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소리가 좋았지…” 60년 지킨 할머니의 문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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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물포구 인천창영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홍성선(86) 할머니가 60년 넘게 문구점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홍 할머니는 창영초 전교생이 5000명을 넘던 때부터 243명으로 줄어든 지금까지 매일 아침 7시면 '영문구' 문을 연다.
지난달 26일과 27일 찾아간 '영문구'에서 홍 할머니는 작은 의자에 앉아 길 건너 창영초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통계를 보여주지 않아도 홍 할머니는 '영문구' 의자에 앉아서 이 나라의 저출생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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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창영초 앞 60년 ‘영문구’ 홍성선 할머니
“학생 하나도 없어질 때까지 문구점 열어야지"

인천 제물포구 인천창영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홍성선(86) 할머니가 60년 넘게 문구점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홍 할머니는 창영초 전교생이 5000명을 넘던 때부터 243명으로 줄어든 지금까지 매일 아침 7시면 ‘영문구’ 문을 연다. 이제 학생이 줄어서, 홍 할머니는 고무줄로 곱게 묶어둔 도화지와 공책을 종종 고물상에 가져가야 한다. 그런 때면 마음이 아프지만, 홍 할머니는 어디선가 아이들 웃는 소리가 들리면 따라 미소짓는다.
지난달 26일과 27일 찾아간 ‘영문구’에서 홍 할머니는 작은 의자에 앉아 길 건너 창영초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서니 사탕과 젤리로 가득한 진열대가 정면에 나타났다. 입구 가까이 바닥에는 슬라임(놀이용 젤)과 ‘요술 점토’가 색깔별로 깔려 있었다. 놀잇감 꾸러미마다 ‘1개 500원’ 식으로 쓰인 가격표가 붙었다. 요술 점토는 햇볕에 녹을까봐 종이로 덮인 모습이었다.
걸음을 안쪽으로 옮겨야 보이는 공책과 필기구가 ‘영문구’의 정체성을 애써 증명했다. 깜찍한 그림이 새겨진 공책과 수첩은 물량이 많지 않았다. 조금씩 놓인 모양새는 판매용이라기보다 전시품 같은 느낌마저 줬다. 그래도 아크릴판에 또박또박 적힌 ‘알림장’ ‘받아쓰기’ ‘8칸 노트’ 가 각자의 자리와 역할을 엄격히 구분했다. 홍 할머니는 기자가 문구류를 한참 들여다보자 “많이 들여놓지 않았다”며 조금 멋쩍어했다. 홍 할머니는 “하루 종일 만원어치도 안 팔린다”며 “이젠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문구’는 올봄 환갑을 맞았다. 홍 할머니가 스물여섯 새댁이던 1966년 봄 신혼집 담을 헐고 벽을 터서 이 문구점을 만들었다. 충남 당진 벼농사 농가에 살던 홍 할머니는 스물셋에 인천 청년에게 시집을 왔다. 그땐 창영초 교문이 다른 쪽이었는데,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학교는 홍 할머니의 신혼집 앞으로 새 교문을 냈다. 부부는 초가집을 개조해 문구점을 열기로 결정했다. 갱지 엮은 공책을 10원씩 받고 팔았다고, 홍 할머니는 기억한다.
흙길은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초가집은 2층 벽돌집으로,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홍 할머니만 같은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린다. 문구점 초창기에는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포목, 그릇, 먹을거리, 서적을 파는 상인들이 배다리마을로 몰려 인천 최대 상권을 이루던 때였다. 길에는 아이도 부모도 많아서, ‘영문구’는 색연필, 색종이, 모양자를 올린 좌판을 길가에 내놓았다가 해가 지면 거둬들였다.
그때 문구점은 아이들의 해방구였고 ‘국민학교’ 교육의 플랫폼이었다. 수업 마친 아이들은 우르르 ‘영문구’로 건너와 동전을 내밀고 학용품을 샀다. 숙제를 마치면 다시 ‘영문구’ 앞에 모여 ‘달고나’를 만들며 놀았다. 홍 할머니는 인근 얼음 가게와 거래선을 트고 ‘하드’도 많이 팔았다. 지금은 창영초 학생들이 착용하지 않는 교모와 체육복도 당시 주력 상품이었다. 학부모들은 명절에 자녀에게 선물할 장난감 총과 인형을 샀다.
