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노무현'을 '역사 속의 노무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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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평전>(위즈덤하우스)이 세상에 나왔다.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첫 공식 평전이다.
그러나 노무현 일대기의 정본이 평전 형식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안팎의 기대가 컸다.
이 평전을 읽는 독자가 노무현에게서 얻는 것도 결국 같은 종류의 위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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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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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29일 제17회 봉하음악회(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린 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평전>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 앞에 헌정하며 인사를 드렸다. |
| ⓒ 노무현재단 |
<노무현 평전>(위즈덤하우스)이 세상에 나왔다. 초판 공식 발간 시점은 2026년 9월 1일로 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에 맞춘 날짜다.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첫 공식 평전이다. 재단은 서거 이듬해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와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을 펴낸 적이 있지만, 평전은 처음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저자는 프롤로그 첫머리에서 그 이야기부터 꺼낸다. '평전'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정확히 10년 전이고, 당시에는 길어야 3년이면 모든 작업이 끝날 줄 알았다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던 시간과 자료가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그 자신감이 무모하고 허튼 것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지 다시 5년이 걸렸다고.
그 5년 동안 글쓰기는 대통령 재임 중 관찰한 기록 언저리에서 겉돌았다. 어린 시절에 관한 서술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앙상한 뼈대만 세워놓은 정도였다. 무능하다는 자책이 되풀이됐고 무기력과 우울이 게으름과 회피로 이어졌다. 방황의 끝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한 사람에 대해 온전히 쓴다는 일의 지난함과 버거움이었다.
'벽'을 넘은 방법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1에서 100까지 모든 것을 재창조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노무현 본인의 구술과 저작을 포함해 그를 기억하고 기록했던 많은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펜을 들어 꼬박 10년이 걸렸다. 저자 스스로 허송세월이라 불러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날이 적지 않았다고 고백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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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노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발언을 기록한 포켓수첩. 윤 전 대변인은 포켓수첩과 업무 노트 등이 600권가량 된다고 밝혔다. |
| ⓒ 윤태영 |
이 수첩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노무현은 재임 중 저자에게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자리에 배석해도 좋다고 지시했다. 독대를 막고 업무 효율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권력자가 자기 옆에 기록자를 붙여두라고 먼저 말한 것이다. 덕분에 저자는 노무현이 보고 듣고 말한 순간들을 거의 빠짐없이 받아 적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윤태영이었을까. 2019년 5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질문을 던졌을 때, 정작 본인이 그것을 미스터리라고 했다. 숫기도 없는 자신에게 왜 대변인을 맡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만 짐작은 있었다. 노무현은 글 쓰는 사람을 높게 평가했고, 다른 사람보다 30점에서 50점쯤 가산점을 준 셈이라고 했다. 화려하게 말하는 대변인보다 자신이 한 말을 정확하게 정리해줄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여겼으리라는 얘기였다.
그 인사가 20여 년이 흘러 928쪽의 근거가 됐다. 노무현은 저자에게 이런 당부도 남겼다. "자네가 본 대로 들은 대로만 쓰게." 과장할 것도 없고 일부러 빼놓을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서술 원칙은 사실상 이 한 문장에서 나온다.
'평전인가, 일대기인가'... 저자의 고백
평전(評傳)은 한 인물의 생애에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다. 사실의 기록에 저자의 해석과 평가가 얹힌다. 반면 일대기(一代記)는 한 사람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훑는 서술 방식에 가깝다. 이 구분은 서평자의 잣대가 아니라,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스스로 꺼내 든 문제다.
그는 애초에 평전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이 무리수였는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지근거리에 있던 사람이 피사체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며 서술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일대기로 사실들을 나열하는 정도가 정답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일대기의 정본이 평전 형식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안팎의 기대가 컸다. 그는 현실적으로 타협했다. 그래서 이 책은 평전이라는 제목과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곳곳에 일대기적 서술이 지면을 차지한다. 저자는 이를 평전과 일대기의 혼합이라 부르며, 피사체와 글쓴이의 특수한 거리에서 비롯된 한계임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고 썼다.
