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되자마자 59만 조회수, 유튜브 달군 인디 애니메이션의 비밀

최해린 2026. 9. 4. 10: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매체의 정수는 단편이라고들 한다. 단편소설은 문학성의 극치를 찍고, 단편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감독의 역량을 입증한다. 그러나 앤솔로지·소설집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단편소설과 달리, 단편영화는 어디에서 보아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넓고도 깊은 '유튜브 단편영화'의 세계로 빠져들어 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가장 최신의 주목할 작품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영화 <더 러버스>

[최해린 기자]

매체의 정수는 단편이라고들 한다. 단편소설은 문학성의 극치를 찍고, 단편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감독의 역량을 입증한다. 그러나 앤솔로지·소설집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단편소설과 달리, 단편영화는 어디에서 보아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OTT에 올라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는 제한적이고, 그 외의 작품은 생소한 사이트에 유료 게재된 경우가 다분하다.

그러나 뛰어난 단편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구태여 인터넷을 헤맬 필요는 없다. 심지어 돈을 따로 낼 필요도 없다. 전 세계의 실력 있는 창작자들이 이미 유튜브를 자신의 플랫폼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넓고도 깊은 '유튜브 단편영화'의 세계로 빠져들어 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가장 최신의 주목할 작품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바로 지난 8월 22일 공개되고 59만 조회수(9월 4일 기준)를 기록한 인디 애니메이션 <더 러버스(The Lovers)>다.
 영화 <더 러버스> 스틸컷
ⓒ Studio Heartbreak
주류 서구사회가 못 하는 이야기를, 더 과감하게

<더 러버스>는 우리를 필리핀 마닐라로 데려간다. 요리사 가문의 일원이지만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여성 셰프 '사라'가 주인공이다. 그런 그녀 앞에 새로 취임하는 시장의 연찬을 담당해야 하는 임무가 맡겨지고, 사라는 인어 '시레나'를 손질해 요리로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시레나는 사라와 인간의 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성체였고, 동족을 잃은 시레나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사라는 금세 유대감을 쌓는다. 그녀들이 사랑에 빠졌다가 도주를 시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이별하는 것까지가 본작의 내용이다.

시놉시스 자체는 평이해 보일 수도 있지만, <더 러버스>의 진가는 그 짧은 내용 속에 담긴 문화적 이해도와 문제의식에 있다.

우선, <더 러버스>는 한 치의 과장도 없이 진실로 탈식민주의적인 작품이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모두 필리핀 고유 언어인 타갈로그어를 사용한다. 몇 세기에 걸친 스페인-미국 점령으로 타갈로그어는 영어의 뒷전으로 밀려나, 자국민들조차도 외국어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본작의 대사는 전부 진성 타갈로그어로 되어 있으며, 작중 고대 인어인 '시레나'는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어투 정도 되는 고(古) 타갈로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민족성을 살린 동시에 작품의 신비스러운 분위기 역시 증대한 것이다.

또, 편의상 고대 인어라 표기하지만 '시레나'는 캐릭터의 이름인 동시에 필리핀의 전통 요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기존에 존재하던 필리핀의 인어 전설이 서구권의 '사이렌(siren)'과 유사했기에 스페인 지배기 동안 '시레나(sirena)'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실제로 <더 러버스> 속 시레나는 보름달이 뜰 때 활동하거나 귀 부분의 소(小) 지느러미를 사용하는 등 서구적 인어보다 전통적 모습에 가깝게 연출된다.

<더 러버스>는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서사를 추구하는 동시에 아직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필리핀 속 두 여성의 연애담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 '이뤄질 수 없는 관계'는 바닷물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레나와 물속에서 숨 쉴 수 없는 사라의 관계를 통해 은유된다.

또한, 작중 두 여성이 지니는 힘도 인상적이다. 사라는 언제든 시레나를 요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시레나는 언제든 사라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기도 하다. 섹슈얼리티를 동반한 모든 관계에서 존재하는 상대적 권력 차이가 '먹음-먹힘'의 도식으로 표현된다. 15분 남짓한 작은 단편에, 주류 서구사회가 이야기 못 하는 소재가 내밀하고 과감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영화 <더 러버스> 스틸컷
ⓒ Studio Heartbreak
대학 동기에서 동업자로, 무서운 신예 감독들

이러한 작품성은 본작의 감독들인 소피아 파에즈(Sophia Paez)와 앨리스 마오(Alice Mao)가 필리핀계 이민자이기에 이뤄낼 수 있었다. 두 감독은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본작을 구상, 4년간의 제작 과정을 통해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 과정에서 인디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스튜디오 하트브레이크(studio heartbreak)'다. 처음에는 2인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작업이, 29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스튜디오의 작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파에즈 감독과 마오 감독은 본인들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공들인 작품을 유튜브에 무료 공개한 만큼, 두 감독은 스튜디오 하트브레이크의 '굿즈 판매'를 통해 재원을 충당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튜디오를 통해 판매되는 제품이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만의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귀여운 플러쉬(plushie) 인형부터 포스터, 그리고 엽서 및 키체인까지, 각양각색의 제품이 전부 또다른 인디 아티스트들에게 외주를 넣은 결과물이다. 스튜디오 자체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창작자들의 활동 무대가 되어 준 셈이다.

이처럼, <더 러버스>는 그 자체로 탈식민주의·섹슈얼리티 논의 등 다양한 의제를 응축해 놓은 작품인 동시에, 패기 넘치는 신진 창작자들이 내미는 도전장 겸 초대장이기도 하다.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 금상을 받은 작품을 유튜브로 볼 수 있는 기회. 놓치지 않고 감상해 보는 것이 어떨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