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매일 4시간 걸어와 진흙 퍼냅니다” 이웃 위해 팔 걷은 네팔 주민들

2026. 9.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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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난 뒤 매일 아침 우리 마을에서 4시간쯤 걸어와 복구 작업에 함께합니다."

네팔 누와코트 비두르의 수해 현장에서 만난 찬드라 바하두르(62)씨는 주황색 안전조끼에 흰 장갑을 낀 채 진흙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

누와코트의 다른 마을에서 왔다는 사미르 미자(24)씨는 "대홍수 소식을 듣고 여러 마을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며 "진흙을 걷어내고 건질 수 있는 살림살이를 옮겨 피해를 입은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두르 마을의 주민 바추 프리사드 굽타(42)씨는 "작은 가게를 차리기 위해 250만 네팔루피를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번 홍수로 집과 가게가 모두 휩쓸렸다"며 "빚만 떠안게 됐지만 그래도 살길을 찾으려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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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외부 손길 닿지 않는 곳 주민들 스스로 복구 나서
수해 입은 주민도 이웃 마을 찾아 진흙 퍼내며 일손 보태
4일 네팔 누와코트 비두르의 수해 현장에서 주황색 안전조끼를 입은 찬드라 바하두르(62)씨가 복구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뒤편으로 대홍수가 휩쓸고 간 진흙과 잔해 속에서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찬희 기자

“홍수가 난 뒤 매일 아침 우리 마을에서 4시간쯤 걸어와 복구 작업에 함께합니다.”

네팔 누와코트 비두르의 수해 현장에서 만난 찬드라 바하두르(62)씨는 주황색 안전조끼에 흰 장갑을 낀 채 진흙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인근 리쿠 바자르 디쿠레 마을에 사는 그는 홍수 직후부터 매일 이곳을 찾아 복구 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6일 대홍수가 난 이후 9일이 지났지만 누와코트의 수해 현장은 여전히 회색빛 토사로 가득찼다. 무너진 건물 안에는 토사와 자갈이 밀려들었고, 물에 젖은 옷가지와 가구, 깨진 생활용품이 진흙 속에 뒤엉켜 있었다.

찬드라씨처럼 피해가 더 큰 이웃 마을을 찾아온 인근 마을 주민은 수십명에 달했다. 주황색 조끼를 입은 주민들은 길게 한 줄로 늘어서 집에서 진흙을 퍼내고, 잔해 사이를 뒤져 물에 젖은 가재도구와 살림살이를 골라내 손에서 손으로 건네 집 밖으로 옮겼다. 누와코트의 다른 마을에서 왔다는 사미르 미자(24)씨는 “대홍수 소식을 듣고 여러 마을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며 “진흙을 걷어내고 건질 수 있는 살림살이를 옮겨 피해를 입은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홍수가 집과 도로, 생계 터전을 한꺼번에 쓸어간 네팔 산악지역에서는 이처럼 살아남은 주민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수해지역 인근 주민들은 피해가 큰 이웃 마을을 찾아 복구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지 자원봉사자와 구호단체들도 당국과 외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마을에 식량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누와코트 비두르 마을의 한 이재민 대피소에서 히말라얀 유스 트랜스포메이션(HYT)의 티모시 단갈과 네팔적십자사(NRCS)의 슈만 스레스타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찬희 기자

이날 현지 비정부기구(NGO) 히말라얀 유스 트랜스포메이션(HYT)은  육로가 끊긴 일부 비두르 마을에 쌀과 렌틸콩, 식용유, 생수 등을 가득 보냈다. 한집에서 더는 생활할 수 없게 된 이재민들은 임시 대피시설이나 정부 건물에 몸을 의탁하거나 야외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HYT의 티모시 단갈은 “한 가구가 최소 일주일가량 버틸 수 있는 분량을 기준으로 구호품을 꾸렸다. 장기간에 걸쳐 5000회 이상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주민들에게 트라우마의 전조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네팔 정부는 수해 현장의 구조·수색을 군과 경찰 중심으로 진행하며 민간단체와 외부인의 접근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국제 비정부기구(INGO) 등은 예산과 물자를 지원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현장 활동에는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대홍수로 도로·교량이 곳곳에서 끊겨 산악지역 구조와 구호품 수송에 헬리콥터가 핵심 수단이 됐지만 네팔 당국이 동원할 수 있는 헬기·장비마저 한정돼 있다. 앞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임차한 헬리콥터 역시 네팔 당국의 비행 허가를 받지 못해 수색이 무산되기도 했다.

지난 2일 누와코트 비두르 마을의 주민 바추 프리사드 굽타(42)씨가 대홍수로 무너진 가게 앞에 서있다.

당장의 끼니를 해결한 뒤에는 무너진 생계를 어떻게 되살릴지가 또 다른 문제다. 홍수로 집뿐 아니라 농경지와 가축, 작은 가게 등 삶을 이어갈 기반까지 한꺼번에 잃은 주민들이 적지 않다. 비두르 마을의 주민 바추 프리사드 굽타(42)씨는 “작은 가게를 차리기 위해 250만 네팔루피를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번 홍수로 집과 가게가 모두 휩쓸렸다”며 “빚만 떠안게 됐지만 그래도 살길을 찾으려 한다”고 전했다.

지난 3일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대학병원(TU)에서 만난 시타 라미차네(76)씨가 병상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다. 이찬희 기자

첫 홍수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추가 피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카트만두 시내 주요 병원에는 지난달 26일 대홍수 피해자뿐 아니라 같은 달 30일 발생한 2차 홍수로 다친 주민들도 뒤늦게 찾아오고 있다. 지난 3일 카트만두 트리부반대학병원(TU)에서 만난 시타 라미차네(76)씨도 2차 홍수의 피해자다. 그는 누와코트 벨코트가디에서 홍수 경보를 듣고 급히 고지대로 대피하다 넘어져 무릎이 골절됐다. 그의 딸 마이야 라미차네씨는 “누와코트 지역 병원에서 기초적인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아 뒤늦게 카트만두 병원으로 왔다”며 “추가 홍수가 우려돼 당분간 카트만두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카트만두의 한 사원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서도 상처 입은 주민들이 서로를 돌보며 버티고 있었다. 티무레에서 온 체링 라이(26)씨는 이번 홍수로 조부모와 어린 가족 등 여러 친척을 잃었지만 대피소에서는 자원봉사자로 나서 다른 이재민들의 식사와 생활을 챙기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숨진 가족 이야기를 꺼낸 라이씨는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나 역시 가족을 많이 잃었다”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한다. 우리 마을, 우리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씨처럼 자신도 수해를 겪고도 다른 피해자를 돕기 위해 나선 자원봉사자는 이곳에만 15명이 있다.

지난 3일 네팔 카트만트 한 대피소 인근에서 티무레 출신 체링 라이(26)씨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찬희 기자

대홍수로 실종된 한국인들의 가족을 향해서는 현지 한인사회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카트만두에서 만난 윤종수 선교사와 방영숙 사모는 “남동발전에서 실종된 세 분 모두 한인교회에 나오던 분들”이라며 “함께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남편들이 실종되면서 세 가정 모두 큰 슬픔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분들은 지금 밥도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며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지금 구조 과정에 있어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하며 가족들이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한인교회는 실종자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고 여성회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헌금을 모아 각 가정을 찾아 필요한 물품과 도움을 살피고 있다.

누와코트·카트만두=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

누와코트·카트만두=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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