‘영문구’는 서점에서 학생들 문제집도 많이 떼어와 팔았다. ‘표준전과’ ‘동아전과’는 물론 다달이 나오는 ‘이달학습’ ‘완전학습’, 중간·기말고사에 맞춰 발행되는 여러 ‘총정리’ 문제집이 문구점을 채웠다. 홍 할머니는 “학생이 많으니 별걸 다 팔았고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과자 옆에 놓인 ‘동시 동요집’ 몇 권이 당시의 명맥을 가까스로 잇고 있다. 초등학교에선 시험이 사라진 지 오래다.

북적이던 과거에는 좌판에서 지우개며 음료수를 슬쩍 훔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홍 할머니는 그런 아이들을 ‘검거’하면 물건을 돌려받곤 말로 타이르기만 하고 돌려보냈다. 홍 할머니는 “어린 학생 앞길에 지장이 생길까봐 ‘쟤가 뭘 훔쳐갔다’ 하는 소리는 누구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낸 학생이 다시 들르면 몰래 ‘서비스’를 쥐어주기도 했다. 홍 할머니는 수십년 전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이에게 지장이 생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누가 통계를 보여주지 않아도 홍 할머니는 ‘영문구’ 의자에 앉아서 이 나라의 저출생을 알았다. 오전·오후반으로 2부제 수업을 하던 학교는 언젠가부터 한 학급이 스무명을 넘지 못했다. 운동장 흙먼지가 줄어든 대신, 주인 기다리던 학용품들에 조금씩 먼지가 내려앉았다. 홍 할머니는 재고를 조금씩 고물상에 가져갔다. 고물상도 안 받는 오래된 실내화, 리본 묶음은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줬다. 홍 할머니는 “아이들이 자꾸 없어지니 내다버린 게 무진장 많다. 돈 주고 산 것인데, 버릴 땐 마음이 참 안 좋다”고 말했다.
‘영문구’ 매대는 시대와 불화하기 시작했다. 홍 할머니는 도매상에서 연필과 연필깎이, 샤프, 종합장을 꾸준히 사들였다. 정작 교실은 ‘태블릿 기반 수업’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종이에 뭘 쓰고 지우기보단 움직이는 화면을 보며 공부한다는 것을, 홍 할머니는 나중에 알았다. 홍 할머니는 “하도 공부하는 물건들을 사 가지 않길래, 아이들을 만나면 ‘너희들 학교 공부를 하는 거니, 안 하는 거니’ ‘어떻게 연필 같은 것도 안 사니’ 물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홍 할머니는 “예전엔 문구점에서 우표도 팔고 백묵도 팔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부모님과 ‘국군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고 우체통에 넣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판서하면 학생들은 손날 까매지도록 따라 적었다. 홍 할머니는 “4월이면 비행기 만드는 것도 많이 팔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가 말한 건 4월 ‘과학의 달’에 열리던 고무동력기와 물로켓 만들기, 과학상자 조립대회 같은 것이다. 초등학생 수상 내역도 민감해지고 사교육 조장 우려가 대두되면서 백일장과 사생대회는 점차 줄어들었다.
2학기 개학 뒤 약 1주일간 팔린 공책 숫자를 묻자 홍 할머니는 “‘영어 공책’만 두 권 팔렸다”고 답했다. 요즘 초등학생은 오선지 그어진 ‘음악 공책’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교실마다 있는 프린터가 뭐든 간편히 출력한다. ‘알림장’이 아직 생산되지만, 이 통신은 학교와 학부모 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급격히 대체되고 있다. ‘일기장’도 잘 안 팔린다. 교사가 학생 일기를 읽는 일이 인권 침해라는 주장도 있었다.
‘영문구’에는 홍 할머니가 ‘신식’이 되려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뭐든 컴퓨터로 한다 해서 ‘동그란 것’도 갖다 뒀는데, 다 버리고 몇 개만 남겨 뒀다”며 진열장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홍 할머니가 보여준 것은 3.5인치 디스켓 묶음이었다. 디스켓이 들어가는 컴퓨터는 요즘 세상에 없다시피하다. 홍 할머니는 “실내화도 헝겊이었다가 고무로 바뀌고, 자꾸 신식이 되니 잘 못 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실로폰과 말굽자석, 국기함 만들기를 사러 오지 않는다. 2010년대 들어 ‘학습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이 본격 시행돼 학교가 교육청 지원으로 교구를 구매해 나눠준다. 홍 할머니는 “무슨 법을 만든 뒤엔 학부모들이 어쩌다 음료수 한 박스 사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시행 10년이 된 ‘김영란법’ 이야기다. 제도가 야속하지 않느냐고 묻자 홍 할머니는 “어떡해, 할 수 없지” “높은 사람들이 한 일이지”라고만 답했다.