저자가 자기 책의 장르를 의심하는 장면은 오히려 이 책에 대한 신뢰의 근거로 읽힌다. 차성수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간사도 같은 자리를 짚는다. 평전을 읽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를 그는 두 가지로 든다. 하나는 위인전이나 영웅 서사처럼 줄거리만 따라가면 뭔가 이뤄진다는 기대를 채워주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평전 읽기가 실존적 도전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식의 확장이나 감정의 동일화에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 내 삶의 의미를 그의 꿈과 신념에 연결하고 되물어야 하는 시간이라는 얘기다. 400여 권의 책과 여러 편의 영화로 노무현이 되살아났지만 여전히 부분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진단도 여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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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을 기념해 나온 <노무현 평전>(위즈덤하우스)의 표지.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집필했다. 노무현재단의 첫 공식 평전이다. |
| ⓒ 위즈덤하우스 |
1963년 농협 입사를 목표로 부산상고에 들어갔지만 입사시험에서 떨어졌다. 1966년 고졸 학력으로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시험 최종 합격까지 9년이 더 걸렸다. 1988년 부산 동구에서 첫 도전에 당선됐으나 1년 뒤 의원 사퇴서를 던졌다. 10년 뒤 서울 종로 재보궐에서 당선되고는 6개월 만에 다시 사퇴했다. 2000년에는 지역구도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 출마해 낙선했다.
2008년 5월 어느 봄날, 노무현은 모교인 대창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 앞에 섰다. 연설의 첫마디가 이랬다. "내가 7번 선거를 해서 4번을 졌거든요. 그런데 대통령도 했어요." 어린이도 알아들을 만한 문장 하나에 인생 역정이 통째로 들어 있다.
저자는 이 실패의 기록을 미화하지도, 비장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부산 출마를 둘러싼 통념에 토를 단다.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 나갔다는 칭찬도, 무모했다는 평가도 모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부산 어느 지역에서도 노무현은 상대 후보와 엇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했고, 위험하지만 승산이 있는 도전이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200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펴낸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그는 "위인의 약점은 범인의 위안이다"라고 썼다. 설법 도중 허리가 아파 눕고 싶다고 한 석가모니, 결혼식을 앞두고 노심초사하던 청년 링컨에게서 그는 보통 사람의 가능성을 봤다. 이 평전을 읽는 독자가 노무현에게서 얻는 것도 결국 같은 종류의 위안일 것이다.
공식 기록에서 소거된 것들
평전을 일대기와 갈라놓는 지점은 6장부터 선명해진다. 재임 5년을 다룬 이 장은 연대기가 아니라 의제와 사건 중심으로 짜였다. 북핵, 파병, 대연정, 한미FTA, 행정수도. 저자는 연대기나 비망록 방식도 시도했지만 주제가 불분명하고 산만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작은 일화와 곁가지를 과감히 덜어냈다고 밝혔다.
대신 남은 것은 공식 기록에서 지워진 표정과 혼잣말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논리로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날, 노무현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에게 소감을 물었다. 재판관들 머리가 참 좋다는 답이 돌아오자, 자기도 처음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이 결정을 "헌재에 의한 쿠데타"로 규정했다. 다음 날 아침 조찬에서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온다. 국가보안법을 잘못 건드려 수호 신령들을 노하게 한 것이 실수였다는 것이다.
북핵 국면의 한 장면은 더 아프다. 예측이 깨졌음을 인정한 그는 이 상황을 벌교 기찻길에 비유하며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설명하던 중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다. 배신감이 호흡을 거칠게 했고, 그 감정은 곧 자책으로 바뀌어 좌중에 흩어졌다. "LA 발언, 결국 바보가 되었습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다룬 대목에서는 결이 또 달라진다. 행사를 앞두고 정치인들은 으레 사람이 적게 올까 걱정하는데 노무현은 정반대였다고 저자는 적는다. 사람이 많이 올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차비를 보태준 것도 아닌 사람들이 땡볕과 칼바람을 뚫고 찾아오는데 정작 해준 것이 없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열정은 뜨거웠고 매너는 쿨했다는 문장으로 저자는 그 시절 지지자들을 요약한다.
