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간 자갈치 노동자들 허기 채운 '고봉밥 할매'

정남준 2026. 9. 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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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밥과 노동자 그리고 가난한 골목이다.

그러다 밥을 먹는 노동자를 찍었고, 그들이 살아가는 가난한 골목을 찍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한 끼 한 끼 받쳐주었던 한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밥을 먹고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을 찍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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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이분이 어르신 별세, 향년 92세... 13년간 찍은 105장의 밥상 사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남준 기자]

 47년 넘게 자갈치 노동자들의 밥을 지어온 이분이 어르신. 내가 기억하는 어르신은 이렇게 환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9월 2일,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 정남준
2013년 12월이었다. 부산 자갈치에서 주낙노동자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새벽 바다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생선 상자를 나르는 손, 비린내와 땀 냄새가 뒤섞인 골목을 따라다니며 셔터를 누르던 때였다.

그러다 '자갈치 노동자의 밥집'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분이 어르신을 처음 만났다. 그날의 우연한 만남이 13년 가까운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이후 자갈치에 갈 때면 밥집을 찾았고, 어르신을 만났고, 어르신이 차려내는 밥상을 찍었다.

관련기사 : [사진] 자갈치 고봉밥 할매께, 건강히 자주 뵈입시더

밥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려주신 분

2일 저녁 무렵, 47년 넘게 그 자리에서 자갈치 노동자들의 밥을 지어온 어르신께서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사진에 있어 내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준 스승이 누구였을까 돌아보면, 유명한 사진가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밥과 노동자 그리고 가난한 골목이다. 그중 밥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려주신 분이 바로 어르신이었다.
 어르신이 내어주던 밥 한 그릇. 5천 원짜리 밥상에서 나는 가난보다, 가난 속에서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한 끼의 힘을 보았다.
ⓒ 정남준
어르신의 밥상은 5천 원이었다. 밥과 국, 생선과 나물, 김치와 여러 반찬이 작은 그릇마다 가득 담겼다. 사진으로 다시 봐도 '이게 정말 5천 원짜리 밥상이었나' 싶을 만큼 푸짐했다. 그 밥을 먹는 사람들은 자갈치에서 생선을 나르고 손질하고, 바다와 시장을 오가며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었다.

가난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고단함 또한 사진가가 함부로 아름답게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르신의 밥상을 오래 찍으면서 나는 가난과 고단함 너머의 무엇을 보게 됐다. 넉넉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밥만큼은 넉넉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허기진 사람이 배불리 먹고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어르신은 수십 년 동안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내놓았다. 말로 무언가를 가르치신 적은 없지만 나는 그 밥상 앞에서 배웠다. 가난한 골목에도 사람이 사람을 먹이고, 그 밥을 먹은 사람이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찍고 싶었던 가난은 절망만으로 끝나는 가난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서로를 먹이고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이었다.
 2013년 겨울부터 기록한 ‘자갈치 노동자의 밥집’의 105개 밥상. 한 상 5천 원. 나는 밥을 찍었지만, 어쩌면 가난한 노동자들이 다시 하루를 살아갈 희망을 찍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정남준
내가 좋아하는 사진 가운데 어르신이 거대한 생선상자들 앞에 홀로 서 있는 사진이 있다. 낡은 앞치마에 꽃무늬 바지, 분홍색 신발을 신은 작은 체구의 어르신 뒤로 생선상자가 벽처럼 높이 쌓여 있다. 사진만 보면 거대한 자갈치 앞에 한없이 작은 노인 한 사람이 서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반대로 생각한다. 저 작은 사람이 오랫동안 이곳의 노동자들을 먹였구나. 4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그 문을 열고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까.

어르신, 참 많이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꾸 특별한 장면을 찾아다닌다. 나 역시 더 좋은 빛과 더 강렬한 순간을 찾아 골목을 헤맸다. 그러나 어르신은 늘 같은 자리에서 밥을 짓고 사람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다음 밥을 준비했다. 오래 바라보고서야 알았다. 좋은 사진은 반드시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자기 자리를 오래 지키는 일, 아무도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는 일을 평생 되풀이하며 다른 사람의 하루를 받쳐주는 삶, 그리고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일. 어르신은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을 사진에 있어 최고의 스승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자갈치의 생선상자들 앞에 선 이분이 어르신. 사진 속에서는 작은 사람이지만, 47년 넘게 이곳 노동자들의 한 끼를 책임졌다.
ⓒ 정남준
그동안 찍은 밥상 사진을 모아보니 105개였다. 같은 밥상은 하나도 없다. 그날그날 국이 달랐고 반찬이 달랐고, 그 밥을 먹고 다시 일터로 나간 사람들의 하루도 달랐다. 처음에는 밥을 찍었다. 그러다 밥을 먹는 노동자를 찍었고, 그들이 살아가는 가난한 골목을 찍었다. 그렇게 13년 가까이 찍고 나서야 어쩌면 내가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은 밥도, 가난도 아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한 끼 한 끼 받쳐주었던 한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밥을 먹고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을 찍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전에 어르신께 이 사진들을 모아 사진집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고 죄송하다.

이제 사진 속에는 어르신의 웃음도, 주름진 손도, 밥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정작 그 사진집을 보여드리고 싶은 사람이 없다. 그래도 105개의 밥상은 남았다. 그 밥을 먹고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남았다.

어르신, 그동안 참 많이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밥 짓는 일도, 고된 일도 그만하시고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도 내가 사진으로 기억하는 모습처럼 늘 환하게 웃으며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린 바다 냄새와 노동의 땀 사이, 자갈치 노동자의 밥집 이분이 어르신의 시간.
ⓒ 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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