한때 배다리마을에 몰렸던 사람들은 신도심인 청라와 송도 등지로 다시 옮겨갔다. 두 곳이던 창영초 운동장은 한 곳으로 줄었고, 창영초 건너편에만 다섯 곳이던 문구점은 ‘영문구’만 남았다. 홍 할머니가 문구와 완구, 체육용품을 거래하던 도매상 네 곳도 사라졌다. 홍 할머니는 이제 호기롭게 도매상에 주문 전화를 거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조금씩 사 와서 매대를 채웠다. 학용품을 줄이고 음료수와 과자 비중을 높였다. ‘영문구’는 그렇게 저출생과 원도심 공동화를 버텼다.

왜 이토록 오래 ‘영문구’를 지켜왔는지 물었다. 홍 할머니는 “애들 소리 나면 좋잖아”라고 답했다. 그는 길 건너 창영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엔 학교종 울리면 행길 미어지도록 아이들이 달려 나왔지.” 요즘 아이들은 수업 끝나도 문구점에 달려오지 않는다. 하굣길 정문에 정차한 노란 학원 버스를 순서대로 타고 사라진다.
-문구점 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시진 않았나.
“그런 생각은 안 했지. 문구점이 좋았지.”
-왜 문구점 일을 좋아하셨나. 장사가 늘 잘 된 건 아니잖나.
“애들이랑 자주 만나니 좋았지. 지금은… 사람이 없어.”
-아이들이 왜 좋았나.
“귀엽고… 애들 목소리 들리면 좋고. 애들 소리 나면 좋잖아.”
-애들 소리가 나면 좋다는 말이무슨 뜻인가.
“재잘거리고 하면 재밌지. 소리가 나니까.”
-학생 줄어든 현실이 원망스럽진 않은가.
“어떡해, 할 수 없지. 벌써 몇 년 됐지. 아이들도 많고 나도 젊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런 시절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홍 할머니는 “이렇게 아이들이 없어지면 나중에 ‘군인 나갈 사람’은 어떻게 되나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저출생 해법은 “젊은 사람들이 살기 좋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집값도 비싸고, 젊은 사람들이 너무 살기가 힘들잖아. 그러니 더 안 낳으려고 하지.” 홍 할머니는 “젊은이들은 맞벌이를 해도 힘들어 한다. 물가가 너무 비싸 그렇다”고도 분석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귀해지면서, 홍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가끔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당부한다. 그가 60년간 보니 학생 숫자와 교권이 함께 쪼그라들었다. “TV를 보면 학생이 선생님을 때리고, 선생님이 나무라면 교육청과 경찰에 신고를 한다더라. 그러면 안 된다.” 홍 할머니는 “그래도 여기 학생들은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거스름돈 주면 ‘고맙습니다’ 한다”고 칭찬을 잊지 않았다.
학생과 종이가 줄고 대형마트와 ‘이커머스’가 만들어지는 동안 ‘영문구’는 한 자리를 지켰다. 홍 할머니는 “지금이나 그때나 늘 같은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매정하게, 깍쟁이같이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 세월이 60년이다. ‘영문구’ 들르던 아이들 중엔 국회의원도 있고, 군수도 있고, 미국프로야구(MLB)까지 간 류현진도 있다. 인근에서 동창회를 한 노신사들은 가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들은 기억 속 ‘영문구 아줌마’를 맞닥뜨리곤 “아직도 문구점을 하시느냐” “은퇴 안 하시느냐” 놀란다.
-60년 넘게 문구점을 운영할 줄 알았나.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 시골 사람이 장사를 알았겠나… 가격표 써 붙이고 하루하루 지나 이렇게 됐다.”
-계속 ‘영문구’를 열 것인가.
“해야지. 건강하면 해야지. 애들이 있으니까. 이 학교 학생들이 하나도 없어질 때까지 해야지.”
홍 할머니는 “내가 아이들을 도운 건 없다. 아이들이 나를 밥 먹여줬다”고 고마워했다. 공책을 한 권 집어들자 홍 할머니는 바로 “그건 줄 안 쳐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문구’를 나오며 돌아보니 홍 할머니는 기자가 건드려 비뚤어진 공책 더미를 가지런하게 고치고 있었다. 기자가 이틀간 ‘영문구’에 머문 4시간 동안 들어온 손님은 “리코더 있나요” 하던 남학생 한 명이었다.
인천=이경원 이슈&인터뷰팀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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