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교인 두 바퀴로 가는 게 목회”… 세상 향해 활짝 문 연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제도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여성에게도 성직이 열려 있는 대한성공회(의장주교 김장환 사제). 굳이 좁은 문을 지나 독신 수도자의 삶을 택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곳에 평생의 헌신을 서원한 수녀들이 있다.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구미교회를 책임진다면, 뒤늦게 합류한 율리아나 수녀는 주말이면 충남 천안교회로 올라가 신자들을 돌보는 협동 수녀로 일한다.
같은 교회 출신인 율리아나 수녀는 "그때도 여성 성직이 열려 있었다면 사제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젬마 수녀는 "사제는 지나가는 사람이고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이라며 "성직자의 목회와 평신도의 목회, 이 두 바퀴로 가는 게 목회"라고 말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제도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여성에게도 성직이 열려 있는 대한성공회(의장주교 김장환 사제). 굳이 좁은 문을 지나 독신 수도자의 삶을 택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곳에 평생의 헌신을 서원한 수녀들이 있다. 그런데 세상과 한발 떨어져 걷던 수녀가 8년 전 다시 세상 한복판의 지역 교회를 책임지는 사제가 됐다. 이 낯선 궤적의 주인공은 대한성공회 구미교회 관할사제(담임목사 격) 유용숙 프란시스(62) 수녀사제다. 성공회에 여성 사제 서품의 길이 열린 지 25년, 수도자가 교회를 총괄하는 관할사제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경북 구미 일선리의 한옥 수도원에서 전례 없는 길을 내고 있는 세 수녀를 만났다. 성공회는 전례와 성사 중심의 신앙을 이어받아 수도원 전통을 간직해 왔다. 오늘날에도 수녀와 수도원의 삶을 존중하는 흐름이 남아 있다.
한옥 대문을 열어준 수녀들은 직접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수도복도 마당 아래채 손님관 ‘클라라의 집’ 지하 작업장에서 재봉틀을 돌려 직접 지어 입은 것들이다.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관구 책임자 격인 ‘대리봉사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스무여 해를 이렇게 살아온 세 사람의 공동체엔 위계가 없다. 지시하고 복종하는 대신 묻고 합의한다.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누가 대장이라는 생각 없이, 각자 고유의 달란트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입을 열었다.
두 수녀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수평 이동이라 불렀다.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정해진 틀에 나를 맞추는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발휘해 봉사하는 수도 생활을 찾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갈 곳이 마땅치 않던 두 수녀에게 구미에서 5년간 선교해 온 김요나단(미국 서부뉴욕교구 서품) 신부가 아파트와 차를 내주며 공동체를 지켜냈다. 2001년 ‘성공회 프란시스수녀회’를 세운 두 사람은 2009년 세계성공회 프란시스수녀회(CSF)의 정식 회원이 돼 종신서약을 마쳤다. 2016년에는 성가수도회에서 25년을 산 율리아나(67) 수녀가 합류했다.
지금의 한옥 수도원은 그들의 기도 결실이다. 구미의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꿈꾸던 중 문화재 마을의 낡은 한옥 매물이 눈에 띄었다. 부족한 재정은 잼 판매와 바자회로 모금했고, 영국 프란시스수도회의 지원이 더해져 오늘의 수도원이 세워졌다.

물론 세 사람의 공동생활이 처음부터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젬마 수녀는 “성경 유형 분석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내 생각과 속도에 맞춰 상대방을 억지로 끌고 가려 했던 것이 갈등의 원인임을 알게 된 것이다. 서로의 한계와 고유성을 인정하자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원칙이 규정한 생활의 세 표지인 ‘겸손과 사랑과 기쁨’도 이 깨달음 위에서 단단해졌다.
사제도 이 공동체의 기도에서 나왔다. 2009년 종신서약 예식을 마친 날 영국에서 온 수도회 총봉사자가 지금 꼭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수도원 건물,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사제를 세우는 일이라고 답했다. 첫 소원인 수도원이 이 한옥이다.

두 번째 소원은 시련의 얼굴로 다가왔다. 지역아동센터를 10년간 꾸려 온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수술과 항암이 이어지던 어느 날 병간호에 지친 젬마 수녀가 기도실에서 넋두리를 쏟아냈다. “옳은 길로만 가려고 했는데 왜 이런 벌을 받느냐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두 번째를 생각해 봐라.’” 그는 병상으로 달려갔다. “수녀님, 지금 신학교 가야 돼.” 얍복강에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장면(창세기 32장)이 떠올랐다. “이건 주님이 치신 거야.”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치료 중에 신학교에 지원했다. 영국 수도회가 학비를 지원했는데 조건이 하나 붙었다.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면 그만큼 빼고 보낸다는 것. 자립 의지를 보겠다는 뜻이었다. 세 수녀는 성공회교회를 돌며 장학금을 모았고, 그는 성공회대 신학대학원(MDiv) 과정 3년을 마치고 서품대에 섰다.
같은 교회 출신인 율리아나 수녀는 “그때도 여성 성직이 열려 있었다면 사제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40년이 흘러 사제가 된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이제 교인들에게서 그 시절의 자신을 본다. 젬마 수녀는 “사제는 지나가는 사람이고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이라며 “성직자의 목회와 평신도의 목회, 이 두 바퀴로 가는 게 목회”라고 말했다. 구미교회에선 교구 허락을 받은 평신도 설교자가 분기마다 강단에 서고, 그 설교에 자극받은 교인 두 명이 올해 평신도 훈련 과정 디모테오학교에 지원했다.

청빈을 서원한 이들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는 바울의 고백(빌 4:12)처럼, 들어오는 것은 쌓아두지 않고 장학금과 물품으로 곧장 흘려보낸다. 남은 과제는 다음세대다. 수도자로 부름받았다는 확신을 품고 찾아오는 한국인 지원자가 끊긴 지 오래다. 세 수녀의 답은 문을 더 여는 것이다. 지난해 아래채를 지어 일상을 떠나 기도하며 쉬어 가는 피정객을 받기 시작했고 서약 없이 수도자들과 두 달에서 1년까지 함께 살아 보는 세계 성공회의 ‘얼롱사이더(alongsider)’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다.
세 수녀는 함께 웃으며 말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예요. 그다음 세대는 우리 몫이 아니죠. 그렇지만 최대한 길을 닦을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보자는 겁니다. 그것도 즐겁게요.”
구미=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