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밤마다 “제 아들이 떠내려가요” 비명…네팔 생존자 덮친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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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홍수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신체적 부상뿐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현지 의료진은 긴급 구조와 치료가 끝난 뒤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정신건강 관리와 재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대학병원(TU)에서 대홍수 피해자들을 치료해온 정신과 의사 아눕 판데(27)는 3일 국민일보와 만나 "대홍수에서 생존한 사람은 가족을 잃거나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며 "수천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실종자의 가족 등 주변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트라우마를 겪을 우려가 있는 사람은 최소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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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홍수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신체적 부상뿐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현지 의료진은 긴급 구조와 치료가 끝난 뒤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정신건강 관리와 재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대학병원(TU)에서 대홍수 피해자들을 치료해온 정신과 의사 아눕 판데(27)는 3일 국민일보와 만나 “대홍수에서 생존한 사람은 가족을 잃거나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며 “수천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실종자의 가족 등 주변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트라우마를 겪을 우려가 있는 사람은 최소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판데가 병원에서 마주한 생존자들의 정신적 충격은 컸다. 7세와 3세 딸, 한 살가량 된 아들을 둔 30대 여성 산드라(가명)는 홍수가 덮쳤을 당시 세 살배기 딸을 붙잡고 있었지만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손을 놓쳤다. 다른 두 아이마저 강물에 떠내려가자 산드라는 살아남으려는 시도마저 포기한 채 물살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어린 딸이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산드라는 다시 탈출을 시도했고 자신과 두 자녀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남편과 딸을 홍수로 잃은 그는 자신이 살아남은 데 대한 죄책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대부분은 여러 신체 부위를 동시에 다친 ‘다발성 외상’ 환자였다. 신체 부상으로 입원한 뒤 치료 과정에서 뒤늦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판데가 치료한 한 중년 남성은 홍수 발생 사흘째에야 병원에 도착했다. 흙탕물과 함께 모래를 들이마신 그는 병원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까지 기침을 하며 검은 모래와 잔해를 뱉어냈다. 판데는 “너무 검어서 처음에는 피인 줄 알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래와 잔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 중년 남성을 짓누른 건 가족을 잃었다는 현실이었다. 남성은 치료 과정에서 ‘이번 홍수로 32명에 달하는 대가족을 모두 잃었다’며 슬퍼했다고 한다. 홍수를 피해 달아날 당시에는 소지품이 든 가방과 금·서류 등이 담긴 가방을 몸에 둘렀지만, 거센 물살 속에서 가방끈이 목을 조르자 살아남기 위해 모두 버려야 했다. 그는 판데에게 “가족도, 돈도, 직장도 잃어 좌절스럽다”며 “돌봐야 할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수가 지나간 뒤 정신적 후유증이 뒤늦게 나타나는 생존자들도 있다. 한밤중 자다가 벌떡 일어나 “도와주세요. 제 아들이 떠내려가고 있어요”라고 외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갑자기 울고 소리를 지르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아직 병원을 찾지 않은 채 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들 사이에서도 가족을 잃은 기억과 불안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앞서 국민일보가 카트만두의 한 대피소에서 만난 카르산드 타망(22)은 대홍수로 남편과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채 생후 5개월 된 아이를 돌보며 또 다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타망은 “남편과 어머니, 아버지를 모두 잃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계속 떠올라 견디기 어렵다”며 “뱃속의 아이까지 잘못될까 봐 무섭다”고 울먹였다. 가족을 잃은 충격과 불안에 시달리는 타망은 대피시설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치료가 늦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병원은 홍수가 발생한 당일부터 재난대응체계를 가동해 헬기로 구조된 환자들을 받아왔다. 하지만 도로가 파손된 데다 헬기와 이동 수단도 제한돼 치료가 시급한 환자조차 제때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판데는 “현장에 의사가 없어 헬기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환자를 먼저 이송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판단하지 못하고, 먼저 발견한 사람부터 데려온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증 환자가 사고 발생 이틀이나 사흘 뒤에야 병원으로 실려오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판데는 긴급구조와 치료가 끝나는 것으로 재난 대응이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직접 홍수를 겪은 생존자뿐 아니라 참혹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도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판데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수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며 “수해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나 어린아이에게까지 직간접적인 트라우마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모두 즉각적인 치료와 긴급구호에 집중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트라우마를 추적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트만두=글 사진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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