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숲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사라진 천연기념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단순한 동물 소개를 넘어 현장에서 동물을 마주하는 수의사의 시각으로 멸종의 원인과 생태계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미 사라진 동물의 '부재'를 통해 현재 위기종을 향한 '보호 의지'를 되돌아보고 성공적인 종 보전 프로젝트 사례와 일상 속 실천법을 공유합니다.
동물원 숲속을 걷다 보면 종종 '따다닥' 하고 경쾌하게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
현재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가 그토록 보호하고자 했던 실체는 남한의 숲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동물 소개를 넘어 현장에서 동물을 마주하는 수의사의 시각으로 멸종의 원인과 생태계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미 사라진 동물의 '부재'를 통해 현재 위기종을 향한 '보호 의지'를 되돌아보고 성공적인 종 보전 프로젝트 사례와 일상 속 실천법을 공유합니다. <기자말>
[이하늬 기자]
|
|
| ▲ 천연기념물 제197호 크낙새 |
| ⓒ 국가유산청 |
강원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야생동물 수의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보호실에는 종종 딱따구리들이 구조되어 왔습니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정신을 잃었거나 날개를 다쳐 들어온 아이들이었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만났던 환자는 초록빛 고운 옷을 입은 청딱따구리와 검은색과 붉은색 깃털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오색딱따구리였습니다.
딱따구리들은 좁은 입원실 안에서도 야성적인 본능을 잃지 않았습니다. 단단한 고목을 쪼아 안식처를 만들고 나무 속 벌레를 잡아먹던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녀석들은 기운을 차리기 무섭게 진료실 벽이나 나무 구조물을 부리로 세차게 쪼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입원실 안을 요란하게 울리던 그 생기 넘치는 소리는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신호였습니다.
수의사가 된 후 진료 차트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리고 이 땅의 그 어떤 깊은 산림을 헤매어도 결코 만날 수 없는 딱따구리가 있습니다. 바로 '크낙 크낙' 하는 특이하고도 웅장한 울음소리로 온 산천을 울리던 새, 남한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크낙새'입니다.
크낙새(Dryocopus javensis richardsi)는 흰배딱따구리의 아종으로, 딱따구리목 딱따구리과에 속하는 새입니다. '크낙새' 또는 북한에서 부르는 '클락새'라는 독특한 이름은 특유의 울음소리에서 그대로 따왔습니다. 계곡과 산림이 깊은 숲속에서 "크낙 크낙" 혹은 "클락 클락" 하고 목청 높여 부르던 소리는 숲 전체에 강렬한 여운을 남기곤 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자료에 따르면, 이 새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딱따구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를 자랑합니다. 성체의 몸길이는 국내 딱따구리류 중 가장 큰 축에 속하여 한반도 조류 전체를 통틀어도 대형급에 해당합니다. 전체적인 인상은 묵직한 검정 바탕에 배 쪽만 흰색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이색적인 색채 대비에서 옵니다.
암수를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머리를 보는 것인데, 수컷은 이마에서 뺨까지 붉은 무늬가 선명하게 이어지는 반면 암컷의 머리는 전체가 검습니다. 부리는 큰 몸집에 걸맞게 강하고 두꺼우며, 끝부분에 약간의 어두운 빛이 돌아 전체적인 인상을 한층 묵직하게 만듭니다.
크낙새의 보금자리는 숲에서 가장 굵고 오래된 고목이어야 했습니다. 수령이 충분히 쌓여 속이 조금씩 무르기 시작한 나무라야 강한 부리로 깊은 구멍을 뚫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번식은 봄철에 이루어지며, 포란과 육추 과정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더 긴 시간 알을 품는 독특한 분업 방식이 관찰된 바 있습니다.
크낙새는 매 번식기마다 새 둥지를 파는 습성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버려진 묵은 구멍들은 소형 조류나 포유류의 집으로 재활용되곤 했습니다. 이처럼 크낙새 한 마리가 살기 위해서는 수백 년 묵은 고목이 넉넉히 남아 있는 원시림이 전제되어야 했고, 바로 그 점에서 크낙새는 숲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최고의 생태 지표종이었습니다.
