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11호 달착륙 지켜보던 소년 ‘누리호 엔진’ 아버지 되다

이주은 2026. 9. 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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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날, 8살 소년이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사업부 생산관리팀 황해도(65) 부장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던 이웃집으로 찾아가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봤다.

50여년이 지난 2021년 10월 전남 고흥에서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됐다.

황 부장은 2003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을 계기로 터보펌프 제작에 뛰어들었다.

26년 뒤 한국은 누리호를 완성하며 세계 7번째로 독자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국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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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의 고수들] 황해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황해도 부장이 지난달 26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남 창원1사업장에서 KF-21에 탑재되는 F414 엔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 부장은 KF-21의 보조동력장치(APU) 개발과 F-16 전투기 부품 생산 등에도 참여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최초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날, 8살 소년이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사업부 생산관리팀 황해도(65) 부장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던 이웃집으로 찾아가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봤다.

50여년이 지난 2021년 10월 전남 고흥에서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됐다. 텔레비전 화면의 아폴로호를 지켜보며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황 부장은 30t급 액체로켓의 ‘터보펌프’ 국내 1호기 개발을 주도하며 로켓 엔진 국산화의 한 페이지를 썼다.

그는 이미 2003년 전국에 30명 남짓한 기계가공 분야 대한민국 명장에 올랐다. 42년간 몸담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일한 사내 명장이기도 하다. ‘50년차 공돌이’라고 스스로 칭하는 그를 지난달 26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남 창원1사업장에서 만났다.

살기 위해 기술을 배웠다
황 부장이 처음 기술을 배운 이유는 ‘밥벌이’를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는 그해 재가했다.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동네 어른들의 조언에 그는 굶지 않기 위해 연필 대신 망치를 손에 쥐었다. 중학생 시절 무작정 경남 마산의 한 철공소를 찾아갔지만 경력 하나 없던 그를 받아줄 리 만무했다.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반나절 넘게 출입구 앞을 서성인 끝에 공장 문이 열렸다. 그렇게 철공소 선반공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기능인의 길을 포기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1984년 절삭 작업 중 왼손 엄지손가락 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감각이 둔해진 손으로는 더 이상 기계를 만질 수 없었다. 낙담한 채 공장을 나와 배추 장사로 생계를 잇고자 했다.

황 부장을 다시 현장으로 불러들인 건 “쇠쟁이는 쇠 일을 해야 한다”는 은사의 한마디였다. 같은 해 수술을 마치고 냉장고 수리공으로부터 우연히 기술자 구인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1984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인 삼성정밀공업에 입사해 4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켰다. 함대함 미사일과 구룡(K-136) 다연장로켓(MLRS), F-16 전투기 부품 생산, KF-21 전투기의 보조동력장치(APU) 개발 등에 두루 참여하며 국내 방산·항공사업의 발전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로켓 엔진 국산화의 시작
위 사진들은 황 부장이 협력사 생산현장을 찾아 장비를 살펴보고 관계자들에게 기술 노하우를 전하는 모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엔진이 로켓의 심장이라면 터보펌프는 그 엔진의 생명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황 명장은 액체연료와 추진제를 로켓 엔진에 공급하는 장치인 터보펌프 국내 1호기를 개발하며 로켓엔진 국산화의 물꼬를 텄다.

황 부장은 2003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을 계기로 터보펌프 제작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터보펌프 산업 기반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제작 과정은 험난했다. 집중 기간 6개월 동안에는 새벽 4~5시에 퇴근했다가 당일 아침 9시에 출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터보펌프 내부의 날개 부품인 ‘터빈로터’ 가공은 최대 난관으로 꼽혔다. 날개 틈새 사이의 공간이 너무 촘촘한 탓에 기존 절삭 가공 방식으로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했다. 수차례 테스트를 거치며 500만원에 달하는 소재 수십 개를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 오기가 생겼다. 개발 과정을 지켜보던 연구원들에게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선진국 제품과 똑같이 만들어 내겠다. 안 되면 손톱으로 파서라도 완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터빈로터 가공에만 1년 반을 매달린 끝에 그는 ‘3차원 방전 가공법’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 독자 공법은 국내외 특허까지 획득했다. 황 부장의 손끝을 거쳐 3년 만에 완성된 터보펌프는 훗날 국산 로켓 엔진에 탑재돼 ‘한국형 발사체’를 쏘아올린 핵심 동력이 됐다.

“누리호, 내 혼 담긴 자식 같아”
우주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은 미국과 러시아 등 일찌감치 우주 산업에 뛰어든 국가의 기술과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황 부장은 1995년 액체로켓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녀온 러시아 모스크바 출장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현장에서 만난 러시아 설계자들은 대부분 70대였는데,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설계의 정밀함이 최첨단 컴퓨터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26년 뒤 한국은 누리호를 완성하며 세계 7번째로 독자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국가가 됐다. 황 부장은 2022년 누리호가 2차 발사에 성공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는 “사무실에서 생중계 방송을 지켜봤는데,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며 “누리호에는 수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의 노력, 그리고 내 혼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한다. 누리호는 오는 다음달 5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황 부장은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길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발사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영원한 공돌이로 남고 싶다”는 그는 지금도 기술 공부에 매진한다. 신기술 세미나라면 빠짐없이 찾고, 궁금증이 생기면 관련 책과 뉴스, 유튜브까지 가리지 않고 파고든다. 황 부장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공돌이는 ‘쇠로 만든 금수저’로 거듭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2021년 정년퇴직 나이가 된 황 부장은 재계약 후 현장에 남아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오전 6시30분쯤 사무실로 출근해 먼저 하루 스케줄을 정리하는 루틴을 수십년째 유지하고 있다. 협력사 대상 기술 지원 업무를 담당하면서, 주말에는 사내 강의를 통해 후배들을 만난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미래 우주항공 산업의 초석이 될 다음 세대의 기능인을 키워내는 것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저의 지식과 기술이 후배들에게 닿아 우리나라를 더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창원=이주은 기자 ju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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