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녀이자 사제입니다” 구미 성공회 한옥 수도원 세 수녀의 26년 실험

김용현 2026. 9. 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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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도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여성에게도 성직이 열려 있는 대한성공회. 그런데 세상과 한발 떨어져 걷던 수녀가 8년 전 다시 세상 한복판의 지역 교회를 책임지는 사제(목사)가 됐다. 지난달 31일, 경북 구미 일선리의 한옥 수도원에서 전례 없는 길을 내고 있는 세 수녀를 만났다.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관구 책임자 격인 '대리봉사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스무여 해를 이렇게 살아온 세 사람의 공동체엔 위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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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숙 수녀사제, 여성 서품 25년 만의 첫 수도자 출신 교회 총괄
젬마, 율리아나 수녀 등 구미 일선리 수도원 세 사람, 지시 대신 ‘묻고 합의’
암 투병 딛고 사제의 길… “일반인에게도 문 열겠다”
유용숙(오른쪽) 프란시스 수녀사제, 젬마(가운데) 수녀, 율리아나 수녀가 지난달 31일 경북 구미 일선리 한옥 수도원 마당에서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제도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여성에게도 성직이 열려 있는 대한성공회. 굳이 좁은 문을 지나 독신 수도자의 삶을 택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이곳에도 평생의 헌신을 서원한 수녀들이 있다. 그런데 세상과 한발 떨어져 걷던 수녀가 8년 전 다시 세상 한복판의 지역 교회를 책임지는 사제(목사)가 됐다. 이 낯선 궤적의 주인공은 대한성공회 구미교회 관할사제(담임목사 격) 유용숙 프란시스(62) 수녀사제다. 한국 성공회에 여성 사제 서품의 길이 열린 지 25년, 수도자가 교회를 총괄하는 관할사제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경북 구미 일선리의 한옥 수도원에서 전례 없는 길을 내고 있는 세 수녀를 만났다. 성공회는 전례와 성사 중심의 신앙을 이어받아 수도원 전통을 간직해 왔다. 오늘날에도 수녀와 수도원의 삶을 존중하는 흐름이 남아 있다.

한옥 대문을 열어 준 수녀들은 직접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수도복도 마당 아래채 손님관 ‘클라라의 집’ 지하 작업장에서 재봉틀을 돌려 지어 입은 것들이다.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관구 책임자 격인 ‘대리봉사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스무여 해를 이렇게 살아온 세 사람의 공동체엔 위계가 없다. 지시하고 복종하는 대신 묻고 합의한다.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누가 대장이라는 생각 없이, 각자 고유의 달란트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입을 열었다. 

정해진 틀 벗어난 ‘수평 이동’… 기적으로 세운 한옥 수녀원
이들의 새로운 삶을 향한 여정은 평생 수도회에 헌신하겠다고 약속하는 종신서약을 목전에 두고 시작됐다. 프란시스 수녀사제와 젬마(57) 수녀가 구미에 온 건 1999년 12월. 이들은 서울의 성가수도회에서 종신서약을 앞두고 수도원을 나왔다. 당시 한국 성공회 여성 수도회는 단 한 곳뿐이었다. 전통적인 위계와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도 생활을 원해도 다른 선택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두 사람은 넉 달간 배낭을 메고 “평생 이런 기회는 다시 안 온다”며 개신교, 천주교, 복지시설을 가리지 않고 국내 여러 공동체를 돌았다. 길이 없으니 직접 길을 내야 했다.
유용숙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세례대 앞에서 한 교인에게 세례예식을 진행하고 있다. 성공회 프란시스 수녀회 제공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하기로 한 이들은 이를 “수평 이동”이라고 불렀다.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정해진 틀에 나를 맞추는 대신,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발휘해 봉사하는 수도 생활을 찾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갈 곳이 마땅치 않던 두 수녀에게 구미에서 5년간 선교해 온 김요나단(미국 서부뉴욕교구 서품) 신부가 다가왔다. “같은 수도적 삶을 위해 옮기는 사람은 교회가 보호해야 한다”며 아파트와 차를 내준 것이다. 두 사람은 2001년 ‘성공회 프란시스 수녀회’를 세웠고, 영국 본원의 6년 검증 끝에 2009년 세계 성공회 프란시스 수녀회(CSF, Community of St Francis)의 정식 회원이 돼 종신서약을 마쳤다. 2016년에는 성가수도회에서 25년을 산 율리아나(67) 수녀가 합류했다. 

