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아들이 떠내려 가요” 비명… 생존자들 트라우마 호소

이찬희 2026. 9. 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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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홍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가족을 잃은 참혹한 기억과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등으로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대학병원(TU)에서 대홍수 피해자들을 치료해온 트라우마 전문 정신과 의사 아눕 판데(27)는 3일 국민일보와 만나 "대홍수에서 생존한 사람은 가족을 잃거나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며 "수천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 등 주변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트라우마를 겪을 우려가 있는 사람은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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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참사 네팔, 이찬희 기자 르포]
죄책감·참혹한 충격에 정신적 후유증
의료진 “트라우마 위험 수만명될 듯”
대피소 이재민들도 슬픔·불안 시달려
네팔 대홍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3일 카트만두 트리부반대학병원 내 트라우마 치료 병동에 입원해 있다.

네팔 대홍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가족을 잃은 참혹한 기억과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등으로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현지 의료진은 긴급구조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재난 생존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정신건강 관리와 재활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대학병원(TU)에서 대홍수 피해자들을 치료해온 트라우마 전문 정신과 의사 아눕 판데(27)는 3일 국민일보와 만나 “대홍수에서 생존한 사람은 가족을 잃거나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며 “수천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 등 주변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트라우마를 겪을 우려가 있는 사람은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병원의 트라우마 전문 정신과 의사 아눕 판데(왼쪽)씨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난 피해자 수만명이 정신적 후유증을 겪을 수 있어 이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판데가 병원에서 마주한 생존자들의 정신적 충격은 컸다. 7세와 3세 딸, 한 살가량 된 아들을 둔 30대 여성 산드라(가명)는 홍수가 덮쳤을 당시 세 살배기 딸을 붙잡고 있었지만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손을 놓쳤다. 다른 두 아이마저 강물에 떠내려가자 산드라는 살아남으려는 시도마저 포기한 채 물살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어린 딸이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산드라는 다시 탈출을 시도했고 두 자녀와 함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남편과 딸을 홍수로 잃은 그는 살아남은 데 대한 죄책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대부분은 여러 신체 부위를 동시에 다친 ‘다발성 외상’ 환자였다. 부상으로 입원한 뒤 치료 과정에서 뒤늦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판데가 치료한 한 중년 남성은 홍수 발생 사흘째 병원에 도착했는데, 흙탕물을 삼킨 후유증으로 병원 도착 이튿날 아침까지 기침을 하며 검은 모래와 잔해를 뱉어냈다. 모래에 눈이 긁혀 치료를 받기도 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 남성은 가족을 잃은 충격에 깊은 절망감을 호소했다.

그는 이번 홍수로 32명에 달하는 대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홍수를 피해 달아날 당시 가방에 소지품과 금·서류 등을 챙겨 몸에 둘렀지만 거센 물살 속에서 가방끈이 목을 조르자 살아남기 위해 모두 버려야 했다. 그는 판데에게 “가족도, 돈도, 직장도 잃어 좌절이 된다”며 “돌봐야 할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밤중 자다가 벌떡 일어나 “도와주세요. 제 아들이 떠내려가고 있어요”라고 외치거나 갑자기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병원을 찾지 않고 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들 사이에서도 가족을 잃은 아픔으로 불안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카트만두의 한 대피소에서 만난 카르산드 타망(22)은 대홍수로 남편과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채 생후 5개월 된 아이를 돌보며 또 다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타망은 “남편과 어머니,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계속 떠올라 견디기 어렵다”며 “뱃속의 아이까지 잘못될까봐 무섭다”고 울먹였다. 타망은 현재 대피시설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판데는 긴급구조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재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홍수를 직접 겪은 생존자뿐 아니라 참혹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도 우려했다. 그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수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며 “수해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나 어린아이에게까지 직간접적인 트라우마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당장의 치료와 긴급구호에 집중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대홍수로 인한 트라우마를 추적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찬희 기자

카트만두=글·사진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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