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 지나간 뒤 프랑스 정부가 받은 청구서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2026. 9. 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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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내내 국제 뉴스의 단골이었던 파리의 폭염은 이제 한풀 꺾였다.

그보다 앞서 모니크 바르뷔 프랑스 생태전환부 장관은 올여름 폭염의 직간접 경제비용이 100억~150억 유로(16조~24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프랑스의 경기 부진을 폭염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올여름 폭염 기간 수천 명 규모의 초과 사망이 관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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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폭염이 던진 질문, 국가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

[임상훈 기자]

 7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시민들이 손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올여름 내내 국제 뉴스의 단골이었던 파리의 폭염은 이제 한풀 꺾였다. 바캉스도 끝나간다. 그런데 프랑스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날씨가 아니라 장부에서다.

8월 28일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는 2분기 경제성장률을 당초 0.2%에서 0%로 낮췄다. 1분기 성장률도 -0.2%로 수정됐다.
상반기 프랑스 경제가 사실상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셈이다.

그보다 앞서 모니크 바르뷔 프랑스 생태전환부 장관은 올여름 폭염의 직간접 경제비용이 100억~150억 유로(16조~24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최종 결산액이 아니라 INSEE 추산을 인용한 잠정치다. 그래도 의미는 작지 않다. 한여름의 기온이 가을의 성장률과 국가 예산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의 경기 부진을 폭염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2분기 성장률을 가장 크게 끌어내린 것은 재고 감소였고 소비와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 질문은 다른 데 있다. 이미 성장률이 낮고 빚이 많은 나라에 폭염과 가뭄이라는 새로운 비용까지 얹히면, 국가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가뭄으로 농산물 생산이 줄면 농가소득이 감소하고 식품 가격이 오른다. 구매력이 떨어져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 매출과 세수도 영향을 받는다. 밭에서 시작된 가뭄이 어느새 마트의 가격표를 거쳐 재무부의 세입으로 들어간다.

폭염은 병원과 복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올여름 폭염 기간 수천 명 규모의 초과 사망이 관측됐다. 고령자가 많은 사회에서 더위는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다. 응급의료와 돌봄, 취약 주택의 냉방과 방문 보건이 모두 국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된다.

전력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는 강물의 수온과 수위 때문에 일부 원전 출력을 낮춰야 했다. 같은 고기압 아래 독일에서는 바람이 줄어 풍력 발전량이 떨어졌다. 하필 냉방수요가 가장 많은 시간에 공급까지 줄면서 전력 가격은 뛰었다.

산불이 나면 소방비뿐 아니라 주택과 도로 복구, 농가와 관광업체 지원까지 필요하다. 이 비용들은 농업, 보건, 전력, 산림, 주거, 지방재정의 서로 다른 장부에 찍힌다. 기후에는 하나의 예산 항목이 없다. 그러나 방향은 같다. 세입은 줄이고 지출은 늘린다.

재정위기 원인이 아니라 증폭기

프랑스의 재정문제는 이미 심각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올해 프랑스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5%대로 전망한다. 국가부채는 120%에 접근하고 있고 국채금리도 크게 올랐다.

프랑스 재정의 뿌리는 기후에 있지 않다. 낮은 성장률과 높은 공공지출, 고령화에 따른 사회지출 압력, 이를 조정하기 어려운 정치적 교착은 훨씬 오래된 문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후 비용이 무섭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 정부라면 한 번의 홍수와 산불은 예비비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국방비와 사회지출, 국가채무 이자가 이미 예산을 압박하는 나라다. 여기에 매년 반복되는 기후적응비가 들어오면 정책 선택의 공간은 더욱 좁아진다.

기후위기는 재정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증폭기다. 성장을 낮춰 세수를 줄이고, 긴급복구비를 늘리고, 같은 피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기반 시설을 고치라는 요구까지 만든다. 빚이 많은 나라라면 그 돈을 빌리는 비용도 함께 오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복구'라는 말 자체에 있다. 과거 재난 정책의 목표는 피해가 나면 원래대로 복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후가 변하면 그 '원래'가 사라진다. 과거의 강수량과 여름 기온, 산불 빈도를 기준으로 만든 도시와 철도와 발전소를 똑같이 복구하는 것이 더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 수 있다.

프랑스는 이미 2100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4도 높아지는 상황까지 국가의 공식 적응 기준에 넣었다. 도로와 철도, 건물과 발전시설을 과거의 기후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기후에 맞춰 설계하겠다는 뜻이다.

이 순간 기후적응비의 성격도 달라진다. 해마다 액수는 달라도 쓰지 않을 선택은 사라진다. 회계학의 고정비는 아니지만 국가 운영의 준고정비가 되는 셈이다. 국방비가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를 지키는 비용이라면, 기후적응비는 달라진 자연환경 속에서 사회를 유지하는 비용이다.

한국도 비용을 치르기 시작했다
 8월 24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아파트에서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발생한 아파트의 수해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아직 프랑스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 국가부채의 구조도, 통화정책의 조건도 다르다. 그러나 기후 충격이 국가의 비용으로 전환되는 방향은 이미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의 공식 피해액은 1조 848억 원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확정한 복구비는 2조 7235억 원이었다. 피해액의 두 배 반이다.

피해보다 복구에 더 많은 돈이 드는 것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설 자체를 더 강하게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복구 과정에서 방재 성능 강화를 명시했다. 기후재난의 진짜 가격은 부서진 것의 가격이 아니다. 다시 같은 방식으로 부서지지 않도록 바꾸는 가격이다.

올여름 양산의 기온은 42.5도까지 올랐다. 관측 사상 최고였다. 8월 초까지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2400명을 넘었고 사망자의 다수는 고령층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냉방은 더 이상 개인의 생활편의로만 남기 어렵다. 에어컨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생활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다. 단열이 취약한 집에 사는 노인이 에어컨을 켤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이제 소비의 영역을 넘어 보건과 주거, 돌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한국도 이미 2026~2030년 국가기후위기 적응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계획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수자원과 산림, 농업과 보건, 전력과 재난 안전에 흩어진 비용을 국가의 중기 재정 안에서 하나의 위험으로 계산하고 있는가다.

그렇다고 '기후'라는 이름을 붙이면 모든 지출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복 침수지역을 계속 복구할지 이전할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비용을 어떻게 나눌지, 냉방을 어디까지 개인 책임으로 둘지 결정해야 한다. 기후 적응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누구를 보호하고 어떤 위험을 공동 부담할지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폭염은 끝난다. 홍수도 물러간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번만 넘기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기후 정책은 더 이상 환경을 위해 쓰는 여분의 돈이 아니다.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는 일도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기후에서도 시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공동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이제 국가가 계속 국가로 기능하기 위해 치러야 할 유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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