 여운은 상당했다. 7분 넘게 이어진 기립박수와 뜨거운 환호 속에 주연 배우 설경구는 솟구치는 눈물을 연신 훔쳤다. 곁에 있던 전도연, 조인성, 조여정 역시 눈물과 함박웃음으로 서로를 뜨겁게 포옹했다.

6일(현지 시간) 83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가능한 사랑'을 전세계 최초로 공개한 이창동(왼쪽부터) 감독과 주연 배우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 로이터=연합


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오아시스’(2002)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을 휩쓴 지 무려 24년 만의 귀환이다. 이창동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이자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세상에 나온 ‘가능한 사랑’은, 정의와 신의가 무너진 세상에서도 다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 영화다.
이창동의 세계에서 사랑이란 안전한 온실 안에서 피어나는 온화한 감정이 아니다. 모두 불타버리고 남은 참담하고 텅 빈 대지 위, 그 절망의 끝에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가능한(Possible)’ 기적이다. 할리우드 리포터의 평론가 데이비드 루니는 “트라우마, 존엄성의 상실, 갈망, 그리고 계급적 질투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담아낸 이 영화는 최고 배우들의 앙상블로 빚어낸 슬프고도 아름다운 실내악 같다”며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10살 난 아들(가운데)를 둔 해고 노동자(설경구, 왼쪽)와 그의 아내(전도연, 오른쪽), 다큐멘터리 감독(조여정)과 그녀의 남편(조인성),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사진 넷플릭스


이창동 감독이 ‘가능한 사랑’을 잉태한 시간은 우리 모두가 지나온 팬데믹 시절과 맞닿아 있다. 그는 “극장 문이 닫히고 영화가 멈췄을 때, ‘이제 영화는 뭘 할 수 있지?’ ‘내가 하는 일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극 중 해고 노동자인 호석(설경구)은 타워크레인에서 옥쇄파업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에게 일이란 아들의 이름을 ‘철’로 지을 만큼 삶의 중심이자 자부심이었다. 이 감독은 “노동이 사라진다는 것은 내가 늘 하던 일을 잃는 것이고, 결국 자아의 상실을 의미한다”며 “이 영화를 통해 ‘일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가족과 함께 동반 여름 휴가를 떠난 해고노동자 아내 미옥(왼쪽, 전도연)과 다큐멘터리 감독의 남편 상우(조인성). 사진 넷플릭스

이러한 물음은 영화 속 호석과 미옥(전도연) 부부를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를 통해서도 발현된다. 이 감독은 예지를 “영화 만드는 사람인 나의 정체성, 내 마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소설가 시절부터 짊어져 온 ‘타인의 삶을 다룰 때 나는 과연 그들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라는 창작자의 윤리적 고민이 예지라는 인물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영화 후반부, 미옥과 상우가 바다에서 모든 사회적 껍데기를 벗어던진 장면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 감독은 “미옥의 자존감, 어떤 절대적 권력 앞에서도 비굴해지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는 자유 의지로부터 희망을 찾고 싶었다”고 역설했다.

이창동 감독과 '박하사탕' '오아시스'에 이어 세 번째 작업한 배우 설경구는 이번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초심을 되뇌며 임했다"고 했다.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8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가능한 사랑' 공식 상영에 참석한 그가 '박하사탕' 속 "나 돌아갈래" 명장면을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했다. 사진 넷플릭스

굳은 얼굴 속에 시한폭탄 같은 분노와 깊은 우울을 품은 해고 노동자 호석 역의 설경구는, 최근작 ‘들쥐’ ‘굿뉴스’(2025) 등에서 보여준 꽉 찬 에너지를 담담하게 비워낸 얼굴로 돌아왔다.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 이후 오랜만에 조우한 그는 “나도 모르게 ‘초심’이라는 말을 되뇌며 임했다”며 “배우에게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더 집중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현장을 일컬어 우리는 ‘이창동 매직(Magic)’이라 부른다"고 소회를 전했다.
호석의 아내 미옥 역은 기획 단계부터 전도연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한국인 최초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밀양’(2007) 이후 다시 이창동의 세계로 들어온 전도연은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그저 존재하기를 바랐던” 이 감독의 뜻에 따라 현장에서 “미옥의 감정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밀양’ 때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성장’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또 현장에서 처음으로 빛나는 동료애를 느꼈던 작품”이라고 ‘가능한 사랑’ 팀에 애정을 드러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위 사진)과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호프'에 이어 같은 해 또 다른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베니스영화제까지 초청된 조인성(아래 사진)은 6일(현지 시간) 베니스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서 팬들의 사인 및 기념사진 요청이 잇따랐다. 로이터=연합
AFP=연합

여기에 ‘친절한 얼굴을 한 자본’의 속성을 인격화 한 예지의 남편 상우 역의 조인성은 “이창동 감독님 앞에서는 배우로서의 경력이나 전작의 경험과 상관없이 모두가 공평해짐을 느꼈다”고 말했고, 조여정은 “네 명의 배우가 형제처럼, 가족처럼 서로를 밀고 끌어준 현장”이라며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12일 폐막을 앞두고 마틴 맥도나, 대니 보일 등 세계적 거장들의 신작 21편과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합하는 가운데, 전도연은 작품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함께 온 조여정씨가 엄청난 길몽을 꿨다길래, 감독님이 그 꿈을 사면 감독상에 그칠까 봐 작품상을 노리고 제작사 대표님께 팔게 했다”는 일화를 전하며 “만약 상을 받는다면 감독님이 다음 영화를 곧바로 찍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베니스에서 출항해 토론토·뉴욕·산세바스티안·밴쿠버·취리히·런던·부산국제영화제 등 전세계 영화제 초청이 잇따르는 ‘가능한 사랑’은 오는23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이어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스트리밍된다. ‘가능한 사랑’은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베니스=백은하 배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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