지금의 한옥 수도원은 온전한 수도의 터전을 찾으려 했던 기도의 결실이다. 구미 도심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공동체를 시작한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와 쉴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꿈꿨다. 재정이 부족해 막막하던 어느 날, 무심코 펼친 지역 정보지에 전주 류씨 고택이 모여 있는 문화재 마을의 낡은 한옥 매물이 눈에 띄었다. 젬마 수녀는 “돈이 없어 엄두도 못 내던 곳이었는데 일이 착착 풀려 기적처럼 터를 마련했다”고 했다. 건축비는 영국 프란시스 수도회에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영국 신자들의 유산 기금을 지원하되 자립 의지를 확인하더라”며 “우리가 잼을 만들어 팔고 바자회를 열어 먼저 모금하자 영국에서 나머지 비용을 보태줘 지금의 수도원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시 대신 합의 “다름 인정하니 비로소 평화”
수평적인 수도회 살림은 만장일치로 굴러간다. 매일 아침 9시에 모여 날짜별로 나뉜 수도회 원칙을 낭독하고 일과를 나누며, 하루 네 번 정해진 시간에 공동 기도를 바친다. 각자 하나님께 받은 재능에 따라 역할도 나눈다.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구미교회를 책임진다면, 뒤늦게 합류한 율리아나 수녀는 주말이면 충남 천안교회로 올라가 신자들을 돌보는 협동 수녀로 일한다. 평일에는 수녀원 아래채 ‘클라라의 집’에서 피정객들을 대상으로 ‘수지 에니어그램(성격 유형 분석)’을 진행하며 관계에 지친 사람들의 내면 회복을 돕는다. 젬마 수녀는 지하 작업장에서 재봉틀을 돌려 수도복과 예복을 직접 짓는다.
사제를 상징하는 영대를 두른 유용숙 프란시스 수녀사제(왼쪽에서 두 번째)가 작은 상에 둘러앉아 방문객과 함께 예식을 이끌고 있다. 성공회 프란시스 수녀회 제공

물론 세 사람의 공동생활이 처음부터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율리아나 수녀가 구미로 내려와 세 사람이 되었을 때,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격렬하게 부딪힌 적도 있다. 젬마 수녀는 “성격 유형 분석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내 생각과 속도에 맞춰 상대방을 억지로 끌고 가려 했던 것이 갈등의 원인임을 알게 된 것이다. 서로의 한계와 고유성을 인정하자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원칙이 규정한 생활의 세 표지인 ‘겸손과 사랑과 기쁨’도 이 깨달음 위에서 단단해졌다. 젬마 수녀는 “지금은 저 수녀님이 제일 저 수녀님답게 살 방법이 뭘까 고민하는 게 제 취미”라고 했고,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빈 곳이 보이면 여력 있는 사람이 들어가 채우고 누가 힘들어 빠지면 다른 사람이 배려해서 끼워 주는 퍼즐”에 공동체를 비유했다.

일상을 지탱하는 기도의 힘… 암 투병 중 찾아온 사제의 길
기도는 이들을 붙든 첫 힘이기도 하다. 허무주의에 짓눌리던 20대 초반의 젬마 수녀를 수도원으로 이끈 건 수녀들이 시간을 정해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아침에  기둥 하나, 낮에 하나, 저녁에 하나, 밤에 기둥이 하나 세워져 있으면, 그 사이는 내 힘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하루를 일로만 채우지 않고 기도로 채운다는 게 숨구멍처럼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프란시스 수녀사제에게 기도는 삶의 중심을 잡는 추다. 그는 “기도는 초원을 걷는 것과 같다. 바람이 불고 풀이 스치는 일상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는 일”이라며 “마음이 무너질 때 차분히 기도를 바치면,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집착에서 벗어날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사제도 이 공동체의 기도에서 나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정해진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길이 아니라 질문이 들어왔다. 2009년 종신서약 예식을 마친 날, 영국에서 온 수도회 총봉사자가 지금 꼭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수도원 건물,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사제를 세우는 일이라고 답했다. 첫 소원인 수도원이 이 한옥이다.

