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 미래기술’ 선언에도 양자 예산 칼질에 현장은 한숨 [최준호의 사이언스&]

" “오늘 함께 논의할 7가지 첨단기술, 7대 시드 프로젝트는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엔진인 동시에 국가의 핵심전략 자산이 될 것입니다.”(이재명 대통령) " " "만약 양자컴퓨터를 어느 국가나 기업이 (먼저) 만들었다면, 그게 (외국에) 공개될까 하는 얘기를 합니다. 양자는 암호도 다 풀 수 있고, 새로운 물질도 선점할 수 있는 대표적 비대칭 전략자산입니다.”(김성혁 한국양자산업협회장) "
![이용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전도 양자컴퓨팅시스템 연구단장이 25일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초전도 기반 5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2026.08.25.](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1/joongang/20260901001412261lcfk.jpg)
지난달 12일 청와대에서 ‘미래성장동력 7대 SEED 보고회’에서 나온 발언 중 일부다. 정부가 이날 ‘미래성장동력’으로 꼽은 건 ▶소형모듈원자로(SMR)▶핵융합▶재생에너지▶양자▶우주항공▶첨단바이오▶첨단 공급망 생태계 조성, 7가지다. 이 중 특히 양자기술은 기존 산업의 판도를 통째로 뒤바꿀 수 있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로 꼽힌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대표적 안보기술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에서 양자를 완성한다면 다른 나라는 양자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하기 더 어려워질 거라는 게 김성혁 협회장의 말이다. 김 회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양자는 이미 부품부터 전략무기화하고 있다. 신호를 증폭하는 미국산 정밀 앰프는 수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우리 연구기관이 네덜란드에서 들여오려는 부품도 세관에 묶여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양자기술 개발 경쟁 앞에선 미국이란 동맹도 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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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 판도 뒤바꿀 파괴적 기술
미·중에 10년 뒤져, 동맹도 없어
장비 없어 대만 도움 요청할 판
양자컴 1000억 예산, 700억 깎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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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자본·인력 국가동원체제
중국의 양자전략은 국가 최고 지도부의 지휘 아래 거대 자본과 인력을 한곳에 결집하는 국가동원체제다.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설립된 국가양자정보과학실험실에는 100억 위안(약 2조447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고, 중국과학기술대와 칭화대 등을 중심으로 수백 명의 물리학·소재·공학 분야 핵심 연구진이 한 팀처럼 꾸려져 있다.
이들은 ‘중국 양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판젠웨이(潘建偉) 교수를 중심으로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려, 2016년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위성 ‘묵자(墨子)호’ 발사에 이어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2000㎞ 규모의 세계 최장 지상 양자보안통신망(QKD)을 완공했다. 또한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터 ‘조충지(祖沖之)호’와 광자 기반의 ‘구장(九章)호’를 연이어 개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달 양자를 7대 미래성장동력(SEED) 기술로 선정했지만, 사실 우리 정부가 양자컴퓨터를 필두로 한 양자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때인 2022년 6월 5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 프로젝트(2022년 6월~2027년 3월)가 이미 출범했다. 앞선 문재인 정부 당시 기획의 결과였다. 2023년 10월엔 양자기술산업법이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2025년 3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양자전략위원회가 발족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10월엔 후속 사업인 100큐비트급 오류정정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 개발과, 1000큐비트급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하는 두 종류의 ‘양자 플래그십’ 사업이 시작됐다. 2029년 12월까지 4년간 각각 1229억원과 254억원이 예산이 투입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총괄을 맡고, 대학과 기업 등이 참여하는 형태다. 지난달 이재명 정부의 7대 시드 기술 선언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走馬加鞭) 행사였던 셈이다.
![문종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25일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중성원자 기반 양자컴퓨터 연구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2026.08.25.](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1/joongang/20260901001416141lusn.jpg)
지난달 25일 한국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의 허브인 대전 도룡동의 표준과학연구원을 찾았다. 2년 전 50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에 몰두하던 표준과학연구원의 고뇌를 들은 바 있던 터었다.