2009년 봄 봉하마을 대목에 이르면 문장이 짧아진다. 3월 말 장군차 나무를 옮겨 심는 날 노무현은 오랜만에 밖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는 서둘러 사저로 돌아갔다. 봄을 느낄 자유가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어쩌면 스스로 그 자유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쓴다.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혼잣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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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31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노무현 평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책은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집필했다. |
| ⓒ 장철영 |
저자는 답을 내놓는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때는 파장이 워낙 커서, 그리고 실패 이후에는 상처와 타격이 너무 커서 그 이유를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이제 와 되짚어보면 대연정 제안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그렇게 혼자 몰두하고 집착하며 구상했던 그 시간 자체였던 것 같다고 적는다.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의 가장 아픈 실패에, 그것도 20년 넘게 곁을 지킨 참모가 물음표를 다는 일. 헌사와 평전을 가르는 선이 여기 있다.
8장과 9장은 연대기에서 아예 빠져나온다. 리더십과 캐릭터를 다룬 8장에는 실용과 원칙 사이, 사람과 일하는 법, 시스템 마니아, 금기를 넘는 호기심 같은 소제목이 늘어선다. 반기문을 유엔으로 보낸 과정이나 인사청문회 확대를 밀어붙인 대목, 측근과의 거리를 재는 장면들이 여기 모여 있다. 시간순으로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성격이라는 축으로 다시 배열한 셈이다.
<평전>의 저자가 노무현의 말과 글을 담당했던 참모라는 사실이 가장 잘 살아나는 곳은 마지막 9장이다. 그는 노무현이 재임 시절 가장 많은 말을 남긴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처럼 권력기관에 눈치를 주며 법 위의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노무현이 가진 유일한 권력은 인사권뿐이었고 나머지 모든 사안을 풀어가는 수단은 오로지 말과 글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설화(舌禍)'마저 다르게 읽는다. 말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는 방증이며, 말하지 않고 힘으로 통치하는 대통령보다는 백번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논쟁적인 해석이다. 참여정부의 설화가 불러온 정치적 대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판단은 근거를 갖고 제출된 평가이고, 독자는 그것과 다툴 수 있다. 평전이 일대기와 다른 지점이 또 여기다.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우선 물리적 부담이다. 928쪽에 4만 9500원. 노무현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 권하기에는 문턱이 높다. 재임 5년을 다룬 6장 하나가 330쪽을 넘어 책의 3분의 1을 넘어선다. 의제별 서술이 촘촘한 것은 미덕이지만, 그 시대를 통과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밀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발간사가 바라는 것처럼 "아직 노무현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첫 관문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저자가 스스로 밝힌 그 거리다. 평전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해석의 경합인데, 이 책의 해석은 대체로 하나의 시선에서 나온다. 비판적 평가가 필요한 지점에서 서술의 온도가 낮아지는 대목도 있다. 이건 결함이라기보다 이 책이 처음부터 안고 출발한 조건에 가깝다. 저자가 그 한계를 감추지 않았다는 점, 재단 평전평가위원회가 초고를 검토했고 891쪽부터 이어지는 참고 자료와 주(註)로 근거를 밝혀두었다는 점은 함께 기록해둘 만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놓인 자리는 분명하다. 노무현만큼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정치인도 드물다. 누군가에게는 부림사건의 변호인이고, 누군가에게는 '5공비리 청문회 스타'인 초선 의원이며, 누군가에게는 바보 노무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결단으로 희망과 실망을 함께 안긴 대통령이다. 그 강렬한 장면들이 어떻게 하나의 생애로 이어졌는지를 처음으로 꿰어보려 한 시도가 이 책이다. 기억 속의 노무현을 역사 속의 노무현으로 옮기는 작업의 첫 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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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29일 제17회 봉하음악회(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린 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평전>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 앞에 헌정하며 인사를 드렸다. |
| ⓒ 노무현재단 |
그는 프롤로그를 이렇게 맺는다. "게으름과 무기력함의 소산이었던 이 책을 이제 두려움으로 세상 밖에 내보낸다"고. 본 대로 들은 대로 쓰라던 노무현의 숙제를 부족하지만 이것으로 마무리한다고. 그리고 "굴곡진 역정 속에서도 지향은 언제나 곧았던 어느 정치인의 영혼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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