수원 내 작은 기도실에서 수녀들이 책상을 펴고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성공회 프란시스 수녀회 제공

두 번째 소원은 시련의 얼굴로 다가왔다. 지역아동센터를 10년간 꾸려 온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수술과 항암이 이어지던 어느 날, 병간호에 지친 젬마 수녀가 기도실에서 넋두리를 쏟아냈다. “옳은 길로만 가려고 했는데 왜 이런 벌을 받느냐는 생각에 가득했습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두 번째를 생각해 봐라.’” 그는 병상으로 달려갔다. “수녀님, 지금 신학교 가야 돼.” 얍복강에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장면(창세기 32장)이 떠올랐다. “이건 주님이 치신 거야.”

프란시스 수녀사제는 치료 중에 신학교에 지원했다. 영국 수도회가 학비를 지원했는데 조건이 하나 붙었다.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면 그만큼 빼고 보낸다는 것. 자립 의지를 보겠다는 뜻이었다. 세 수녀는 성당을 돌며 장학금을 모았고, 그는 성공회대 신학대학원(Mdiv) 과정 3년을 마치고 서품대에 섰다.

“사제는 지나가는 사람일 뿐” 세상 향해 더 넓게 여는 문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부산교구장)에게 서품받은 후 부임한 구미교회에서 그가 내건 목표는 “모든 신자가 사역자”다. 이 목표엔 그의 이력이 배어 있다. 프란시스 수녀사제가 자란 충주 인근 시골교회엔 상주 사제가 없었다. 주일에만 사제가 다녀가는 교회에서 20대의 그는 주일학교와 심방, 구역 기도까지 맡아 교회를 지켰다. 같은 교회 출신인 율리아나 수녀는 “그때도 여성 성직이 열려 있었다면 사제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아동센터 지원 등을 위해 마련한 바자회에서 수녀들과 교인들이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성공회 프란시스 수녀회 제공

40년이 흘러 사제가 된 그는 이제 교인들에게서 그 시절의 자신을 본다. 젬마 수녀는 “사제는 지나가는 사람이고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이라며 “성직자의 목회와 평신도의 목회, 이 두 바퀴로 가는 게 목회”라고 말했다. 구미교회에선 교구 허락을 받은 평신도 설교자가 분기마다 강단에 서고, 그 설교에 자극받은 교인 두 명이 올해 평신도 훈련 과정 디모테오학교에 지원했다.

이들은 수도자의 삶 자체를 받은 은혜로 여긴다. 젬마 수녀는 “우리는 세상에서 조금 비껴나 살도록 교회가 배려해 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그러니 재능을 갈고닦아 맑은 영적 샘물을 만들고,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나눠 줘야 한다”고 말했다. 청빈을 서원한 이들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는 바울의 고백(빌 4:12)처럼, 들어오는 것은 쌓아 두지 않고 장학금과 물품으로 곧장 흘려보낸다.

수녀와 교인들이 해양 환경 정화 활동을 마친 뒤 모은 쓰레기 포대 앞에서 다 함께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성공회 프란시스 수녀회 제공

남은 과제는 다음세대다. 수도자로 부름받았다는 확신을 품고 찾아오는 한국인 지원자가 끊긴 지 오래다. 세 수녀의 답은 문을 더 여는 것이다. 지난해 아래채를 지어 일상을 떠나 기도하며 쉬어 가는 피정객을 받기 시작했고, 서약 없이 수도자들과 두달에서 1년까지 함께 살아 보는 세계 성공회의 ‘얼롱사이더(alongsider)’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다. 결혼이나 이혼, 사별을 겪은 이에게도 문을 열어 자신에게 수도자의 길을 향한 부르심이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세 수녀는 함께 웃으며 말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예요. 그 다음세대는 우리 몫이 아니죠. 그렇지만 최대한 길을 닦을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보자는 겁니다. 그것도 즐겁게요.”

구미=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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