10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연구실은 첨단측정연구동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구실 내로 들어서자 원통 아래 샹들리에가 달린 것 같은 화려한 금빛 냉각기가 빛을 내고 있었다. 50큐비트급을 위한 장치였다. 초전도 양자컴퓨터 사업을 이끄는 이용호(63) 단장은 2년 만에 현장을 다시 찾은 기자에게 격정에 가까운 탄식을 했다.
“핵심 인프라인 클린룸과 측정실 구축, 장비 구매 계약이 1년 넘게 무한정 지연되고 있어요. 내년 하반기 50큐비트 달성이라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 결국 대만의 클린룸에 연구원을 파견해 칩을 만들어 오겠다는 플랜 B까지 논의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시작한 100큐비트 과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 1~3차년도에 투입되어야 할 초기예산 150억원이 깎여 5차년도로 밀려버렸어요. 처음에 1만원을 쥐여주고 밀가루와 기름을 사서 피자를 만들라 해놓고, 나중에 7000원만 주는 격이에요.”
지금의 10배 예산 확보돼야
2년 전 인터뷰에서도 이 단장은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결국 개발은 해낼 것”이라면서도“예산도 시간도 부족하다. 적어도 지금의 열 배 정도는 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이 단장의 탄식을 뒤로하고 지하 1층의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연구실로 내려갔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중성 상태의 이터븀(Yb) 원자를 이용한다. 중성원자는 전하를 띠지 않아 큐비트를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고 대규모 확장에도 유리하다. 중성원자 방식은 2000년경 이론적 제안으로 시작돼 2010년대 중반부터 연구개발이 활성화되고 있는 양성자컴퓨터다. 미국 하버드대와 MIT 연구진이 2018년 창업한 큐에라가 선두주자다. 2023년 말 오류 정정이 가능한 논리 큐비트 연산을 시연해 주목을 받았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니 암막커튼로 가려진 광학테이블 위에 초록색 레이저 광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레이저 광선은 양자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를 만들고 조작하는 핵심 장치다. 이터븀 중성원자를 극저온으로 얼리는 정밀 냉각과 원자를 하나씩 붙잡아 격자로 배치하는 광집게 역할을 한다. 중성원자 방식은 진공 환경 내에서 냉각된 원자 자체를 큐비트로 삼고, 레이저(광집게)를 통해 이를 제어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고정된 칩 구조가 아니라 3차원 자유공간에서 임의로 큐비트를 배열할 수 있기 때문에 큐비트 간의 연결성이 무한대에 가깝다. 원자 간 척력이 발생하지 않아 큐비트를 수천, 수만 개로 늘리는 확장성이 매우 뛰어나다. 이런 강점 덕분에 양자 컴퓨터의 최대 난제인 '양자 오류정정' 코드를 구현하는 데 가장 유리한 플랫폼으로 꼽힌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 책임자인 문종철(45) 책임연구원은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MIT에서 중성원자 기반 양자 시뮬레이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볼프강 케털리 교수다. 연구실에서 만난 문 박사의 얼굴과 말 속엔 자신감과 어려움에 뒤섞여 있었다.
“정규직 연구원은 4명에 불과한데, 지금의 5배가 돼도 부족합니다. 글로벌 경쟁에 맞서기 위해 당초 100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지만, 최종 배정된 금액은 3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죠. 그나마 이거라도 나왔으니 다행이긴 하지만요….”
미국박사 연구자 연봉 1억 안 돼
미국 구글은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의 패권을 쥐기 위해 문 박사의 미국 카운터파트인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 연구자를 수십억원의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해 갔다. 반면 노벨상 수상자 랩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문 박사의 연봉은 1억원이 되지 않는다. 그는 "한국에도 양자 기술을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연구원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연구개발 기획부처와 예산 당국 간의 갈등을 ‘고질적 문제’이면서 ‘미래와 현재의 충돌’이라 표현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에 부처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가 오래가면 정부 정책의 효능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7대 미래전략기술 중 하나로 선정한 파괴적 기술 양자가 정말 대한민국의 안보기술이면서,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커갈 수 있을까. 국가예산이라는 한정된 재원의 배분 결정은 결국 눈 밝은 국가지도자의 몫이다.
대전=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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