과거 크낙새는 한반도 전역에 널리 살던 새였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를 덮친 전쟁의 참화는 크낙새의 보금자리마저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습니다. 수많은 숲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전쟁 이후 시작된 산림 파괴와 개발의 물결 속에서 크낙새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1974년 남한에서는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광릉숲)에서 크낙새 한 쌍이 번식에 성공하는 가슴 따뜻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광릉숲 이외의 지역에서는 더 이상 크낙새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였던 광릉숲에서조차 1993년을 끝으로 크낙새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
|
| ▲ 2008년 9월 24일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수목원내 특별전시실에서 천연기념물 제197호 '크낙새'(왼쪽)와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천연기념물 제198호 '따오기' 등 희귀 조류 표본 68종 73점을 전시해 놓고 있다. |
| ⓒ 연합뉴스 |
이 지역들은 오래된 고목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크낙새가 둥지를 틀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어 온 곳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 서식지 내 나무 벌목을 엄격히 금지하고 인공 둥지를 설치하는 등 개체수 보전 노력을 이어오고 있으나, 전체 서식 규모는 황해도 일대에 겨우 몇십 마리 안팎으로 추정될 만큼 여전히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우리 정부 역시 크낙새를 지키기 위해 일찍부터 노력했습니다. 1962년 국립수목원의 크낙새 서식지를 천연기념물 제11호로 지정했고, 1968년에는 크낙새 종 자체를 천연기념물 제197호로 선포하여 보호했습니다. 현재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가 그토록 보호하고자 했던 실체는 남한의 숲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습니다.
2008년에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약 9년에 걸쳐 실시한 천연기념물 조류 전국 서식 실태 조사는 그 사실을 냉정한 숫자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당시 지정된 천연기념물 조류 46종 가운데 44종은 전국 각지에서 최소 한 건 이상의 관찰 기록이 있었지만, 크낙새만큼은 조사 기간 내내 단 한 차례의 목격 보고도 없었습니다. 숫자로 따지면 '46분의 1'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의 빈칸이 남기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동물원에서 수많은 야생동물의 아픔을 치료하고 생사를 보살피는 수의사로서, 한 종의 사라짐은 단지 새 한 마리가 없어지는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크낙새가 오래된 고목에 구멍을 뚫고 떠나면, 그 둥지는 소형 조류나 다람쥐, 곤충 등 숲속 동물들의 귀중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크낙새라는 대형 딱따구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녀석들이 의존하던 백 년 묵은 고목림과 산림 생태계의 축이 함께 무너졌음을 의미합니다. 둥지를 틀 고목이 사라진 숲은 외형상 푸르러 보일지 몰라도 생태적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야생 동물은 우리가 필요할 때 이용하고 버리는 자원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자연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대체 불가능한 유산입니다.
수의사의 눈으로 볼 때, 입원실에 누워 있는 야생동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치료 약은 최첨단 의료 기술이 아닌 '원래 살던 건강한 자연환경'입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은 동물원이나 인공 증식장이 있다고 한들, 넓은 숲속을 자유롭게 날아오르며 나무를 쪼던 크낙새의 야성을 완전히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야생동물에게 가장 완벽한 병원이자 안식처는 결국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생태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크낙새는 이제 남한의 숲에서 영원히 날아가 버렸고, 북한의 일부 산림에서 겨우 그 위태로운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크낙 크낙" 하고 울리던 그 힘찬 소리는 이제 남한에서는 빛바랜 기록과 옛 녹음 파일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비록 광릉숲을 울리던 크낙새의 소리는 꺼졌지만, 그 빈자리가 남긴 깊은 울림이 우리 사회 전체의 생태 보호 의식으로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만이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간 고귀한 새, 크낙새에게 우리가 뒤늦게나마 건넬 수 있는 진심 어린 사과이자 약속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윤여창, 장호찬. "광릉 크낙새의 보존가치 평가." (1994). 강정훈, et al. "한국의 천연기념물 조류의 현황과 서식실태." 한국조류학회지 15.1 (2008): 73-84. 국립생물자원관. "크낙새".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대한민국 환경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27년, 당신의 1년은 이렇게 달라진다
- 알바생 활동가에서 비례 재선까지... 용혜인 정치에 남은 물음표들
- 역대급 폭염 지나간 뒤 프랑스 정부가 받은 청구서
- 엄마가 죽었는데 안 슬프다는 남자... 이제 의문이 풀렸다
- "챗지피티가 죽으라면 죽겠네"... 남편 말에 시작한 훈련
- '고양이 새 학살 영상'에 충격 받았다면, 이걸 꼭 봐야
- KBS "네팔 홍수 AI 영상 사용" 사과... 연합뉴스TV는?
- 네이버지도에 왜 뉴욕 센트럴파크가 나오죠?
- "우린 지워야 할 얼룩 아냐"...'성소수자' 삭제에 청소년들 분노
- 아이 낳으면 최대 1500만 원, 12세까지 매월 20만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