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국회 정쟁만 부를 것” 李 설득했다…김용범 전격사퇴 배경

오현석, 하준호 2026. 9. 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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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논란 등으로 국민의힘 등 야당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아온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일 이재명 대통령의 사의 수리로 물러났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청와대 실장급 고위 참모 교체는 정부 출범 1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김 실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제 성장률은 어느 정도 올랐으니, 이제 물가·금리·집값 상승으로 부담이 커지는 서민들을 위한 창의적인 사회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김 실장은 또 “내가 국회에 나가면 레버리지 ETF 공방 같은 정쟁만 벌어질 것”이라며 “그런 것과 관계 없는 사람이 와서 새롭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전날 이같은 이유를 들며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으나, 이를 인지한 참모들은 극소수였다. 청와대의 수석·비서관 대부분은 1일 아침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 ‘현안 점검 회의’에서 김 실장의 고별사를 듣고 나서야 알게 됐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회의 직후 긴급 브리핑을 열어 “김 실장은 어제 사의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책 집행에 있어 원활한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참모가 바뀐 것”이라며 “청와대 참모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2개월~1년 6개월인 상황에서 사실상 어떤 참모가 바뀌어도 특별히 이상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시점은 이례적”이란 말이 나온다. 재정경제부·국토교통부 등 핵심 경제 부처 장관 교체가 발표된 지 이틀이 지나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장관 후보자 6명을 지명하면서, 이해민 AI미래기획수석 등 청와대 참모 2명의 내정을 함께 발표했다. 정책실장은 명단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김 실장 유임을 전제로 한 공방이 오갔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최근 주변에서 정책실장 교체를 건의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김 실장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미 관세협상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당초 청와대는 정권 출범 1년 6개월 차가 되는 오는 11월 이전엔 김 실장을 교체하지 않는 쪽에 무게를 뒀다. 김 실장이 한·미 관세 협상과 중동발(發) 경제 위기 등 난제를 선방했고,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3.3%(한국은행 기준)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공직자가 열심히 설거지하다 그릇을 깨뜨려도, 의도적인 게 아니면 보호한다는 게 대통령의 인사 원칙”이라며 “김 실장에 대한 경질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김 실장 역시 지난주만 해도 평소 업무를 이어가며, 9월 초에도 각종 회의 및 현장 방문 일정을 잡아놓았다. 하지만 야당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책임론 공세에 여당이 가세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조 친명’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레버리지 ETF가 준비되지 않은 형태에서 도입돼 주식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일정 부분 책임이 필요하다”며 경질론을 공개적으로 띄웠고, 김 실장은 그즈음 일부 지인에게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실제 청와대와 여당 안팎에선 각기 다른 이유로 김 실장 경질 요구가 나왔다. 국회 출신 인사들 사이에선 “누군가는 레버리지 ETF와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 대통령의 일부 측근 그룹에선 “논란이 된 정책에 대한 김 실장의 설명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리얼미터]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가 계속된 점도 거취 결정을 앞당긴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난달 25~27일 한국갤럽 전화면접 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이 42%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 공개된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지난달 24~28일) 무선전화 자동응답(ARS) 조사에선 38.9%를 기록했다. 김 실장은 이날 이 대통령을 찾아가 자신이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길게 밝혔고, 처음엔 만류하던 이 대통령도 결국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 실장의 사퇴 소식에 야당은 비판의 날을 더 세웠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김용범은 꼬리, 몸통은 이 대통령”이라며 “사퇴로 끝낼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정점식 원내대표는 “개각 실패를 벌써 자인한 꼴”이라고 했다. 반대로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되, 기본적으로 부동산 정상화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여권에선 김 실장의 후임으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 공공과 민간의 경험을 두루 갖춘 인사가 우선 검토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오현석·하준호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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